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의 색과 시간

서울문화사 2023. 4. 1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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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나온 증류주의 안팎에 담긴 이야기들.

이연56

한국산 고량주의 명맥은 지난 30년 가까이 끊겨 있었다. 채산이 안 맞아서다. 고량주의 주원료인 수수는 한국에서 잡곡으로 분류된다. 잡곡이니 보통 남는 땅에서 재배하고, 배수를 위해 주로 경사지에서 키우기 때문에 경작이 쉽지 않다. 중국산 고량주가 한국 고량주 시장의 점유율을 대부분 차지한 이유다. 이연56은 그런 상황 속에서 태어난 술이다. 만든 이는 다름 아닌 ‘중식 대가’ 이연복 셰프.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딴 술에 좋은 인연을 뜻하는 ‘利緣’으로 새 뜻을 새겼다. 보통 고량주는 강한 향 때문에 향신료를 많이 쓰는 중식과 잘 어울린다. 하지만 이연복 셰프는 이연56이 한식에도 잘 어울리길 바랐다. 그래서 고량주 특유의 쿰쿰한 향을 덜고 수수 자체의 향에 집중하여 풍미를 올렸다.

알코올 함량 56%

용량 500mL

가격 선물세트 19만원, 싱글 패키지 16만원

기원 배치 1

2020년 6월, 경기도 남양주에 한국 최초의 싱글 몰트 증류소인 쓰리소사이어티스가 문을 열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2023년 봄 선보인 술이 기원 배치 1이다. 기원 배치 1의 특징은 한마디로 매운맛이다. 쓰리소사이어티스 대표 도정한은 ‘한국 위스키의 맛’을 고민하던 중 백반집의 제육볶음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매콤한 맛을 모티브로 삼았다. 이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스코틀랜드 출신 마스터 디스틸러 앤드류 샌드가 기원 배치 1의 맛을 다듬었다. 실제로 술을 입안에 머금으면 바나나, 바닐라, 복숭아의 단맛 사이로 매콤한 맛이 올라온다. 물론 여기서 매운맛은 청량고추의 얼얼함이 아닌 코와 혀끝을 때리는 마라의 화한 맛에 가깝다. 매콤달콤. 한국적인 맛이다.

알코올 함량 40%

용량 700mL

가격 14만9천원

트러플 진

트러플은 특유의 향과 풍미, 그리고 값비싼 가격으로 유명하다. 2023년 한국에서 트러플은 트러플맛 새우깡, 트러플 짜파게티, 트러플허니 아이스크림까지 나온 덕에 비교적 익숙한 식재료가 됐다. 트러플 맛 음식이 어디까지 나올 수 있을까 싶던 차에 메타베브코리아에서 새로운 술을 국내에 들여왔다. 트러플 진이다. 트러플 진을 만든 케임브리지 증류소는 영국 케임브리지 주변의 초원에서 재배된 계절 식물을 사용해 최고급 진을 생산한다는 자부심을 내걸고 있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우리가 보통 먹는 트러플은 검은색이다. 술 역시 검은빛이 돌아야 앞뒤가 맞는다. 그런데 트러플 진에는 이탈리아 피에몬테 알바 지역에서 생산한 흰 송로버섯이 들어간다. ‘땅속의 다이아몬드’로 통하는 고급 품종이다.

알코올 함량 42%

용량 700mL

가격 20만원 후반대

산토리 가쿠빈 100주년 패키지

지금 보는 위스키는 가쿠빈의 ‘산토리 위스키

1백 주년’ 패키지다. 일본 최초의 양조장, 야마자키 증류소 설립 1백 주년을 맞아 오는 4월 출시된다. 병을 담은 한정판 패키지에는 산토리 위스키 1백 주년을 기념하는 금장 로고가 자리 잡고 있다. 맛은 똑같은 가쿠빈이지만 한정판이라는 심리적 후광을 생각하면 욕심낼 사람이 있을 법하다. 요즘 중고 시장에서는 가쿠빈 공병이 활발히 거래된다. 참고로 가쿠빈은 원래 제품명이 아니었다고 한다. 위스키 마니아가 ‘각진 병’이라고 부르던 애칭이 정식 이름으로 굳어졌는데, 유리병에 새겨진 특유의 거북이 등껍질 모양 패턴은 행복과 행운을 상징한다. 집에 모셔둔 가쿠빈 공병을 보고 누가 “저건 왜 둔 거야?” 물어본다면 꺼내기 좋을 이야기다.

알코올 함량 40%

용량 700mL

가격 3만원 후반대

Editor : 주현욱 | Photography : 박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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