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 바뀔 때마다 되풀이된 수신료 분리징수, 이번엔 진짜?

노지민 기자 2023. 4. 12.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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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이 쥔 수신료 결정권, 공영방송 수신료 논의의 역사

[미디어오늘 노지민 기자]

“지난해 대선 당시 집요한 색깔론으로 MBC 길들이기를 시도했던 한나라당이 이번에는 수신료 문제로 KBS 흔들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1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 대통령실의 공영방송 수신료 분리징수 추진을 비판하는 전국언론노동조합 기자회견에서 송지연 TBS지부장이 읽은 2003년도 기사의 한 대목이다. 송 지부장은 “기사를 읽다 헛웃음이 나왔다. '한나라당'을 '국민의힘'으로 바꾸기만 하면 2023년 현재에도 손색 없는 기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실제 공영방송 수신료를 둘러싼 정치권의 논쟁은 정권이 교체되면 여야가 공수를 바꿔가며 제기해온 사안이다. 국회가 수신료를 결정하고 공영방송의 지배구조에도 영향을 미치는 현실에서 수신료를 볼모로 공영방송 장악력을 키우려 한다는 비판도 때마다 반복돼왔다.

▲3월9일~4월9일 대통령실 국민제안 홈페이지의 국민참여토론 게시판으로 TV수신료 징수방식 개선방안에 대한 의견수렴이 진행됐다.

현 윤석열 정부에서의 수신료 논쟁은 대통령실이 띄운 '수신료 분리징수'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방송법에 따라 전기요금에 통합돼 징수하고 있는 수신료를 전기요금과 분리해서 걷는 방안을 쟁점화한 것이다. 대통령실은 지난달 9일 국민제안 홈페이지의 국민참여토론 게시판에 'TV수신료 징수방식 개선방안'에 대한 의견 수렴에 나섰고, 한 달간 모인 의견을 근거로 수신료 징수방식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1994년 도입된 통합징수, 헌재 판결로 법적 근거 확립

한국전력이 수신료 징수를 위탁받아 전기요금에 합산해 걷는 지금의 제도는 지난 1994년 김영삼 정부 당시 방송법에 근거가 마련되면서 도입됐다. 이전까지는 KBS 징수원이 직접 수신료를 받으러 다녔기에 수신료 납부 회피가 많았고 비용 대비 징수 효율성이 높지 않았다는 지적이 있었다. 통합징수 도입 이후인 1995년 수신료 수입은 전년보다 66% 이상 증가한 3609억 원에 달했고, 수신료 징수율은 기존 53%에서 95%로 대폭 확대됐다.

다만 이것이 KBS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당시 KBS는 수신료 징수방식 개선과 동시에 KBS 1TV의 상업광고를 폐지했다. 1994년 종합유선방송법을 통해 다양한 유선방송이 진입하게 됐고, KBS 1TV의 광고 폐지도 새로운 채널에 광고 시장을 열어주기 위한 측면이 있었다. KBS는 이때를 기점으로 전체 수입에서의 수입료 비중을 40% 선으로 유지하게 됐다.

그리고 1999년 5월 헌법재판소를 통해 수신료 분리징수의 법적 근거가 확립됐다. 수신료 부과가 위헌이라는 헌법소원에 대해 “수신료는 공영방송사업이라는 특정한 공익사업의 경비조달에 충당하기 위하여 수상기를 소지한 특정집단에 대하여 부과되는 '특별부담금'에 해당한다”며 “공사가 공영방송사로서의 공적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면서도 아울러 언론자유의 주체로서 방송의 자유를 제대로 향유하기 위하여서는 그 재원조달의 문제가 결정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판단한 것이다.

동시에 수신료 결정을 국회가 맡아야 한다는 헌재 결정은 지금의 수신료 결정 구조로 이어졌다. 당시 헌재의 취지는 “공사가 전적으로 수신료금액을 결정할 수 있게 되면 공영방송사업에 필요한 정도를 넘는 금액으로 정할 수 있고, 또 일방적 수신자의 처지에 놓여 있는 국민의 경제적 이해관계가 무시당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이에 2000년 통합방송법은 KBS 이사회가 수신료 조정안을 의결하면 방송위원회(현 방송통신위원회)를 거쳐 국회가 이를 승인하는 지금의 제도를 명시했다. 수신료가 KBS와 함께 EBS에 배분되는 근거도 이때 마련됐다.

KBS 보도 압박 수단으로 전락한 분리징수 추진

그러나 수신료 금액은 1981년 컬러TV방송이 도입되면서 결정된 월 2500원에서 40년이 흐른 지금까지 단 1원도 오르지 않고 있다. 수신료 징수방식은 정치권의 공영방송 압박 수단으로 활용돼왔다. 특히 이런 양상은 대형 선거를 전후한 시점에 격화됐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된 16대 대선 이후이자 이듬해 총선을 앞두고 있던 2003년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언론대책특위의 수신료 분리징수 법안 추진이 대표적이다. 당시 한나라당은 KBS와 EBS가 재독 사회학자인 송두율 교수를 미화했다면서 비판 수위를 높였고, 언론계는 이를 총선을 겨냥한 공영방송 흔들기로 규정한 바 있다. 2007년엔 보수단체들이 '매국방송 KBS 수신료 절대 안 내도 되는 길라잡이'를 만들어 유포했다.

