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직지’ 50년 만에 외출…실물 보니

50년만에 공개된 고려시대의 세계최고금속활자본 <직지심체요절>.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600여년 전 금속활자본이 50년 만에 살포시 펼쳐진 제 모습을 드러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14세기 고려시대의 불교서적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 이하 직지)이 11일 낮(현지시각) 프랑스 파리 전시장에 나왔다. 직지를 소장한 프랑스국립도서관(BnF)은 12일부터 여는 ‘인쇄하다! 구텐베르크의 유럽’(Imprimer! L’Europe de Gutenberg) 특별전 개막을 앞두고 대표적인 출품 유물중 하나인 직지를 문화재청과 불교종단 조계종 등의 한국 쪽 관계자들과 현지 언론에 먼저 내보였다.

직지는 도서관 1층 전시회장 들머리 유리 진열장에 놓여 관객을 맞았다. 책의 앞 부분을 살짝 펼쳐놓고 고정한 모습이다. 책면 종이들은 누렇게 바랬지만, 활자는 명확하게 식별할 수 있는 상태다. 전시회에서는 직지와 함께 15세기 독일인 구텐베르크가 서구 최초로 간행한 금속활자본 성경(1455), 문서나 책에 찍기 위해 그림과 문자를 새긴 유럽 중근세 시기의 판목 등 동서양 인쇄문화의 역사를 담은 각종 유물 270여점이 출품돼 선보일 예정이다.

직지는 고려 말 1377년(우왕 3년) 충북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인쇄해 펴낸 책이다.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본 성경보다 78년 앞서 만들어졌다. 책의 전체 명칭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로, 상·하 2권을 간행했으나 오늘날은 하권만 전한다.

11일(현지시각) 열린 사전 언론 공개행사에서 도서관 관계자가 <직지> 유물을 가리키며 취재진에게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을 조선 시중에서 수집해 프랑스로 가져간 이가 19세기 말 조선 대리공사를 지낸 프랑스 외교관 콜랭 드 플랑시(1853∼1922)다. 이후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처음 전시된 뒤 경매로 책을 넘겨받은 현지 수집가 앙리 베베르가 프랑스국립도서관에 1950년 기증했다. 1972년 도서관 사서였던 재불서지학자 박병선(1928~2011)이 집요한 연구 끝에 세계 최고 금속활자본임을 입증해 알리면서 직지의 역사적 가치가 드러나게 됐다. 200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목록에 올랐으나 책 실물은 1972년 유네스코 ‘책의 해’ 전시회와 1973년 ‘동양의 보물’ 전에서 공개된 뒤 수장고로 들어가 그뒤 50년간 일체의 전시 없이 보관돼 왔다.

프랑스국립도서관 쪽은 “유럽에서 구텐베르크가 15세기 (금속활자로 된) 활판 인쇄술을 내놓기 전부터 한국과 중국에 유사한 기술이 있었다는 사실을 전시장에 선보인 직지가 증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김정희)은 이날 현지에서 프랑스국립도서관 쪽과 전시 등의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도 체결했다. 전시회는 7월16일까지 열린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도판 문화재청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