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요금 안올리면 전력발 금융위기 올수도… 1분기만큼은 인상해야”

박수진 기자 2023. 4. 12.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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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너지요금 점검’ 긴급 좌담회
에너지 자금조달 비상
작년 한전 적자 - 가스公 미수금
합치면 40조원대 천문학적 규모
빚 계속 쌓여 한전채 과다 발행
국민 부담 증가 어쩌나
요금 현실화 안되면 더 쓰게 돼
전력소비자가 낼 돈 납세자부담
인상 또 미루면 미래세대 전가
자구책 마련한다면
해외자산 처분한다해도 1조~2조
향후 수익 날수도 있는 자산인데
함부로 팔았다간 경쟁력만 깎여
국제 에너지 시장 전망
유가도 하반기 갈수록 오를 듯
文정부 탈원전에 수급도 어려워
요금 결정할 독립규제기구 필요
당정이 2분기 전기요금과 가스요금 결정을 보류한 가운데 손양훈(왼쪽 첫 번째)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 조성봉(〃 두 번째)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 김은기(〃 세 번째) 삼성증권 리서치센터 수석연구위원이 지난 10일 경기 과천시 한국화학융합시험연구원(KTR)에서 문화일보 주최로 열린 ‘에너지 요금 결정 방향 논의를 위한 긴급 좌담회’에 참석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윤성호 기자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

조성봉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

김은기 삼성증권 수석연구위원

사회 = 박수진 차장 sujininvan@munhwa.com

정리 = 전세원 기자 jsw@munhwa.com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촉발된 전대미문의 글로벌 에너지 위기로 원유·가스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며 에너지자원 빈국(貧國)인 우리나라에 지워지는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원료 값이 뛰며 전력·가스를 판매하는 한국전력공사·한국가스공사의 적자나 미수금(원료는 비싸게 들여오고 요금은 그만큼 올리지 못해 쌓인 금액)은 천문학적 수준까지 급증했다. 이런 가운데 당정은 2분기 전기·가스요금 조정 결정을 유보하며 사실상 요금 동결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문화일보는 지난 10일 경기 과천시 한국화학융합시험연구원(KTR)에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 조성봉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 김은기 삼성증권 리서치센터 수석연구위원을 초청해 에너지 요금 조정 보류의 파장·원인·대책을 점검·논의하기 위한 긴급 좌담회를 개최했다.

△사회=2분기 전기·가스요금 결정이 유보됐다. 어떤 방향으로 조정돼야 하나.

△손양훈(이하 손)=급등한 에너지 가격을 국내 요금이 반영하지 못했다. 지난해 엄청난 수준의 천연가스 가격 폭등으로 한전은 대규모 적자가, 가스공사는 대규모의 미수금이 쌓였다. 합치면 40조 원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적자나 미수금 문제가 있었지만 2조9000억 원 수준이었다. 지금은 10배가 넘는다. 어렵다 정도가 아니라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다. 더 넘어가면 심각하다.

△사회=어느 정도 인상이 필요한가. 동결 시 어떤 문제가 나타날 수 있나.

△손=대폭적 인상은 불가피하다. 적자나 미수금만이 문제가 아니다. 하루에 50억 원 정도의 이자가 붙는다고 한다. 국민 부담으로 이어지게 된다. 한전이 국회에 제출한 적정 인상액은 ㎾h당 51원 수준이다. 1분기에 4분의 1 정도인 13.1원을 올렸다. 2분기도 그 정도는 돼야 한다. 주저하면 지금 같은 적자 상태가 계속 갈 수밖에 없다.

△조성봉(이하 조)= 5원 인상 얘기가 나오던데 턱도 없다. 지난해 한전 적자가 32조 원이 넘는다. 올해만 7조 원 가까운 회사채를 발행했다. 한국전력공사법(한전법)이 통과돼 회사채 발행 한도가 늘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등이 모여 올해 한전채 발행 규모를 관리 가능한 수준인 10조 원 내로 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미 7조 원을 발행했다. 앞으로 3조 원 남았다. 전기요금이 원가의 70%에 그치며 전기를 팔수록 손해가 늘어나는 상황이다. 요금을 올리지 않으면 적자가 더 쌓일 수밖에 없다. 분기별로 최소 13.1원에 가깝게 올려야 한다.

