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러 관심 달아오르니, 아프리카는 ‘차가워졌다’
열강 패권전쟁 우려에 “자립” 목소리 커져
아프리카에 세계열강의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최근 다시 적극적으로 구애를 펼치는 나라는 미국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아프리카에서 영향력을 확대하자 이를 견제하기 위해 뒤늦게 아프리카 각국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하지만 아프리카 현지에서는 미국, 중국, 러시아 등의 관심이 그리 달갑지 않은 분위기다. 19세기 유럽 열강의 세력 다툼과 같은 ‘자원 쟁탈전’이 펼쳐질까 우려하고 있어서다. 이미 천문학적인 원조가 아프리카에 쏟아졌지만 달라지지 않는 대륙의 현실에 ‘자립’을 외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아프리카 3개국 순방 나선 미 부통령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은 지난 4월 1일(현지시간) 1주일간의 아프리카 3개국 순방 일정을 마치고 귀국했다. 서아프리카 가나 수도 아크라를 방문한 뒤 이후 동아프리카 탄자니아의 경제 중심지 다르에스살람과 잠비아 수도 루사카를 차례로 방문했다.
첫 방문지 가나에서 해리스 부통령은 수천명의 청중에게 “우리는 엄청난 경제 성장과 기회를 가져올 아프리카의 독창성과 창의성에 투자해야 한다”며 아프리카와의 새로운 동반자 시대를 약속했다. 나나 아쿠포아도 가나 대통령을 만나 1억달러(약 1300억원) 규모의 지원도 약속했다. 가나의 높은 인플레이션과 무슬림 극단주의 세력으로 인한 안보 불안 해결 등에도 힘을 보태기로 했다.
해리스 부통령은 탄자니아에서는 탄자니아의 첫 여성 수반인 사미아 술루후 하산 대통령과 나란히 서서 “우리의 만남은 또 다른 이정표”라며 “탄자니아의 젊은 여성들에게 영감을 줄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또 양국 간 무역을 증진하고 탄자니아의 민주주의를 장려하기 위해 5억6000만달러(약 7000억원) 규모의 탄자니아 지원 계획도 발표했다.
마지막 방문국인 잠비아에서는 기후변화 대처와 식량 생산 개선을 위해 아프리카 일대에 민간부문 투자 70억달러(약 9조2000억원)를 약속했다. 아프리카 순방의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다. 지난 3월 31일 잠비아 수도 루사카에서 하카인데 히칠레마 대통령과 연 공동기자회견에서 “잠비아의 모든 채권국은 상당한 규모의 부채 감축을 제공해야 한다”고 밝혔다. AP통신 등은 중국을 겨냥한 우회적 발언이라고 해석했다.
다시 열강 각축장 된 아프리카
해리스 부통령의 이번 순방은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올해 진행 중인 여러 고위급 인사의 아프리카 방문 계획의 일환이다. 이미 재닛 옐런 재무장관, 린다 토머스 그린필드 주유엔 미국대사, 질 바이든 여사,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일정을 마쳤다. 바이든 대통령도 연내 아프리카를 찾을 예정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아프리카에서 영향력을 키워가자 부랴부랴 아프리카 환심 사기에 나선 셈이다. 미국은 현재 중국이 경제적 투자 명목으로 아프리카에 빌려준 돈이 결국 아프리카를 ‘빚의 함정(debt trap)’에 빠뜨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현재 아프리카의 대중국 대출금 총액은 2020년 기준 835억달러(약 109조원)에 달한다. 중국에서 빌린 돈은 전체 아프리카 대출액의 12%를 차지한다. 20년간 5배가 증가했다.
중국이 아프리카에 막대한 자본력을 행사하면서 영향력을 넓혀왔지만, 부작용도 속출하고 있다. 일부 채무국이 빚더미에 앉거나 상환 불능 상태에 빠졌기 때문이다. 대표적 나라가 잠비아다. 대외 부채 173억달러(약 22조7000억원) 중 3분의 1이 넘는 금액이 중국에 진 빚이다. 해리스 부통령이 잠비아를 방문해 ‘부채 감축’을 언급한 것은 결국 중국을 겨냥한 셈이다. 중국의 ‘빚’ 부담에 허덕이는 아프리카에 미국이 다시 지원 의사를 밝히며 환심을 사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기 때문이다.
