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집 『입속의 새』 사만타 슈웨블린 “후달리겠지만, 이제 어떻게든 저 계단을 내려가게 될 테니까” [김용출의 문학삼매경]
손으로 가려진 입, 휘둥그레진 눈,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는 여자 아이. 이미지는 사라지지 않고 며칠 동안 머릿속을 맴돌았다. 왜 그 아이는 입을 가리고 있었을까, 왜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었을까.
이미지를 떠올리며 이야기가 어디로 흘러갈지도 모른 채로, 소설가 사만타 슈웨블린(Samanta Schweblin)은 무작정 글을 쓰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작가 안톤 체호프의 조언을 따라서. 상황에 몰입하고 인물들을 따라가라, 그러면 조만간 어떤 일이 일어날 테니까.
상상의 날개와 글로 따라가던 남자(인물)가 입을 가리고 있던 광고 속 여자 아이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을 무렵, 몇 단락을 더 쓰다가 그 여자 아이가 방금 무엇을 했는지, 왜 그렇게 부끄러워했는지 이해하게 될 것 같았다. 그리하여 단편 「입속의 새」가 태어났다.
소설은 사춘기를 겪는 딸의 불안과 이를 대면하는 부모의 절망을 잔혹동화 같은 설정으로 풀어낸다. 주인공인 나는 사년 만에 아내 실비아로부터 연락을 받고 사춘기의 딸 사라를 만나러 간다. 그런데 딸은 밥 대신 새를 산채로 먹는다. 딸의 모습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하지만, 새를 산 채로 먹는다는 생각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고 보면 사람을 잡아먹는 사람들도 있는데, 새를 산 채로 먹는 것쯤은 그리 나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또 자연적 관점에서 보면 그게 마약보다 건전하고, 사회적 관점에서 보면 열세 살 아이의 임신보다 숨기기 쉬우리라는 생각도 했다.”(47쪽)
딸과 함께 살게 된 나는 아내가 감기에 걸리자 이젠 사라를 온전히 대면하게 된다. 딸의 방 에 산 새들을 넣어두고 그녀의 방에서 돌아설 때 나의 두 발은 사정없이 후들거리기 시작한다.
“그 순간 방안에서 날카롭게 꽥꽥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잠시 후 화장실 세면대 수도꼭지를 트는 소리가 났다. 수도꼭지에서 물이 쏟아지자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이제 어떻게든 저 계단을 내려가게 될 테니까.”(59쪽)
2022년 전미도서상(번역 부문)을 거머쥐고 세 차례나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후보에 오른 젊은 작가 사만타 슈웨블린이 소설집에서 그리는 세상과 인물, 이야기는 어떤 모습일까. 동시대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대표 선수로 나아가고 있는 그녀의 작가적 여로는 어디로 향할까. 작가 슈웨블린을 출판사의 도움을 받아서 이메일로 만났다.
―「입속의 새」에서 부모인 나와 실비아, 딸 사라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요.
“여러 사건들이 벌어지고 난 뒤, 인물들은 아마 사라가 실제로 어떤 존재이든 간에 모두 받아들이게 될 것이라고 봅니다. 사라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거죠. 이 작품은 청소년 시절을 다룬 이야기이자 부모의 이해심을 다룬 이야기예요. 타인을 사랑하고, 필요한 경우 타인을 보살펴주는 법을 배우는 것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물론 그 타인이 자기가 원하는 모습으로 바뀌지 않는다고 해도 말이죠.”
소설집을 여는 작품 「절망에 빠진 여자들」은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에서 남자들에게 버림받은 여자들의 이야기다. 버려진 네 여자들은 기어코 한 남자의 차를 빼앗아 달아나기 시작하고, 일군의 남자들이 뒤쳐진 남자를 구하러 온다.
―왜 이런 결말을 담은 것인지요.
“이 작품을 그렇게 오래 전에 썼다는 게 믿기지 않습니다. 지금 읽어봐도 이 작품은 요즘 쓴 것 같은데다, 오늘날 페미니즘이 생각하는 것들과 아주 가까우니까요. 어린 나이에 아무것도 모르면서 이런 작품을 쓸 수 있었다는 것이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남자들이 되돌아오잖아요? 그런데 그건 자기 아내를 데리러 오는 게 아니라, 뒤처진 한 남자를 구출하러 오는 거죠. 그 장면은 남자들의 강한 무리 본능(집단정신)과 관련이 있었을 거예요. 이 작품을 쓸 때, 남자들에게서 그런 면을 많이 느꼈거든요. 제가 스물다섯 살 때 이 작품집 단편을 썼지만, 무의식적으로나마 그런 점들을 분명히 느끼고 있었던 것 같아요.”
