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학폭 피해자가 원치 않으면 부모가 고소 못한다?

이웅 2023. 4. 12.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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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소법에 '법정대리인의 고소권' 규정…대법원 판례 "피해자 반대해도 행사 가능"
경찰청 "피해학생·부모 모두 고소 가능…매뉴얼상 학생 의견 우선 고려"

(서울=연합뉴스) 이웅 기자 = 학교폭력 피해자 고(故) 박주원 양 유족이 제기한 소송이 변호사의 재판 불출석으로 물거품이 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학교와 수사 당국의 부실 대응 문제로까지 논란이 번지고 있다.

주원 양 어머니 이기철 씨는 지난 6일 MBC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그(경찰서 여성청소년계) 담당자가 어머니가 고소를 하고 싶다고 하더라도 본인이 원하지 않으면 할 수 없다면서, 주원 양하고 얘기하고 싶은데 어머니는 밖에 계시고 둘이 안으로 들어가서 얘기하겠다 했다"고 10여년 전 경찰서에서의 일을 설명했다.

이어 "여청계 담당자가 나와서 저한테 주원이가 (고소를) 안 하고 싶다고 한다면서 보복이 있을 것을 두려워한다고 그렇게 얘기했다"고 덧붙였다.

주원 양이 중학교 재학 당시 가해 학생들로부터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사이버폭력을 당한 뒤 학교로부터 전학을 권유받자, 어머니가 경찰서로 찾아가 고소 의사를 밝혔으나 주원 양의 반대를 이유로 고소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렇다면 실제로 학교폭력을 당한 자녀가 고소를 원하지 않는 경우 부모는 가해자를 고소할 수 없는 걸까?

학교폭력, 상처 (PG) [강민지 제작] 일러스트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수사기관에 범죄사실을 신고해 범인의 처벌을 구하는 고소권은 기본적으로 직접적인 범죄 피해자에게 있다.

그러나 이 법 225조는 '피해자의 법정대리인은 독립하여 고소할 수 있다'며 범죄 피해자가 아닌 법정대리인의 고소권을 별도로 규정해 두고 있다.

19세 미만 미성년 자녀의 친권자인 부모는 법정대리인에 해당한다.

'법정대리인의 고소권'에 대해선 두 가지 학설이 있는데, 하나는 법적 무능력자인 범죄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법률로 부여한 법정대리인의 고유 권한으로 보는 '고유권설'이고, 다른 하나는 친고죄에 있어서 법률관계의 불안정을 피하기 위해 규정한 독립대리권으로 보는 '독립대리권설'이다.

고유권설은 법정대리인이 피해자와 별개로 고소권을 행사하고 법정대리인의 고소를 피해자가 취소할 수 없는 것으로 보지만, 독립대리권설은 법정대리인의 고소를 피해자가 취소할 수 있다고 본다.

우리나라 사법부 판례는 이 중 '고유권설'을 따른다. 대법원은 관련 사건 판결문(99도3784)에서 "법정대리인의 고소권은 무능력자의 보호를 위하여 법정대리인에게 주어진 고유권이므로 법정대리인은 피해자의 고소권 소멸 여부에 관계없이 고소할 수 있고, 이러한 고소권은 피해자의 명시한 의사에 반하여도 행사할 수 있다"고 판시해 놨다.

이 같은 법리에 따르면 학교폭력 사건의 경우 피해를 본 자녀의 의사와 무관하게 혹은 자녀가 반대하더라도 법정대리인인 부모는 가해자를 고소할 수 있고, 부모가 한 고소를 피해 당사자인 자녀가 취소할 수 없다.

법무법인 바른의 최승환 변호사는 "법정대리인인 부모는 미성년자인 피해 자녀의 의사에 반해서도 가해자를 고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설령 자녀가 가해자를 고소했다가 취소해 고소권이 소멸했더라도, 법정대리인인 부모의 고소권은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에 별도로 가해자를 고소할 수 있다.

법무법인 강남의 이남수 변호사도 "피해자가 미성년자라면 법정대리인인 부모에게도 고소권 있다"며 "법정대리인은 피해자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독립적으로 고소를 할 수 있고 피해자가 고소했다가 취소해도 법정대리인은 고소를 유지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법원 [연합뉴스 사진자료]

피해자와 법정대리인의 독립적인 고소권에 관한 법리는 학교폭력을 비롯한 제반 범죄 사건에 동일하게 적용된다.

아울러 피해 당사자인 자녀도 법정대리인인 부모와 별개로 고소권을 행사할 수 있다. 부모가 피해 자녀의 의사를 묻지 않고 가해자와 합의해 고소를 취하했더라도 자녀 스스로 고소하거나 고소를 유지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학교폭력은 아니지만 실제로 이와 유사한 사례를 찾을 수 있다. 2005년 성폭행 피해 청소년인 A양의 아버지가 딸에게 알리지 않고 가해자인 B군 측으로부터 수백만 원의 합의금을 받고 고소를 취하해 구속됐던 B군이 풀려나고 형사처벌도 어렵게 됐다. 이를 뒤늦게 알게 된 A양이 합의 무효를 주장하며 탄원서를 제출하자 경찰과 검찰은 B군에 대한 구속영장을 재청구했고, 법원은 법정대리인인 부모가 고소를 취하했더라도 피해자 본인의 고소권은 유효하다며 영장을 발부했다.

정리하면 미성년 자녀가 학교폭력 피해를 당한 경우 피해 자녀와 부모 모두 고소권이 있기 때문에, 설령 자녀가 고소를 원하지 않아도 부모는 가해자를 고소할 수 있다. 이기철 씨의 진술이 맞다면 피해 자녀의 동의 없이는 부모가 고소할 수 없다고 했던 담당 경찰관의 사건 대응에 하자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경찰청 담당자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고소권은 미성년 피해자도 있고 보호자에게도 있기 때문에 부모는 피해자 의사와 상관 없이 무조건 고소할 수 있다"며 "다만 학교폭력 사건 처리 매뉴얼상 피해 당사자인 학생의 의견을 우선하여 고려하도록 돼 있다"고 밝혔다.

날아가라 학교폭력 (서울=연합뉴스) 한상균 기자 = 24일 청계천 한빛광장에 '학교폭력, 사이버폭력 예방 캠페인' 참여자들이 날린 학교폭력 아웃 상징 종이비행기가 놓여 있다. 2023.3.24 xyz@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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