[김태석의 축구 한잔] 승부조작 선수가 바로 그렇게 길러진다

김태석 기자 2023. 4. 12.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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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일레븐)

▲ 김태석의 축구 한잔

12년 전 한국 축구에 커다란 상처를 남겼던 승부조작 사건이 일어났을 때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해 수많은 분석이 이뤄진 바 있다. 무명 선수들의 열악한 처우가 문제가 아니었느냐는 얘기가 가장 많았으나, 결과적으로 브로커로 뛰며 주범 구실을 한 스타 선수들이 구속되면서 돈이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가 설득력을 얻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나온 또 다른 분석이 바로 '잘못된 교육'이었다. 당시 연루됐던 선수 중 다수가 황당하게도 이런 일이 범죄인줄 몰랐다는 반응을 보였다. 지인, 선배의 거듭된 부탁을 차마 거부하지 못해 이런 일을 저질렀다는 얘기였다. 물론 제3자의 시각에서는 말 같잖은 변명에 불과하다.

그런데 축구 선수들의 성장 과정과 속 사정을 아는 이들은 그들의 말을 마냥 흘려들을 수 없다고 한다. 일단 피치에 들어서면 땀 흘려 치열하게 승부해야 하는 게 당연한 일이긴 하나, 그릇된 지도 때문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상황에도 힘을 내지 않는 일이 꽤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성장한 선수들은 자신들이 저지르고 있는 일이 스포츠맨십을 파괴하는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자각을 하지 못한다.

심지어 교묘하게 규칙 내에서 대충 경기를 치르며 고의적으로 패배하거나 이기지 않으려는 행동을 보이는데, 이럴 땐 스스로에게 모두가 지켜야 할 규칙이 절대 죄를 짓고 있지 않다는 이상한 당위성까지 부여한다. 이런 행태는 비단 축구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2012 런던 올림픽 배드민턴 종목에서 있었던 일이 좋은 사례다. 다음 라운드에서 수월한 상대를 만나기 위해 한국과 중국 선수들이 경기에서 억지로 지려는 그 촌극은 규칙에서 벗어나진 않았을지언정 스포츠맨십 측면에서 철저히 배격되어야 할 일이라며 엄청난 비난을 샀었다.

다시 축구로 돌아오겠다. 축구는 어둠의 세력으로부터 스포츠 경기 조작이 가장 많이 시도되는 종목인 만큼, 어려서부터 선수들에게 경각심을 불어넣고 올바르게 승부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그래야 한국 축구가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한국대학축구연맹이 내린 결정은 매섭게 비판받아야 한다. 최근 대학축구계는 이른바 '볼 돌리기' 논란으로 뭇매를 맞은 바 있다. 2023년 춘계 대학축구연맹전 대회 준결승서 맞붙은 연세대학교와 경기대학교의 선수들이 20분 넘게 공격과 수비를 주고받지 않고 심지어 볼 리프팅까지 하며 고의적으로 시간을 끄는 행태를 보였는데, 대학축구연맹은 두 팀에 향후 한 개 대회 출전 금지라는 솜방망이 처분을 내렸다. 심지어 대한축구협회에서 해당 징계가 약하다고 판단해 재심의하라는 요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징계를 그대로 유지했다.

대학축구연맹은 "징계를 더할 새로운 근거를 찾지 못했고, 선수들도 지도자가 아닌 본인 판단으로 리프팅을 지연한 것이라고 소명하더라"라고 설명했다.

이 해명, 과연 납득이 가는가? 교묘하게 축구 규칙 뒤에 숨어 스스로에게 제3자는 납득 못 할 당위성을 부여하고 있다. 심지어 지도자가 지시한 게 아니라 선수가 알아서 그랬다는 식으로 비겁하게 면피하고 있다. 선수가 자의적인 판단으로 이런 그릇된 행동을 했었다는 얘기가 우리네 축구계에서 과연 얼마나 설득력 있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들을 제지하며 똑바로 지도하지 않고 그 상황을 방조한 지도자들의 책임이 과연 정말 없을까?

앞서 언급한 승부조작 사건으로 되돌아가자. 당시 기억을 다시 떠올려보면, 선량한 선수가 어느날 갑자기 승부조작범이 되는 경우는 없다. 그러한 행위가 잘못된 것임을 아는 선수라면 아무리 주변에서 유혹한다고 해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렇게 올바르게 배우고 선량하게 성장해왔기 때문이다.

승부조작 선수는 올바르게 배우지 못한 선수들이다. 어려서부터 그런 경우를 여럿 겪으면 이런 행위가 그릇된 일이라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렇게 학습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도자는, 그리고 전체 축구계를 끌어가는 단체의 가르침과 비전 제시는 굉장히 중요하다. 이런 측면에서 대학축구연맹의 징계 원안 유지는 비판받아야 한다.

그리고 이런 교육 환경이라면, 왜 우수한 유망주 자원들이 대학 무대를 외면하거나 빨리 떠나려하는지도 이해할 수 있다. U-22 제도의 문제점을 운운하기에는 지금 대학축구가 하는 행태가 훌륭한 선수 육성에 얼마나 해가 되는지를 이번 볼 돌리기 사건과 뒷수습을 통해 많은 이들이 알았을 것이다.

글=김태석 기자(ktsek77@soccerbest11.co.kr)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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