▲2019년 자유한국당 수신료 분리징수 특위. ⓒ연합뉴스

그러다 한나라당이 집권한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여권이 수신료 인상을 추진하고, 야권이 이를 반대하는 구도가 만들어졌다. 2010년 1월 최시중 방통위원장은수신료가 “5000~6000원에서 인상될 것”이라면서 “수신료 인상으로 7000~8000억 원이 미디어 광고시장으로 이전되는 효과가 나온다”는 전망을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내놨다. 종합편성채널 허용을 앞두고 종편 사업자에게 광고 시장을 열어주기 위한 의도라는 해석이 나왔던 때다. 이 시기엔 야당이었던 민주당이 정책위 차원에서 수신료 분리징수 법안을 추진했다.

이후 박근혜 정부로 이어진 시기에도 민주당 중심의 분리징수 법안이 발의됐다. 2014년 1월 MBC 출신 노웅래 민주당 의원이 공영방송수신료위원회 별도 구성과 위탁징수 금지를 규정한 법안을 발의한 것이 일례다. 2014년 4월 세월호참사에 대한 대형 오보 사태 이후로 시민사회에선 'KBS 수신료 안 내는 법'이 다시금 확산되기도 했다. 2015년엔 진보 성향 단체로 분류되는 언론소비자주권행동이 KBS와 한국전력을 상대로 수신료를 전기요금에서 분리해달라는 소송을 냈지만, 서울행정법원은 이를 각하(KBS) 및 기각(한전)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자유한국당을 중심으로 수신료 분리징수 주장이 제기됐다. 2018년 조선일보 출신 강효상 한국당 의원이 수신료 분리징수 및 지상파 중간광고 금지법을 발의했다. 이듬해인 2019년엔 서울신문 출신 박대출 한국당 의원이 위원장을 맡은 수신료 분리징수특위가 출범하기에 이른다. 같은 해 KBS 법조팀 보도와 검찰 유착 의혹을 주장하면서 수신료 분리징수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제기돼 답변 요건(20만 동의)을 갖추기도 했다. 당시 청와대는 특별분담금으로서의 수신료 성격에 따라 통합징수가 적절한 수단이라고 답한 바 있다.

윤석열 대통령실, 국회 건너뛰고 직접 여론조성

이처럼 공영방송 수신료 징수방식에 대한 정치권 논의는 KBS 보도의 공정성을 문제 삼는 야권의 주장을 중심으로 제기돼왔다. 윤석열 정부의 수신료 분리징수는 대통령실이 전례 없이 노골적으로 나섰다는 점에서 지난 사례들과 차이가 있다. 정당 입법발의 중심의 단계를 건너 뛰고 대통령실이 직접 여론을 만들어 정책을 추진하는 모양새다.

대통령실은 또 야당이 다수를 이루는 국회를 거치지 않고 대통령이 임명한 인사들로 이뤄지는 국무회의에서 시행령을 통해 분리징수를 추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현 정부의 분리징수 쟁점화가 공영방송에 대한 압박으로만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감지되는 이유다.

▲용산 대통령실 ⓒ연합뉴스

대통령실 분리징수 압박은 포퓰리즘…개혁 목표 제시해야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미디어영상홍보학과 교수는 “이미 수신료는 공적 부담금이라는 판결이 있다. 이를 시청료처럼 분리한다는 것은 입법 취지를 위반하는 문제”라며 “분리징수를 위해 시행령을 고치면 위헌 소송이 이어질 수밖에 없고 공영방송 입장에서도 가처분 신청을 낼 것이다. 그 모든 사회적 비용을 유발해야 하는 것인지 물어야 한다. 결국 (분리징수는) 선거를 앞둔 포퓰리즘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심 교수는 “공영방송은 여론 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인데 모든 가치를 부정하겠다는 것인지, 무엇을 위한 개혁인지 목표가 제시돼야 한다”며 “공영방송 제도는 개선돼야 하고 공영방송 역할을 위해 어떤 방식의 공적 재원이 바람직한지에 대한 것을 논의해야 한다. 그 역할을 맡아야 하는 것이 대통령이고 정부 여당”이라고 강조했다.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게시판 의견을 근거로 삼는 자체가 대한민국 국격에 맞지 않는 비과학적이고 비합리적인 방식”이라며 “분리징수 제도를 끌어와 KBS를 압박하려 하는 것은 치졸하다. 차라리 KBS의 역할을 조정하자는 큰 이야기를 꺼낸다면 찬반을 할 수 있겠지만 행정력 권한을 가진 영역에서 오히려 (공영방송을) 망치려는 방식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고 본다”고 비판했다.

다만 KBS 역시 'KBS가 왜 필요한가'라는 근본적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아야 하는 시점이다. 강 교수는 “통합징수가 도입된 1994년 KBS 1TV는 광고를 안 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조금 더 다른 방송, 차별성을 키운 계기가 됐다”며 “KBS의 여러 케이블 채널들, 유튜브 채널 등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 시대에 맞게 변화하겠다는 더 큰 디자인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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