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재를 위한 변명[편집실에서]
다들 그대로이고 한명만 바뀌었는데도 팀 전체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비슷한 경험을 되풀이하며 깨달았습니다.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구나, 무서울 정도로 서로 얽혀 있구나,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서로 밀접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살고 있구나 느꼈지요. 미꾸라지 한 마리가 강물을 흐린다는 속담이 있지요. 환상의 궁합을 자랑하던 팀도 한곳에 구멍이 뚫리면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습니다.
하물며 지도자 교체의 파급력이야 새삼 일러 무엇하겠습니까. 다원화된 세상, 수평적 리더십, 시스템 축구 운운하지만 그래도 감독은 감독이지요. 벤투호에서 클린스만호로 갈아탄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이 연일 시끌시끌합니다. 면역 저하에 따른 환절기 감기처럼 급격한 변화에서 오는 자연스러운 진통이면 좋으련만, 세계 무대를 주름잡는 공수의 핵인 손흥민과 김민재의 ‘불화설’까지 불거지니 정신이 번쩍 듭니다.
클린스만의 취임 일성은 ‘화끈한 공격 축구’였습니다. ‘빌드업’을 앞세운 벤투가 탄탄한 수비력을 바탕으로 후방에서부터 차근차근 다져가며 골을 노리는 스타일이었다면, 클린스만 신임 감독은 정반대의 스타일을 지향합니다. 최근 잇단 평가전에서 골은 많이 넣었지만, 실점 또한 많았습니다.
11명이란 한정된 자원을 어디에 어떻게 분배하느냐에 따라 팀 컬러가 180도 달라지고 승패가 엇갈리기도 하는 게 축구라는 종목입니다. 그런 점에서 공격수와 수비수는 어찌 보면 제로섬 관계입니다. 한쪽이 흥하면 다른 쪽은 쇠할 수밖에 없지요. 클린스만은 무게중심을 확실히 공격 쪽으로 옮긴 듯합니다. 벤투 스타일에 익숙해져 있던 선수들로선 멀미가 날 법도 합니다. 특히 수비수들은 더하겠지요. 동료 선수들이 상대편 골문을 향해 쇄도할수록 수비수들이 감내해야 하는 몫은 커집니다. 공격수들은 골을 넣으면 환호성과 함께 박수갈채를 받지만, 수비수는 잘해봤자 본전입니다. 실수로 골을 먹기라도 하면 패전의 책임을 고스란히 뒤집어써야 합니다. ‘괴물 수비수’ 소리를 듣는 김민재라 해도 이런 심적 부담까지 견뎌낼 재간은 없습니다.
최근 개막한 프로야구로 잠시 시선을 돌려볼까요. ‘국민타자’ 출신 이승엽 감독이 이끄는 두산이 순조로운 항해를 시작했습니다. 현역일 때 펄펄 날던 선수가 감독까지 성공하기는 드물다는 세간의 속설을 이 감독이 깰 수 있을지는 좀더 두고봐야겠지만, 일단 출발은 좋습니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원칙을 지키면서도 선수들의 개별 특성을 잘 파악해 소통하는 맞춤형 현장 리더십이 주효했다는 분석이 나오던데요. 독일의 간판 골잡이였던 클린스만도 현역일 때 그라운드를 종횡무진 누비던 스타 출신입니다. 언어의 장벽부터 시작해 크게 바뀐 경기 철학과 전술에 따른 혼선과 시행착오를 얼마나 진정시키고 빠른 시간 내에 선수들을 다독이며 설득할 수 있느냐에 클린스만호의 앞날이 달려 있다고 하겠습니다.
권재현 편집장 jaynew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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