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원전, 기술력·경제성 세계 최고… 미국과 경쟁하는 ‘체코 수주’ 잘 풀릴 것”[현안 인터뷰]
한국,UAE바라카 원전서 실적증명
돈 2배 쓰고도 미완공 국가 많아
난제로 남은 사용후핵연료 처리
EU의 택소노미 계획에 발맞춰
중간저장시설 법제화 속도 내야
SMR 개발 늦었지만 기술 최고
연말 ‘COP28’ 기점 본격 마케팅
인터뷰 = 박수진 경제부 차장 sujininvan@munhwa.com
정리 = 전세원 기자 jsw@munhwa.com
원전 학계·업계가 황주호(67)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에게 거는 기대는 남다르다. 문재인 정부 5년의 탈(脫)원전 정책으로 고사 상태에 놓였던 국내 원전 생태계의 부활과 윤석열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 중 하나인 ‘K-원전’의 10기 수출 달성 여부가 황 사장 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글로벌 에너지 위기와 탄소중립 추진으로 원전에 대한 관심도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가운데, 취임 8개월을 맞은 현재까지 다행히 황주호 호(號)는 순항하고 있다. 지난해 8월 말 3조 원대 이집트 엘다바 원전 건설 사업권을 따냈고, 같은 해 10월 폴란드 민간 발전사와 2∼4기의 신규 원전 건설을 고려한 협력의향서(LOI)를 체결하는 데도 성공했다. 연이은 해외 원전 사업 수주와 신한울 3·4호기 공사 재개에 따른 일감 증가는 국내 원전 산업계에 단비가 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다. 황 사장이 권위자이기도 한 사용후핵연료 처리 분야는 난제로 남아 있다. 일본 후쿠시마(福島)원전 사고 후 지속되고 있는 국민의 불안·불신을 줄이고 소형모듈원전(SMR) 등 차세대 미래 원전 기술 개발을 통해 세계 시장을 선점해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지난 3월 30일 서울 중구에 위치한 한수원 산하기관 방사선보건원에서 황 사장을 만나 그간의 소회와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사업비만 8조 원에 달하는 체코 두코바니 원전 사업을 놓고 미국 웨스팅하우스·프랑스 전력공사(EDF)와 맞붙었다. 승산 있는 싸움인가.
“우리는 실적으로 말한다.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전례가 있다. 예산 내에 공기를 맞춰 성공적으로 준공한 경험을 볼 때 우리 점수가 제일 높을 것이다. 계획된 예산의 2배를 더 들이고도 완공을 못 하는 국가들이 많다. 발주국들은 겁을 낸다. 한번 시작했다가 제때 못 끝내면 손해가 크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업역량·경제성·안전성·시공기술·공급망 등 모든 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3월에 ‘아프리카 뉴클리어 비즈니스 플랫폼 콘퍼런스 2023’에 참석했다. 참석자들에게 ‘전 세계 원전 짓는 회사 중 인지도가 가장 높은 국가가 어디냐’고 조사했더니 우리가 1위였다. 체코 사업은 한국 정부의 전폭적 지지하에 한수원이 중점적으로 추진 중인 최우선 과제다. 지난해 11월 말에 입찰서를 제출했고 올 9월 말 수정된 입찰서를 한 차례 더 제출할 예정이다. 결정은 물론 체코 정부나 정치권이 하겠지만 지역 지지도 중요하다. 인터뷰 후 옆방에서 체코·폴란드 원전 수주를 위한 회의를 한다. 지금부터가 정말 중요하다.”
―문재인 정부가 탈(脫)원전 정책을 추진한 것과 달리 윤석열 정부는 원전 활성화 정책을 펴고 있다. K-원전에 대한 해외 시각도 변했나.
“국가 정책이 탈원전을 벗어났기에 호의적으로 보는 게 사실이다. 기류 변화가 느껴진다. 2주 전 세계원자력사업자협회(WANO) 회의에 참석했는데 미국을 포함해 세계 각국의 발전 회사 사장들이 우리에게 관심을 표명하고 운영·건설 관련 도움을 요청하더라. 동력을 잃고 놔둔 것도, 추진하다 못한 것도 있는데 다시 불을 붙이고 있다. 어떻게 잘할지 퇴직자·현직자 등 각계각층으로부터 조언도 듣고 있다.”