△김은기(이하 김)=지난해 회사채 발행 규모가 47조 원인데 한전채 단일 발행 규모가 32조 원대다. 연못에 고래 한 마리가 들어앉은 상황이다. 한전이 통상 5조∼10조 원 정도씩 발행하다 지난해 3배 규모를 발행했다. 회사채 시장이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발행금리도 큰 폭으로 상승해 회사채 금리보다 한전채 금리가 훨씬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 한전채의 경우 트리플A(AAA) 등급에 정부가 원리금 상환을 보증할 수 있으니 나머지 회사채 시장에 구축(驅逐) 효과가 나타났다. 전기요금이 인상되지 못하면 한전채가 크게 증가하며 수급 불안·시장 불균형이 초래될 수밖에 없다. 1분기 올린 정도의 인상을 통해 과도한 쏠림현상을 해소해야 한다.

△손=초우량 기업인 한전의 회사채 과다발행으로 자본시장이 경색됐다. 특히 올해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 징조가 보이고 있는 가운데 지난해 같은 규모로 발행할 경우 전력발(發) 금융위기가 올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김=기업들이 현금 자본을 확보하려고 회사채 발행을 크게 늘리고 있다. 하반기가 되면 주택저당증권(MBS)·회사채 발행량이 늘어날 수밖에 없을 텐데 한전채가 큰 폭으로 증가하면 시장의 수급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손=특히 한전의 상당 지분을 KDB산업은행이 갖고 있다.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을 지켜야 하는데 이 비율이 내려가게 된다. 그러면 산은이 지분을 더 넣어야 하고 이게 반복되면 금융기관으로서 해야 할 역할에 제약이 생긴다.

△조=산은이 한전 대주주인데 한전채가 부채로 잡히며 우발채무가 발생한다. 대기업 등에 돈 빌려줄 일이 많은 금융기관인 산은이 부채가 증가하니 부실금융기관이 될 수밖에 없다.

△사회=가격 현실화 필요성에 공감하더라도 국민 부담 증가와 이에 따른 반발은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정치권과 정부가 인상에 신중을 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손=국민이 기억하는 재정규모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것이 ‘4대강 사업’이다. 당시 사업비가 22조 원이었다. 지난 한 해 에너지 시장 적자는 2배에 달하는 셈이다. 4대강 사업이야 댐이나 보가 남아 있고 가뭄 해소 역할이라도 했는데 에너지 적자는 빚만 남은 셈이다. 물론, 국민 부담을 해소하면서 요금을 조정할 수 있다. 하지만 모른 척하고 외면하는 사이 적자 폭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 됐다.

△조=전기요금이 오르나 나중에 세금을 내나 그게 그거 아니냐고 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다. 소비자가 낼 돈을 납세자가 내야 한다. 무슨 차이냐 하면 전기요금을 올리면 소비자가 전기를 아껴 쓰게 되고 적자는 감소한다. 그러면 당연히 납세자가 낼 돈도 줄어든다. 하지만 요금을 올리지 않으면 전력 소비는 커진다. 싸니까 많이 쓰기 때문이다. 그럼 세금 지출이 커진다. 수익자 부담 원칙을 어기게 되는 거다. 가격 신호(시그널)가 없으면 자원배분 문제가 생긴다. 요금을 올려야 적자 규모도 줄고 자원 배분도 된다.

△손=2가지 공정의 문제다. 전기를 지금 세대가 쓰고 지불은 나중에 해버리면 다음 세대가 억울하다. 또 요금이 싸니까 전기를 많이 쓰면 이득이고 아끼는 사람이 손해를 본다. 세대와 지불의 불균형이다.

