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사진 속 조선의 핫플레이스, 청주 용화사㊦ - 더 글로리로 더 핫해졌다

구준회 2023. 4. 12.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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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께끼 하나가 풀리니 또 다른 궁금증이 꼬리를 뭅니다.

용화사 일곱 부처님은 도대체 언제 어떻게 조성된 걸까요.

연구 결과 고려시대 대사찰인 '사뇌사(思惱寺)'에서 쓰던 물건들로 판명되면서 지금의 용화사가 과거 사뇌사 자리였음이 밝혀집니다.

재밌는 점은 용화사에 모셔진 부처가 일곱 분으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여덟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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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께끼 하나가 풀리니 또 다른 궁금증이 꼬리를 뭅니다.

용화사 일곱 부처님은 도대체 언제 어떻게 조성된 걸까요.

전하는 기록이 없으니 양식으로 추론할 수밖에 없습니다.

7구 가운데 여래입상 네 구, 여래좌상 한 구, 보살좌상 한 구, 나머지 한 구는 유마상(維摩像)으로 보고 있습니다. (참고로 세분의 큰 부처 외에 나머지 4분의 작은 부처님들은 현재 극락전에 모셔놨습니다.)

가장 큰 불상이 5.5m, 가장 작은 부처가 1.4m입니다.

특히 앞서 엽서에서 보였던 세 구의 불상은 소위 ‘장육상(丈六像)’로 불리는 거대한 불상입니다.

청주 용화사 삼불전 내 삼불 모습


그런데도 근엄한 표정, 세밀한 옷 주름, 부드럽고 볼륨 있는 몸의 윤곽선, 백호와 삼도, 나발 등 단단한 돌을 자유자재로 쪼아 살아있는 듯 디테일을 살렸습니다.

전문가들은 여러 가지로 미뤄 고려시대 불상들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7구 모두 크기가 제각각에 양식의 연결성이 보이지 않습니다.

다른 시기, 다른 장소에서 따로따로 조성됐다는 얘깁니다.

청주 용화사 극락전에 모신 4구의 소석불


과거 청주 사직·운천동 일대에 있던 절들이 폐사되면서 방치돼 흩어졌던 석불들이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한데 모여진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 멀지 않은 곳에 통일신라시대 ‘운천동 산직말사지’, ‘운천동 사지’, 고려시대 직지를 간행했던 ‘흥덕사지’ 등이 남아있습니다.

1993년에는 용화사 바로 옆에서 전신주 매설공사를 벌이다 불교와 생활 유물 400여 점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연구 결과 고려시대 대사찰인 ‘사뇌사(思惱寺)’에서 쓰던 물건들로 판명되면서 지금의 용화사가 과거 사뇌사 자리였음이 밝혀집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여러 사실을 통해 용화사 일대에는 통일신라시대 이래 많은 절이 산재해 있었고 그만큼 불교가 융성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무심천 벚꽃과 용화사


공교롭게도 해당 지역이 청주를 남북으로 가르는 무심천 서쪽에 있는 점에서 불교의 이상향인 서방정토(西方淨土)를 연상시킵니다.

재밌는 점은 용화사에 모셔진 부처가 일곱 분으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여덟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비밀은 석불 뒷면에 있습니다.

청주 용화사 삼불전 내 나한상


삼불전 불상 중 한 분의 등에 새겨진 나한상이 바로 여덟 번째 부처입니다.

법당 안 뒤편으로 돌아가면 무려 3미터나 되는 거대한 부조 작품을 만날 수 있습니다.

최근 들어 용화사는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드라마 ‘더 글로리’의 촬영장소로 알려지면서 더욱 핫해졌습니다.


‘최혜정이 문동은에게 충성을 맹세했던 절’로 소개돼 전국에서 찾는 이들이 부쩍 늘었습니다.

얼마 전 자료조사차 들렸을 땐 한 외국여성이 스마트폰을 들고 절 구석구석을 촬영하는 장면을 목격하며 유명세를 실감했습니다.

풍성한 이야기와 볼거리를 갖춘 용화사에 대한 관심은 앞으로도 꾸준히 이어질 것으로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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