―한·미 원전 동맹이 무색하게 지난해 말 미 웨스팅하우스가 ‘한국형 원자로는 자사 원자로 디자인을 기반으로 했다’며 한국전력공사와 한수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비핵화를 약속한 국가에 한·미가 공동 진출하자는 게 한·미 대통령 간 서명 내용이다. ‘어른들 밑에 자식들’은 상업적 문제로 티격태격할 수 있다. 하지만 결국엔 협조가 잘 될 것으로 기대한다. 공급망 문제 때문이다. 협력을 잘해야 한·미가 모두 안고 있는 공급망 문제를 지속성 있게 해결할 수 있다. 대통령의 방미 과정에서도 중소형 원자로 관련 협력 문제나 연료·공급망 문제를 추가로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정부의 원전 회복 정책에 힘입어 지난해 원전 발전량이 역대 최대치(17만6054GWh)를 기록했다. 하지만 한수원은 오히려 2018년 이후 4년 만에 이례적 적자를 기록했는데.
“우리나라 전력시장 구조는 한전과 발전공기업들이 한데 엮여 있다. 에너지 비용이 올라가면 전기요금 인상 없이 버티기 어렵다. 한수원도 흑자 규모가 3000억 원대, 1500억 원대로 줄더니 지난해 결국 적자로 전환했다. 한수원은 국내 전기 생산의 31%를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비용 보전은 전체 요금의 10∼11% 수준에 그치고 있다. 안 받은 20%포인트 안팎만큼 전기요금 상승 억제에 기여한 셈이다. 이걸 유지하려면 흑자가 나야 한다. 적자가 나기 시작했다는 건 굉장히 위험한 신호다. 한수원은 연간 2조 원 정도 국내외 채권을 발행하는데 이게 어려워진다. 채권 발행을 통해 건설 투자도 하고 설비도 개선하기 때문이다. 건전성을 유지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올해도 적자가 불가피해 보인다. 한두 해면 몰라도 3∼4년 갈까 걱정이다. 원전의 국가 경제 기여도에 따른 적정한 판매수익의 확보가 절실하다.”
―3월 29일 신한울 3·4호기 주기기 계약이 공식 체결되는 등 국내 원전 생태계 복구 기대감이 크다. 실질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있나.
“우선, 한수원 직원들의 자세부터가 달라졌다. ‘원자력을 안 하겠다’하면 용기도 안 나고 기운이 빠질 수밖에 없다. 지금은 활력이 돈다. 신한울 3·4호기 주기기 계약이 체결되면서 한 달 내 돈이 풀리고 그러면 분위기가 완전히 바뀔 것이다. 정부와 한수원은 원전 경쟁력의 핵심인 산업생태계 복원을 위해 일감 확보와 경쟁력 강화를 최우선 대책으로 천명했다. 지난해 한수원은 원전생태계에 1960억 원의 추가·조기 발주 분량을 포함해 1조3726억 원의 일감을 공급했다. 정부는 올해도 3조5000억 원대의 일감을 공급하겠다고 밝혔는데 한수원이 이 가운데 약 2조 원을 공급할 예정이다.”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가 ‘발등의 불’로 다가왔다. ‘사용후핵연료’ 분야 권위자이신데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사용후핵연료 전문가로 불린다고 하면 솔직히 굉장히 미안하다. 전공을 했으면 그걸로 문제를 풀었거나 국가적 부담을 더는 데 기여를 했어야 하는데 지난 30∼40년 동안 아무 답을 못 냈다. 왜 못 풀었냐 하면 계속 미뤄왔기 때문이다. 담당자가 나쁜 사람이라 미룬 게 아니다. 의무가 주어지지 않으면 움직일 이유가 없다. 공문이 아니라 법으로 해야 한다. 법제화를 몇십 년간 얘기해 왔다. 다행히 이번에 법안(중간저장시설이나 영구처분장 건설 설치 근거를 담은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에 관한 특별법’)이 3개 올라왔다. 다만 재원은 어떻게 마련하고 조직은 어떻게 구성하고 지원 체계는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 특히 언제까지 할 건지를 법에 명시해야 한다. 시행령에 들어가면 신뢰를 주지 못한다. 특히 유럽연합(EU)의 택소노미(분류체계)와 맞추는 게 중요하다. 택소노미란 게 금융지원 조건이 되는 건데 EU는 원자력을 택소노미에 포함하되 2050년까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을 위한 세부계획을 마련하도록 시한을 정했다. 원전을 지을 때 우리 돈만으로는 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도 비슷하게 가야 수출할 때 수월하다.”