△조=여름이 되면 에너지 소비가 늘어나고 그러면 더 못 올린다. 지금은 막 겨울이 지났으니 사용량이 적고 인상이 되더라도 체감도는 덜하다. 여름철 돼서 올리면 그야말로 요금 폭탄이다. 지금 올려서 국민이 에너지를 아낄 수 있도록 하는 게 좋다.

△손=국민 살림과 물가를 걱정해서 전기요금을 안 올릴 것처럼 얘기하지만, 문제는 이게 해결이 아니라 뒤로 이연시키는 데 불과하다는 거다. 누구도 대신 지불해주지 않는다. 지금 내지 않으면 이자까지 물어야 한다.

△사회=올 2분기에 올린다고 해도 한 분기 만에 올 연간 적정 인상액 수준까지 올리긴 불가능할 텐데 3∼4분기 인상 가능성은 어떻게 봐야 하나.

△조=내년 4월이 국회의원 총선거다. 총선 7∼8개월 전에는 요금을 못 올린다. 진보와 보수를 떠나 노무현 정부부터 문재인 정부까지 전기요금을 못 올렸다. 결국 여름이 지나면 못 올린다는 셈이다. 지금 올리지 못하면 쉽지 않다. 올릴 수 있을 만큼 올려야 한다. 13.1원이라도 인상하면 다음 분기에도 누적 효과가 이어지니 원가 대비 요금이 그나마 70%에서 80% 수준으로라도 올라간다.

△손=2016년쯤 냉방비가 폭주하며 전기요금 누진제 파동이 일어났다. 이때 누진제 완화로 소비가 늘었다. 지금처럼 요금을 유지하면 소비자들이 요금 걱정을 안 한다. 2016년 사태 재발을 방지하는 유일한 방법은 전기요금 인상이다.

△사회=한전·가스공사 등 에너지 공기업의 자구책 마련과 구조조정이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조=한전과 가스공사가 28조 원의 자구노력을 한다는데 아끼는 것도 한계가 있다. 해외자산을 처분해도 1조∼2조 원이다. 공기업 자산도 국민 자산이다. 향후 수익이 날 수도 있는데 함부로 팔았다가 나중에 한전 경쟁력을 깎아 먹게 된다. 이런 구조조정은 안 된다.

△손=독점시장이고 국가 소유다 보니 방만 경영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구조개편·구조조정은 장기적 이슈여야 한다. 한전·가스공사뿐 아니라 공기업 전반의 고질적 문제고, 해결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 급박하게 해결해야 할 요금 문제를 여기에 들이대면 맞지 않는다.

△사회=우리나라 전반적 에너지 가격은 어떻게 평가하나.

△손=지난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 위기가 닥치며 각 나라는 요금인상·대체에너지 발굴·효율성 개선으로 빠르게 대응효율을 개선했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나라들이 우리나라가 요금을 올리지 않고 버티는 걸 보며 놀란다고 한다. 요금 동결은 결국 조삼모사다.

△조=우리나라는 굴뚝 국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철강·조선·석유화학·시멘트·반도체 등 제조업 비중이 큰 나라고, 제조업이 에너지 수요가 많다. 그런데 요금이 싸니까 많이 쓸수록 이득인 셈이다. 아껴 쓰는 사람만 손해 보는 구조다. 시그널을 줘야 하는데 정권을 유지하고 선거를 치르면서 요금 인상 타이밍을 놓쳤다. 저렴한 에너지 요금구조가 악순환을 되풀이하게 한다.

△사회=국제 에너지 가격은 향후 오름세인가.