짧은 이야기 「역병의 대유행」은 역병의 시대 인구조사원 히스몬디의 이야기다. 히스몬디는 내륙의 한 오지마을에 갔다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굶주린 마을 사람을 대면하고, 가방에서 먹을 것을 꺼내 놓지만 곧 쓰러지고 만다.
“히스몬디는 고립되고 잊힌 가난한 아르헨티나 내륙의 어느 오지 마을(이런 곳이 실제로 많습니다)에 도착합니다. 그곳 사람들은 벌써 몇 년째 기근에 시달리고 있었어요. 그들은 너무 굶주린 나머지, 말 그대로 먹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잊어버린 것으로 보여요. 먹는 것이 대체 어떤 느낌인지조차 잊어버림으로써, 그들은 배고픔 또한 잊어버렸던 겁니다. 히스몬디는 물론 독자도 이 사람들이 진짜 살아 있는지, 아니면 유령들인지 판단하기 어려울 거예요. 하지만 이들의 모습이 너무 사실적이고, 또 워낙 굶주린 것으로 보여서 히스몬디는 가방에 넣어온 음식을 그들에게 나눠주기로 한 거죠. 그렇게 하면서 그는 마을 주민들에게 먹는 것의 즐거움뿐 아니라, 배고픔의 고통도 상기시켜주고 만 겁니다. 그것이 물어보신 통증(‘뱃속 깊은 곳에서 뭔가 찌르는 듯한 통증’)의 정체입니다.”
단편 「아스팔트에 머리 찧기」는 누군가의 머리를 아스팔트로 내리찧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이야기다. 어릴 적 친구 프레도의 머리를 운동장 바닥에 찧었던 나는 머리를 아스팔트에 내리찧는 그림을 그린다. 어느 날 나에게 그림을 의뢰한 한국인 치과의사 존 손은 나의 그림이 맘에 들지 않는다며 연락을 끊어버린다.
―한국인 치과의사 존 손이 나오는데, 모델이 있는지요.
“그 한국인은 정말로 제가 아는 사람입니다. 작품을 쓸 당시, 우리 커플과 아주 친하게 지내던 사이였죠. 작품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는 치과의사였고, 내가 자기를 위해 글을 써주는 대신 내 치아 관리를 책임져 주었어요. 그런데 불행히도 그 사람과 오해가 생기고 말았죠. 그것은 작품에 나오듯이 분명히 ‘문화적 차이’ 때문이었을 겁니다. 아무튼 그는 무척 화가 났고, 무엇이 문제인지 대화를 통해 해결하려기보다 아예 자취를 감추었어요. 그 후 나를 만나려고 하지도 않더군요. 그토록 가깝게 지내던 사람이 아무런 해명도 없이 하루아침에 멀어지다보니, 아주 답답하면서도 실망스러웠죠. 이 작품에 세부적으로 등장하는 과장과 광기는 모두 그런 실망감에서 비롯된 것 같습니다.”
―민족주의나 혐오 범죄가 인상적인데요, 아르헨티나나 베를린은 어떤지 모르겠군요.
“2012년 베를린에 도착했을 때, 저는 자전거를 사서 시내를 돌아다니거나, 밤에 친구들과 놀러 나갔다가 밤늦게 들어오곤 했습니다. 그런데 집에 가려면 괴를리처(Görlitzer) 공원을 지나가야만 했는데, 처음에는 굉장히 무서웠던 기억이 나는군요. 사실 그 공원은 모든 종류의 마약이 불법으로 거래되는 곳으로 유명한데다, 특히 가로등이 제대로 설치되어 있지 않아서 새벽에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둡거든요. 라틴아메리카에서 갓 건너온 여자가 야밤에 혼자서 그런 곳을 걸어 다닌다는 것 자체가 정신 나간 짓이었죠. 여자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위험한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친구들 말로는 베를린에서 그 공원만큼 안전한 곳이 없으니까 아무 걱정하지 말라더군요. 그 말에 힘입어, 그 다음부터는 마음 놓고 그곳을 지나다니기 시작했죠. 그로부터 몇 달 지난 어느 날 밤이었어요. 그날도 혼자서 공원을 걸어가고 있는데, 내가 느끼고 있던 것이 바로 ‘행복 발작’이라는 것을 깨달았죠. 저는 두려움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혼자서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나의 권리이자 시민으로서의 권리라는 것을 그때야 알게 되었어요. 그러고 나자 더 끔찍한 사실을 깨닫게 됐죠. 아르헨티나에선 청소년이었을 때는 물론 성인이 된 다음에도―요즘 새 세대들도 마찬가지겠지만―여자들끼리 놀러 나갔다가 집에 도착하면 ‘나 집에 왔어’라든지 ‘다 괜찮아’와 같은 메시지를 서로 보내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었어요. 저는 이 메시지를 일종의 무언극(마임), 그러니까 다른 여자아이들과 함께 존재하는 방식이자, ‘잘 자!’라는 인사 정도로 여겼어요. 하지만 베를린에 온 이후로는 이런 메시지를 안 보내게 됐어요. 그런 메시지에는 ‘안심해. 무사히 살아서 도착했어. 어느 도중에 아무도 나를 죽이지 않았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까요. 그래서 어느 날 밤에 어떤 친구한테서 그 메시지를 받지 못하면 곧장 경찰서로 달려갔을 거라는 생각마저 들더군요. 이는 내가 베를린에서 마음껏 누리는 자유와 권리 중 하나에요. 요즘에도 아르헨티나로 돌아가면, 그런 것이 그립기까지 하더군요.”
