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는 봄이 무섭다…4년 동안 축구장 1만5000개 잿더미로

조문희 기자 2023. 4. 12.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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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맥에 부는 ‘양간지풍’에 매년 봄 대형 산불 피해
산불방지종합대책 강화해도 자연 앞에 ‘속수무책’

(시사저널=조문희 기자)

나무를 심는 기념일인 식목일(4월5일)을 전후로 강원도에선 오히려 나무들이 잿더미로 변하고 있다. 봄이면 찾아오는 강풍에 건조한 대기가 더해져 매년 산불 피해를 키우면서다. 당국은 매해 산불의 위험성을 알리고 산불방지 종합대책을 강화하고 있지만, 자연 앞에 '속수무책'이란 지적이 나온다.

12일 산림 당국에 따르면, 전날 오전 8시22분께 강원도 강릉시 난곡동에서 시작된 산불은 총 379㏊를 태우고 8시간 만에 진화됐다. 오후 들어 단비가 내린 덕에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불길이 잡혔으나, 순간 풍속 30㎧에 달하는 폭풍급 강풍을 타고 피해 면적을 키웠다.

11일 오전 강원 강릉시 난곡동의 한 야산에서 난 불이 주택으로 번진 가운데 주민들이 긴급하게 대피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단비 안 내렸다면…강릉 일대 '쑥대밭' 만든 폭풍급 강풍

이번 산불로 89세 한 명이 숨진 채 발견됐으며 주민 1명과 소방대원 2명 등 3명이 화상을 입고 12명이 연기에 질식했다. 주택과 펜션 등 건물 100채가 불에 타는 등 재산 피해도 상당했다. 또 강원도 유형문화재인 방해정(放海亭) 일부가 소실됐고, 경포호 주변에 있는 작은 정자인 상영정(觴詠亭)은 전소됐다.

이번 산불엔 올해 들어 처음으로 '소방 대응 3단계'도 발령됐다. 최근 건조한 기후가 계속되면서 강릉뿐만 아니라 한반도 전역에서 크고 작은 산불이 계속됐으나, 전날엔 전국에 태풍급 강풍이 분 터라 비상 대응이 필수적이란 판단에서다. 이날 투입된 진화 인력만 2764명에 달했다.

다만 강풍 앞에 소방 대응 3단계도 한 때 속수무책이었다. 산불 진화에 필수적인 진화 헬기가 바람에 가로 막혀 이륙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8000ℓ를 실은 초대형 헬기를 포함한 진화 헬기 10대는 모두 오전 내내 이륙하지 못하다가 바람이 잦아든 이후인 오후 2시30분에서야 첫 발을 뗐다. 이후 내린 소나기에 더해 산불이 잦아들었다.

11일 산불이 발생한 강릉시 저동 야산 인근에서 한 주민이 전소된 집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 연합뉴스

봄이면 찾아오는 '火風'에 4년간 1만600㏊ 불 타

이번 강릉 산불이 순식간에 대형 화재로 번진 데는 기상과 지형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란 게 당국의 분석이다. 봄이 되면 한반도 상공엔 '남고북저(南高北低)' 기압 분포가 형성되는데, 고기압과 저기압 사이로 발생한 강한 서풍이 태백산맥을 넘으면서 땅을 건조하게 하고 풍속도 빨라진다. 이를 '양간지풍(襄杆之風)'이라고 부른다. 이런 바람에 쓰러진 나무가 전선을 건드려 불씨를 제공했고, 강릉 지역에 빼곡한 소나무가 불쏘시개 역할을 해 피해를 키웠다는 게 당국의 판단이다.

강원도에 불어 닥친 이 같은 대형 산불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건조한 대기와 강한 바람을 타고 작은 불씨가 대규모 화재로 번진 사례가 다수다. 강원도산불방지센터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9년 문재인 정부 당시 고성에서 속초까지 1260㏊가 불에 타는 '역대급 산불'이 발생한 이후 현재까지 매해 크고 작은 산불이 나 1만600㏊ 상당이 잿더미로 변했다. 축구장 면적(0.71㏊)으로 환산하면 무려 1만5000개 규모다. 화재 발생 시기는 모두 3~4월 사이다. 양간지풍이 예부터 '화풍(火風)'으로도 불린 배경이다.

ⓒ 강원도산불방지센터 제공

크고 작은 화마가 매년 봄 강원도를 덮치는 동안 정부가 손을 놓고 있었던 것만은 아니다. 당국은 매년 봄철 산불조심 기간(2월1일부터 5월15일까지)을 앞두고 특별 방지 대책을 발표해왔다. 지난 1월31일에도 산림청은 ICT 기술을 이용해 산불 예방 체제를 강화하고 산불 취약 지구를 사전에 점검하는 내용 등을 골자로 하는 '전국 산불방지 종합대책'을 발표한 바 있다. 당국은 일단 산불이 발생하면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만큼, 24시간 감시체계를 강화해 예방 대책에 방점을 찍겠다는 입장이다.

한편 정치권에선 이번 산불 피해를 겪은 강릉 일대와 관련한 특별재난지역 선포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되면 재난으로 사망‧실종한 사람의 유족과 부상자에게 구호금을 지원하고, 산불로 생계 유지가 곤란하게 된 경우 생계비를 지원한다. 또 산불로 주택이 전소되거나 일부 피해를 입은 경우 복구비가 지원되며 각종 세제‧행정‧금융‧의료상 혜택도 지원한다.

11일 오후 강원 강릉 아이스아레나에 산불 피해 이재민들을 위한 대피소가 설치돼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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