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 만료가 낳은 ‘살인마 푸’ 원작 훼손일까, 독창적 변주일까

■1920년대 콘텐츠 저작권 풀려… 캐릭터 변형 잇달아
‘악당 피터팬’ ‘광견병 밤비’ 등
기존에 없는 캐릭터 잇단 시도
이색 재미 추구해 신선하지만
원작 팬은 “동심 파괴” 불만
향후 저작권 다툼 잦아질 듯
“완성도 높으면 대중도 지지”

그래픽=송재우 기자

순하고 푸근한 이미지의 ‘곰돌이 푸’를 살인마로 그린 영화 ‘곰돌이 푸 : 피와 꿀’(6일 개봉)을 둘러싼 글로벌 논쟁이 뜨겁다. 저예산으로 제작된 영화의 만듦새와 흥행 여부는 차치하고 원작의 훼손과 변주라는 상반된 평가가 맞서고 있다. 곰돌이 푸를 비롯해 밤비, 피터팬 등 유명 캐릭터들의 저작권 보호 기한이 순차적으로 만료되면서 향후 이들 캐릭터 활용을 둘러싼 논란은 한층 가열될 전망이다.

‘곰돌이 푸 : 피와 꿀’의 제작이 가능한 것은 1926년 출간된 영국 작가 A A 밀른의 동화 ‘곰돌이 푸’ 저작권이 2022년 1월 만료된 덕분이다. 미국의 저작권 보호 기간인 95년을 넘었기 때문이다. 감독인 라이 프레이크-워터필드는 또 다른 동화 캐릭터를 변주한 영화들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1928년 처음 세상에 나온 어린 사슴 밤비의 저작권 역시 내년 만료됨에 따라 광견병에 걸려 잔혹해진 밤비 캐릭터를 앞세운 영화를 구상 중이며, 영원한 어린이 피터팬을 악당으로 바꾸는 시도도 하고 있다.

유명 캐릭터에 새 이미지를 씌우는 시도는 숱하게 이뤄져 왔다. ‘스파이더맨’이 다크 히어로인 블랙 스파이더맨이나 베놈을 등장시켜 새로운 재미를 추구했듯, 기존 캐릭터를 비트는 재미가 쏠쏠하다. 하지만 동화 속 캐릭터인 푸를 비롯해 밤비, 피터팬을 악당으로 그리는 것엔 원작 훼손이자 동심 파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세상에는 다양한 생각과 취향을 가진 사람이 있듯이 불법적·패륜적이 아니라면 유명 캐릭터나 이미지를 오락 영화로 활용하는 것은 별문제가 없다”면서도 “원작에 애착이 큰 입장에서는 불쾌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저작권 만료 과정이 일괄적으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붉은 티셔츠를 입은 순진한 푸의 캐릭터는 1996년 디즈니가 만든 단편 영화에 처음 등장했기 때문에 이 이미지를 사용한 콘텐츠는 아직 만들 수 없다. ‘곰돌이 푸 : 피와 꿀’은 1926년 원작 동화에서 출발했다. 디즈니를 대표하는 캐릭터 미키마우스 역시 1928년 공개된 초기 단편 애니메이션 ‘증기선 윌리’의 저작권이 내년 풀리는데, 이 작품은 흑백으로 제작됐기 때문에 ‘흑백 미키마우스’만 공유 재산(Public domain)이 된다.

‘셜록 홈즈’의 코난도일재단은 2020년, 홈즈의 여동생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 ‘에놀라 홈즈’를 제작한 넷플릭스에 소송을 제기했다. 영화 속 홈즈 모습의 일부 묘사에 대한 저작권이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양측의 합의로 영화는 정상적으로 공개됐으나 이처럼 미묘한 표현의 차이를 둔 저작권 다툼은 향후 더욱 잦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지난해 12월 ‘할리우드 지적 재산의 보물창고가 공유 재산이 되고 있다’란 기사를 통해 “곰돌이 푸의 원작자는 ‘곰돌이 푸 : 피와 꿀’을 허락하지 않을 수 있지만 이제는 승인이 필요하지 않다”면서 “미키마우스도 곧 공유 재산이 된다. 1920년대 후반에 만들어진 콘텐츠의 저작권이 만료되면서 (이를 변주한) 문화, 예술, 음악, 영상 콘텐츠 등에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하 평론가는 “저작권 기간이 만료된 유명 콘텐츠를 활용하더라도 역시 완성도가 높아야 지지를 받을 수 있다”며 “원작과는 다른 충분한 재미를 주지 못하면 대중의 외면을 받고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충고했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