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랜딩’ 가능성 날린 SVB 파산, 다음 악재는 국제유가?
한지영 키움증권 투자전략팀 연구원 2023. 4. 12. 10:02
매달 새로운 위험에 직면하는 글로벌 경제… 고물가 하락 추세 바뀌지 않을 듯
1분기가 지난 4월 현재 세계경제를 둘러싼 환경은 녹록지 않아 보인다. 금융시장 참여자, 경제 주체들이 감당해야 할 과제가 매달 수시로 바뀌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 뱅크오브아메리카(BoA)가 글로벌 펀드매니저를 대상으로 매달 실시하는 서베이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2월에는 '현 시장의 가장 큰 대형 위험(팻테일 리스크)'을 묻는 질문에 '고(高)인플레이션'이 응답률 40%로 1위였으며 그 뒤를 경기침체, 지정학적 리스크, 긴축이 이었다. 하지만 3월에는 고인플레이션(25%)을 제치고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이후 출현한 신용위험(31%)이 시장의 가장 큰 대형 위험으로 자리 잡았다. 물론 3월 말이 지나면서 은행권 위기 사태는 어느 정도 일단락된 듯하지만 불씨가 완전히 꺼졌다고 보기는 이르다.
시장에서는 또 다른 희생양을 찾는 작업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내 머니마켓펀드(MMF: 초단기 금융상품) 잔고가 지난해 말 4조7000억 달러(약 6165조 원)에서 올해 3월 22일 5조1000억 달러(약 6690조 원)로 3개월간 4000억 달러가 유입됐다는 점이 근거 자료가 된다(그래프1 참조). 과거 경험을 돌이켜보면 미국 시장금리가 하락하는 구간에서 MMF 잔고가 늘어난 시기는 2008년 금융위기, 2020년 코로나19 사태처럼 경제와 금융시장에 위험신호가 출현했을 때다. 이번에도 비슷한 패턴(금리하락+MMF 잔고 증가)이 나타났다는 점에서 짐작하건대 "은행권 위기가 이른 시일 내 종결되기 어렵다"는 시장의 인식이 여전하다고 볼 수 있다.
MMF 잔고 증가는 위험신호
결론부터 말하자면 향후에도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 은행 위기설이 수시로 부각될 수 있겠지만, 실제 현실로 일어나 실물경제와 금융시장에 큰 충격을 안길 가능성은 작다. 우선 추가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 사태)을 방지하려면 금융시스템에 대한 신뢰 강화 작업을 통해 예금자들의 심리적 안정을 강화하는 것이 최우선이라는 점에 주목하자. 3월 이후 당국이 내놓은 SVB 예금자 보호 확대, 중앙은행의 달러 스와프 협정 강화, 잠재적인 지급 보장 대상 확대 추진 등 일련의 사태 진화 조치들은 이를 상당 부분 충족시키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따라서 SVB가 촉발한 은행권 불안이 대형 위기 혹은 시스템 리스크로 확산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이는데, 그 대신 경기 전망을 둘러싼 환경이 바뀔 소지는 있다. 은행 규제 이후에 나타날 영향이 대표적이다. 현재 은행의 예대마진 악화가 지속되는 가운데 이번 SVB 사태 이후 중소형 은행권에 대한 정부 당국의 규제 강화는 이들의 대출 태도를 한층 더 보수적으로 만들 전망이다. 2월 말 기준 미국 대형 및 중형 은행의 대출태도지수는 44포인트로, 2020년 3분기에 71포인트를 기록한 이후 가장 보수적인 상황이다(대출태도지수가 양의 값이면 심사 기준 강화, 음의 값이면 심사 기준 완화). 은행 대출은 경제 주체에 신용과 유동성을 공급하면서 소비를 포함한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 요소다.
산유국 감산, 게임체인저 아니다
결국 1~2월 시장에서는 골딜록스(경제성장과 물가안정이 공존하는 상태), 노랜딩(경기 상승 지속) 등 경기 전망에 대한 자신감이 높아진 상태였으나, SVB 사태가 그러한 전망을 후퇴시키고 있다. 이제는 향후 경제가 노랜딩이 아닌 소프트랜딩(연착륙)이나 하드랜딩(경착륙) 중 어떤 경로를 탈지가 관건일 것이다. 그리고 개인적 관점으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경기선행지수가 바닥을 다질 가능성이 큰 점을 감안할 때 소프트랜딩에 무게를 두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경기 전망은 기업 실적 전망의 턴어라운드 시점과도 직결되는 만큼 앞으로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긴축, 은행권 위기에 대한 시장 민감도는 시간이 지날수록 낮아지는 반면, 경제 지표, 기업 실적 등 펀더멘털에 대한 민감도가 높아지는 'Good news is good news, Bad news is bad news' 국면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인플레이션 문제와 관련해서는 3월 31일 발표된 미국 2월 개인소비지출(PCE) 물가 둔화 소식은 반가웠지만, 4월 2일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비회원 산유국 협의체인 OPEC+의 서프라이즈성 원유 감산 결정(기존 하루 200만 배럴 감산에 116만 배럴 자발적 추가 감산)이 새로운 변수로 부상했다. 그동안 원자재 등 상품 인플레이션 하락(디스인플레이션)을 기본 전제로 수립해왔던 시장의 인플레이션 대응 전략을 전면 수정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연말까지 미국과 유로존 등 주요국 경기 둔화, 잠재적인 긴축 부작용 추가 발생 가능성 등으로 수요 부진이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또한 현재는 지난해 상반기 중 미국 평균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약 8.3%대를 기록한 것에 따른 역기저 효과 발생 구간이다(그래프2 참조). 이를 고려할 때 당분간 공급 측면에서 유가 등 인플레이션을 밀어 올릴 수 있는 영향을 수요 부진과 역기저 효과가 상쇄시킬 것으로 보인다. 결국 80달러대에 진입한 국제유가가 올해 하반기 이후 90달러를 넘어서는 가격(지난해 상반기 국제유가 90~125달러)을 지속적으로 유지하지 않는 이상 이번 OPEC+의 원유 감산 결정은 인플레이션에 게임체인저가 될 가능성은 작다. 단기적으로 인플레이션 변동성에 대한 경제 주체의 민감도는 높아지겠지만 인플레이션 하락 추세라는 기존 경로를 바꾸지는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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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영 키움증권 투자전략팀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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