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과 사라지고 간호법은 '시끌'…끊임없는 업권 줄다리기
[머니투데이 정심교 기자]
의료계 직역간 갈등이 국민의 건강권을 위협하고 있단 지적이 나온다. 동네 소아청소년과의원은 사라질 위기에 처했고, 최근 '응급실 뺑뺑이'(응급실 재이송)로 10대 청소년이 골든타임을 놓쳐 사망하면서 '아파도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전 국민의 우려가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의료계의 해결되지 않은 과제를 짚어본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지난달 29일 '소아청소년과 폐과와 대국민 작별 인사'란 주제로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언급하며 머리를 조아렸다. 소아청소년과의원, 쉽게 말해 '동네 소아과'의 결집 단체인 이 의사회에 따르면 현재 전국에서 소아청소년과의원을 운영하는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약 3500명)의 약 90%는 1년 이내 문을 닫거나, 현재의 소아청소년과의원 간판을 내리고 진료과목을 바꿀 예정이라는 것이다.
이에 4일 환자단체연합회는 성명을 내고 "현행 응급의료 체계에선 응급의료기관의 인력·병상·장비 등에 관한 정보도 실시간으로 제공되지 않아 중증 응급환자의 경우 구급대원이 일일이 개별 응급의료기관에 전화해서 수용 가능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고 지적하며 "119구급대가 응급환자를 이송할 응급의료기관을 신속히 선정하기 위해 응급의료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게 해달라"고 정부에 제안했다.
당정은 지난 5일 일명 '응급환자 구급차 뺑뺑이 사망사건' 재발을 막기 위해 "전국 어디서나 1시간 이내에 접근할 수 있도록 중증 응급의료 센터를 현재의 40개소에서 60개소로 확충하는 계획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앞서 11일, 국민의힘과 정부는 간호법과 의료법 중재안을 마련하기 위해 보건·의료단체들과 '의료현안 민당정 간담회'를 열었지만, 대한간호협회(이하 간협)가 중재안에 반발하면서 또다시 혼란에 빠졌다.
이날 나온 중재안에 따르면 당정은 간호법의 명칭을 '간호사 처우 등에 관한 법률'(간호사 처우법)로 바꾸자고 제시했다. 이와 함께 간호법 제정안 제1조에서 '지역사회' 문구를 삭제하고, 간호조무사의 학력 요건을 '특성화고 이상'으로 변경하자는 내용을 담았다. 하지만 이에 대해 간협 관계자들은 크게 반발하며 간담회가 종료되기 전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이들은 "이미 합의된 내용에 대해 수정하려고 한다"며 "자리 자체가 불공정하다. 간호법을 반대하는 사람들만 모아놓고 회의했다"고 항의했다.
간호사들이 간호법 제정에 절실한 데는 3년 후 예고된 '초고령화 사회 진입'과 맞물린다. 고령의 만성질환 환자가 늘면서 '병원 밖' 즉, 지역사회에서 확대될 간호사의 역할을 법적으로 보호받기 위해서다. 현행 의료법은 의료기관(병원) 중심이어서 간호사가 지역사회에서 수행하는 역할을 간호행위로 포함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의사를 비롯한 13개 직역의 단체인 보건복지의료연대는 "지역사회에서의 간호사 업무를 인정하는 순간 간호사가 의사의 지시 없이도 단독 개원할 수 있고, 임상병리사·간호조무사·응급구조사 등 타 직역의 업무 권한을 침범할 법적 빌미를 제공하는 셈"이라며 강력히 반발해왔다. 보건복지의료연대는 13일 간호법이 국회에서 통과하면 16일 서울 시청 앞에서 총궐기대회를 열고, 파업도 불사하겠다고 예고한 상황이다.
간호법 제정을 둘러싼 각 직역 간의 불협화음에 대한 원로의 충고도 나왔다. 전(前) 순천향의대 예방의학교실 박윤형 교수는 "사실 병원 현장에선 의사와 간호사의 협력에 문제가 없지만 간호법 등 정책적 이슈가 확산하면서 두 직역 간 갈등·투쟁 구도가 프레임화하고 있어 안타깝다"면서도 "국민 건강이 우선인 만큼 의사와 간호사 단체가 대화로 문제를 풀어나가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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