△손=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가격 폭등 현상은 일단 가라앉았다. 하지만 지난해 말 전 세계 기온이 높았던 덕분으로 유럽 각국은 이제 다음 겨울을 위해 가스 비축에 들어갈 것이다. 석유도 마찬가지다. 석유수출국기구(OPEC)플러스(+)가 감산을 선언했고 유가가 10% 뛰었다. 에너지 가격이 하반기로 가면 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조=러시아산 가스 공급 중단으로 우리가 구매할 중동(카타르), 북아프리카(알제리), 미국산(셰일가스) 등을 유럽이 구매하고 있다. 유럽이 올겨울을 대비해 비축을 시작하면 에너지 가격이 오르고 한전과 발전회사들의 구입비용도 올라간다. 하반기에 한전 적자 폭이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김=OPEC+감산으로 국제 유가는 변동 폭이 커지고 있다.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에 진입할 것이란 예측마저 나온다. 전력이나 가스요금을 올리지 못하면 에너지 도입 단가를 대처할 요인이 크지 않다.

△사회=지적하신 대로 요금도 걱정이지만 수급 자체가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조=2011년 9·15 순환 정전이 있었다. 그 직전에 유가는 쭉 올랐는데 전기요금을 올리지 않으니 다른 걸 전기로 바꿔 쓰는 경향이 생긴 거다. 전기가 싸니까 시스템에어컨을 다 설치하고 인덕션으로 바꾸고 경유로 짐을 들어 올리던 항만에서도 모두 전기를 쓴다. 전력으로 대체하고 소비는 늘고 수요는 올라가고 전기가 모자르다 보니 정전이 발생한 거다. 요금이 정상화해야 증가하는 수요를 줄일 수 있고 수급 우려를 덜 수 있다.

△손=수급 문제 원인으로 문재인 정부 탈(脫)원전 정책-무모한 에너지 개혁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다 지은 걸 중단하고 가동하지 않았다. 신고리 5·6호기, 신한울 1∼3호기 등 5개 원전은 문재인 정부 때 결정으로 아직 가동이 안 되고 있다. 대신 천연가스를 가동했는데 비싸게 사와야 한다. 9일에 정지한 고리 2호기를 봐라. 지난 정부에서 가동 연장을 신청하지 않아 2년을 쉬어야 하고 한 시간에 1억 원씩 가스 구입비로 써야 한다.

△김=중국 경제활동이 재개(리오프닝)되면서 소비가 확 늘고 에너지 공급 불안 이슈가 제기되고 있다. 과잉 소비를 유도할 정책은 피해야 한다.

△사회=에너지 요금, 특히 전기요금은 2분기뿐 아니라 매분기 결정 때마다 가격 현실화와 물가 안정 딜레마 사이에서 논란이 돼 왔다. 현재 전기요금 결정 근거가 되는 ‘연료비 연동제’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요금 결정을 위한 독립위원회 설립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지만, 물가 등 전반적 경제 상황을 고려하다 보면 독립위원회가 운영된다 하더라도 결국 지금과 크게 달라지지 않을 거란 시각도 있다.

△조=‘물가안정에 관한 법률’은 ‘공공요금을 규제할 때 총괄원가를 바탕으로 하되 다른 경제상황도 고려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총괄원가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은 근거가 된다. 이 법률에 따라 비용을 제대로 준 적이 없다. 물가안정법을 고치고 독립규제기구를 설립해야 하는 이유다. 외국은 요금을 결정하는 독립기구가 사법기관 1심과 같은 역할을 한다. 수요자인 기업과 공급자인 한전 같은 기관이 서로 원고, 피고가 돼 싸우고 독립기구가 양쪽 이야기를 다 들어준다. 불복하면 2심으로 갈 수도 있다.

△김=경제 상황이 좋을 땐 좋으니 안 올리고, 어려울 땐 국민 부담 때문에 또 못 올린다. 지금 제도를 현실화하고 효율화해야 한다.

△손=독립 규제기관이 정부 일부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다. 독립된 사람이 안건에 따라 판정을 하는 사법부 역할을 한다. 지금도 전기위원회가 있긴 하지만 물가 당국과 정치권 입김에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독립성을 키워 기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좌담회는 산업통상자원부가 지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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