러시아에 우호적인 아프리카 나라들의 움직임도 미국과 서방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 1월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남아프리카공화국 프리토리아를 방문해 나레디 판도 남아공 국제관계협력부(외교부) 장관과 회담했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벌써 두 번째 아프리카 순방이다. 지난해 7월 이집트, 콩고공화국, 우간다, 에티오피아 등 4개국 순방 이후 6개월 만에 또 아프리카를 찾아 관계 다지기에 나섰다.
러시아와 아프리카 여러 나라는 오랜 기간 우호적인 관계를 이어왔다. 러시아는 냉전 당시 아프리카 국가들의 식민지 독립을 지원했다. 지금도 아프리카에서 수입하는 무기의 절반 이상이 러시아산이다. 끈끈한 관계는 국제무대에서도 목격된다. 지난해 3월 우크라이나 전쟁 직후 열린 유엔 긴급특별총회에서 아프리카 24개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는 결의안을 거부하며 러시아 편에 섰다.
경계 나선 아프리카…자립 외치다
아프리카가 세계열강의 러브콜을 달갑게 여기는 것만은 아니다. 지난 1월 말 콩고민주공화국(민주콩고)을 찾은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를 겨냥한 듯 “아프리카는 빼앗길 광산이나 약탈당할 영역이 아니다”라며 세계를 향해 “아프리카에서 손을 떼라”고 경고했다. 아프리카가 여전히 ‘자원 식민주의’의 그늘에 있음을 지적한 셈이다.
외국의 원조는 그동안 아프리카를 변화시키지 못했다. 지난 30년간 아프리카 원조 추정 금액은 1조2000억달러(약 1447조원)에 달한다. 천문학적인 돈이 아프리카를 향했음에도 현실은 시나리오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1970년대 세계 빈곤층의 10%만이 아프리카에 거주했지만, 현재 이 비율은 75%에 이른다. 2030년엔 세계 빈곤층의 90%가 아프리카에 집중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아프리카가 빈곤을 떨치지 못하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유럽 열강이 임의로 그어놓은 국경선은 아프리카 부족 간 갈등과 분쟁의 도화선이 됐다. 정부가 제 역할을 못 하는 사이 부정과 부패가 뿌리내렸고 가난과 질병이 독버섯처럼 퍼져나갔다. 부패한 지도층의 배만 채운 해외원조는 아프리카를 ‘부채의 함정’에 빠뜨렸다.
최근 아프리카에서 변화가 감지된다. 열강의 패권 전쟁에 끌려다니지 않고 ‘자립’을 이루겠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지난 1월 세네갈 수도 다카르에서 열린 ‘다카르2 정상회담’에서는 아프리카의 식량위기를 해결하고 ‘식량주권’을 되찾자는 논의를 펼쳤다. 2월에 개최된 아프리카연합(AU) 정상회의에서는 대륙 전체의 자유 무역 협정을 추진하자는 논의가 이어졌다. BBC는 “경제적 지원과 함께 민주주의, 인권을 강조하는 미국과 달리 중국과 러시아는 그런 조건을 달지 않아 아프리카 독재 정권과도 손을 잡을 수 있었다”며 “19세기의 식민지 역사가 되풀이될까봐 우려하는 아프리카 나라들은 이제 강대국들과 동등한 입장에 서서 상호 존중을 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윤정 기자 yyj@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윤 대통령 골프 라운딩 논란…“트럼프 외교 준비” 대 “그 시간에 공부를”
- “남잔데 숙대 지원했다”···교수님이 재워주는 ‘숙면여대’ 대박 비결은
- 최현욱, 키덜트 소품 자랑하다 ‘전라노출’···빛삭했으나 확산
- 이준석 “대통령이 특정 시장 공천해달라, 서울 어떤 구청장 경쟁력 없다 말해”
- “집주인인데 문 좀···” 원룸 침입해 성폭행 시도한 20대 구속
- 또 아파트 지하주차장 ‘벤츠 전기차 화재’에…주민 수십명 대피
- 한동훈 “이재명 당선무효형으로 434억원 내도 민주당 공중분해 안돼”
- “그는 사실상 대통령이 아니다” 1인 시국선언한 장학사…교육청은 “법률 위반 검토”
- 서울시 미팅행사 ‘설렘, in 한강’ 흥행 조짐…경쟁률 ‘33대 1’
- 한동훈 대표와 가족 명의로 수백건…윤 대통령 부부 비판 글의 정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