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도 끝도 오타니
지난 3월 8일 시작해 21일 막을 내린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은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 개막을 앞두고 야구 열기에 불을 지펴준 대회였다.
이 대회를 뜨겁게 만든 건 한 명의 동양인 선수였다. 일본인 메이저리거 오타니 쇼헤이(29)가 대회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화제를 몰고 다녔다.
투타 겸업을 해 ‘이도류’라고 불리는 오타니는 이번 대회에서도 타자와 투수로서 바삐 그라운드를 누볐다. 타자로 7경기 타율 0.435(23타수 10안타) 1홈런 8타점 9득점 10볼넷, 투수로 3경기 2승 1세이브 평균자책 1.86으로 투타에서 엄청난 활약을 펼쳤다. 오타니는 대회 최우수선수(MVP)를 차지했다. 오타니에서 시작해 오타니로 끝난 경기였다.
오타니는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전세기로 미국에서 일본까지 이동했다. 일본 현지 매체에 따르면 탑승 비용만 편도 기준 최소 1000만엔(약 9660만원)에 육박했다.
경기 열릴 때마다 일본 팬들로 가득
경기가 열릴 때마다 오타니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기 위한 일본 팬들로 경기장은 가득 찼다. 수십명의 취재진이 오타니를 주목했다. 도쿄돔 앞에 마련된 ‘굿즈(goods)숍’은 문전성시를 이뤘다.
오타니는 B조 조별리그 첫 경기인 중국전에서 선발로 등판해 팀의 승리를 이끈 뒤 일본 대표팀의 우승을 결정짓는 미국과의 결승전에서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으며 경기를 끝냈다. 그야말로 오타니의, 오타니에 의한, 오타니를 위한 대회였다.
대회 기간에 오타니는 많은 어록을 남겼다. 결승전을 앞두고선 “오늘은 미국을 동경하지 말자. 1루에 폴 골드슈미트가 있고, 중견수에는 마이크 트라우트가, 다른 외야 한 자리에는 무키 베츠가 있다. 누구나 들어본 이름이다. 그러나 오늘 하루만은 그들을 동경하는 마음을 버리자. 미국을 동경하면 그들을 넘어설 수 없다. 우리는 그들을 넘어서기 위해, 세계 제일이 되기 위해 이곳에 왔다”라고 말했다.
우승한 뒤에는 “일본뿐 아니라 한국, 대만, 중국 등 아시아, 전 세계 다른 나라에서도 야구가 더 사랑받았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이 동력이 돼 우리가 우승할 수 있었다”라고 대회의 조연이 된 다른 나라 선수들까지 언급하며 그들을 챙겼다.
오타니가 우승을 확정 짓고 포효하며 던진 모자는 미국 야구 명예의전당에 전시된다. 오타니는 대회 기간 착용했던 유니폼, 모자 등을 기증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타니가 다시금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하면서 그의 성장 과정 역시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1994년 일본 이와테현 오슈시에서 2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난 오타니는 부모의 운동 실력을 물려받았다. 아버지는 사회인 야구를 했고, 어머니는 젊은 시절 배드민턴 선수였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야구를 시작한 오타니는 이내 재능을 드러내며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고교 3학년 때 도내 대회 준결승에서 아마추어 야구 역사상 최초로 160㎞의 강속구를 던져 관심을 모았다. 또 통산 56개의 홈런을 쳐내며 일찌감치 투타 모두 재능을 드러냈다. 특히 고등학교 1학년 때 작성한 ‘목표 달성표’가 훗날 알려져 큰 화제를 낳기도 했다. 그는 중앙 큰 정사각형 한가운데에 최종 목표를 써두고, 이를 이루기 위한 8가지 세부 목표를 쓴 뒤 그 주위의 정사각형에 각각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방법을 8개씩 적어냈다. 8가지 목표 중에 ‘운’을 위해서 인사하기, 쓰레기 줍기 등까지 언급한 점으로 미뤄 야구를 향한 오타니의 마음이 얼마나 간절한지 알 수 있다. 실제로 오타니는 이 계획표대로 목표를 달성해나가기 시작했다.
최종 목표인 8구단 드래프트 1순위를 달성한 오타니는 일본프로야구에서 프로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목표는 메이저리그 직행이었다.
닛폰햄이 오타니의 의지를 알고도 2013년 신인드래프트에서 지명했고, 4차례의 협상을 통해 오타니를 설득했다. 이 과정에서 투타 겸업까지 허용하면서 일단 그를 입단시키는 데 성공했다.
우려 속에서 오타니는 프로 데뷔 2년차인 2014년에 일본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10승-10홈런을 달성하며 자신을 향한 우려의 시선을 잠재웠다.
2015년에는 퍼시픽리그 다승 1위, 평균자책 1위, 승률 1위 등을 기록했고 이듬해에는 리그 MVP, 일본시리즈 우승 등을 일궈냈다.
2017시즌을 마치고 마침내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메이저리그 진출을 꾀했다. 메이저리그에서도 투타 겸업에 대한 찬반 논란이 있었다. 오타니는 자신의 뚝심대로 밀고 나갔다.
2018년에는 아메리칸리그 신인왕을 차지했다. 2019~2020년에는 부상으로 투타 겸업을 선보이지 못했지만 2021년에는 투수로 23경기에 선발 등판해 9승 2패 평균자책 3.18, 타자로는 158경기에서 타율 0.257 46홈런 100타점을 기록했다. 그해 오타니는 만장일치로 리그 MVP를 차지했다.
2022년에는 투수로 28경기에 등판해 166이닝을 던지며 15승 9패 평균자책 2.33으로 활약했고, 타자로도 157경기에서 타율 0.273 34홈런 95타점을 기록하며 MLB 사상 최초로 규정이닝(162이닝), 규정타석(502타석)을 동시에 충족했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액 경신할 수도
오타니는 2023시즌 더 중요한 한 해를 맞이했다. 오타니는 이번 겨울 시즌을 마치고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는다. 현지 언론은 오타니가 천문학적인 액수를 받으리라고 전망한다. 올해 초부터 오타니의 몸값은 5억달러(약 6406억원)에 달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액을 경신할 수도 있다.
어느 팀의 유니폼을 입게 될지도 관심사다. 현지 매체인 LA 타임스는 “오타니가 에인절스를 떠나야 한다는 걸 증명했다”라며 “에인절스는 오타니와 재계약을 맺지 못할 것이다. 오타니가 FA가 되면 포스트시즌을 할 수 있는 팀으로 이적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오타니는 미국에서는 아직 우승컵을 만져보지 못했다. 에인절스는 지난 시즌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 3위에 그쳤다. 2014시즌 이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했다. 오타니를 품을 수 있을 만큼의 ‘빅마켓’ 팀도 아니다. 오타니가 WBC에서 보인 모습을 올 시즌에도 이어간다면 에인절스는 그를 붙잡아둘 명분이 점점 사라진다.
오타니는 덤덤하게 메이저리그에서의 새 시즌을 맞이했다. 지난 3월 31일 오클랜드와의 2023시즌 개막전에서 선발 등판해 6이닝 2안타 3볼넷 10삼진 무실점으로 호투했다. 타선의 지원을 받지 못했고, 불펜이 1-0에서 역전까지 허용해 오타니의 승리투수 요건을 날려버렸다. 타자 오타니는 지난 4월 3일 오클랜드전에서 첫 홈런을 쏘아올리며 타격감을 과시했다.
김하진 기자 h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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