―일본 후쿠시마(福島) 원전 사고를 계기로 원전에 대한 불신이 여전하다.
“한수원은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고 있다. 한수원 직원들 자체가 가족과 함께 원전 주변에 살고 있는 지역민이기도 하다. 안전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요즘 같이 SNS가 활발한 시대에 안전에 위배되는 내용이 있었다면 벌써 다 알려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보가 너무나 많은 시대이다 보니 자극적이고 잘못된 정보들이 떠돌며 막연한 불안과 두려움을 갖게 된다. 잘못된 정보는 적극적으로 바로잡고 정확한 사실을 국민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릴 생각이다. 오염수 배출도 마찬가지 문제다. 일본 어민들도 못 받아들인다. 과학적으로 우려할 수치가 아니라고 하지만 이 수치에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당사국이 좀 더 노력해야 한다.”
―소형모듈원전(SMR) 개발이 선도국 대비 늦었다. 시장 선점이 가능한가.
“우리가 2∼3년 늦게 시작했지만 다른 SMR 개발사와 비교해 보면 종합 능력은 우리가 월등하다. 아이폰에 녹음기·카메라·계산기 다 붙일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셈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는 한수원·한전을 통해 개발 자금을 주고 개발이 끝나면 인허가·건설허가를 신청하는 식의 직렬형이었다. SMR은 직렬형 사업으로 안 된다. 기본 설계가 끝나가는 이 시점에서 마케팅을 시작해야 한다. 올해 말 UAE의 두바이에서 열리는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를 시작으로 국제무대에서 대대적으로 마케팅을 개시할 거다.”
■ 한수원의 ‘1호 세일즈맨’
“취임 직후부터 이집트 등 발로 뛰며 홍보… 해외원전 10기 수주 목표”
고등학교 때 문과생이었던 황주호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이 공대로 진로를 튼 데는 어린 시절 봤던 SF 만화가 영향을 미쳤다. 황 사장은 “만화를 보면 주인공들이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게 아니라 에너지 밀도가 높은 ‘신비한 에너지 돌’과 같은 것을 차지하려고 싸우지 않느냐”며 에너지 밀도가 여타 에너지원보다 높은 원전에 호기심을 갖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글로벌 에너지 위기 한가운데서 국내 유일의 원전 운영사를 이끌고 있는 그는 “인구 밀도가 높고 산업이 없인 못 사는 나라는 에너지를 고도화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 사장이 취임 후 역점을 둔 분야는 ‘탄소중립’이란 새로운 에너지 패러다임에 대응하고 새 정부 국정과제와 에너지 정책에 맞춰 한수원 운영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탄소중립 청정에너지 리더’를 새 비전으로 제시하고 ‘1(원)·10(텐)·10(텐)·10(텐)·10(텐)’을 추진하고 있다. 1(원)은 안전 최우선을, 4개의 10(텐)은 각각 해외원전 10기 수주·계속 운전 10기 추진·원전 이용률 10% 향상·양수발전소 10기 운영을 뜻한다. 특히 ‘현장에 답이 있다’는 게 황 사장 신념이다. ‘한수원 1호 세일즈맨’이라는 생각으로 취임 직후부터 이집트·체코·폴란드·우간다 등을 직접 방문해 발로 뛰는 홍보를 하고 있다. 황 사장은 “주어진 과제가 많다”며 “임기 중에 계속 운전을 신청해야 하는 원전만 해도 10기에 달하는 만큼 계속 운전에 차질이 없도록 철저히 챙기고 신한울 3·4호기의 공사재개를 통한 원전생태계 활성화와 안전을 담보로 한 원전 이용률 제고에도 힘쓰겠다”고 말했다.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학사 △조지아공대 보건물리 석사·원자핵공학 박사 △국가과학기술위원회 국가주도기술전문위원회 위원장 △제15대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장 △제17대 한국에너지공학회 회장 △제29대 한국원자력학회 회장 △경희대 국제캠퍼스 부총장 △산업통상자원부 수출자문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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