짧은 작품 「사물의 크기」은 한때 나의 가게에서 살았던 엔리케 두벨의 이야기다. 나의 가게에서 모형을 사갔던 엔리케가 어느 날 가게에서 머물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나의 가게에서 생활하는 동안 가게를 완벽히 정리해 가게 매출이 크게 늘었다. 엔리케는 점점 열의가 없어졌을 무렵, 어머니가 엔리케의 뺨을 때린 뒤 데리고 가버렸다.
―엔리케 두벨의 모습을 보면 언뜻 허먼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가 연상되기도 하는데요.
“저는 물론 멜빌을 좋아합니다. 그렇지만 제 생각에 멜빌을 이 작품과 연관시키기는 조금 어려울 것 같군요. 물론 우리가 받은 영향을 우리 자신에게서 알아내기는 참 어려운 일이죠. 이 단편에는 어머니에 의한 아동학대가 분명히 드러나고 있는 반면, 가족 외부의 상대(인물)에 의한 보살핌과 애정도 존재하고 있어요. 이 작품에는 두려움도 있고, 꿈도 있고, 또한 장난감, 그러니까 어린 시절 우리와 관련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누구인지, 그리고 우리가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는지를 생각하면서 놀도록 도와주는 모든 사물과의 아주 특별한 관계도 있습니다.(엔리케의 미래가 궁금하군요) 이야기가 이대로 계속 전개된다면, 그는 어머니의 뱃속에 다시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자그마한 아기로 변해 엄마의 말을 듣고 숨 쉬고, 또 엄마를 위해 먹겠죠. 그런데 엄마 뱃속의 태아처럼 아름다고 평온한 것도 올바른 순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자칫 엄청난 악몽으로 변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습니다.”
마지막 단편 「베나비데스의 무거운 여행가방」은 아내를 죽인 한 남자의 이야기다. 베나비데스는 아내를 죽인 뒤 시신을 가방에 담는다. 그는 가방을 끌고 코랄레스 박사를 찾아가고, 코랄레스는 그에게 큐레이터 도노리오를 소개한다. 콘텍스트를 강조하는 도노리오는 시신이 든 가방을 ‘폭력’이라는 주제로 전시, 대성공을 거둔다.
“그는 군중 속에 숨어, 그리고 내친김에 군중의 눈을 피해, 흥분에 도취된 육체들을 헤치고 혼란과 소동의 핵심으로 다가간다. 사람들은 더 잘 보이는 자리를 차지하려고 고함을 지르고 밀치는가 하면 주먹다짐을 벌이기도 한다. 그때 베나비데스는 눈앞에서 서서히 틈이 생기는 것을 느낀다. 그 틈을 통해 그와 나머지 사람들이 분리되기 시작한다.”(288쪽)
―작품은 어떻게 세상에 나오게 됐습니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요.
“당시에는 어떻게 이 이야기가 떠올랐는지 잘 몰랐던 것 같아요.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이 작품에서 말하는 것들이 아르헨티나 텔레비전 뉴스에 매일같이 등장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가령 텔레비전에서 ‘치정에 얽힌 범죄’라고 하는 것은 실제로 여성 살해였어요. 살인 사건이죠. 여성을 대상으로 자행되는 범죄 뉴스가 격정이니 열정이니 하는 변명으로 그럴싸하게 포장된 채 소개되는 것이죠. 텔레비전에서 그런 뉴스를 보고 있으면, 실제 범죄 사건이 아니라 무슨 로맨스 소설의 한 부분처럼 보이더군요. 이처럼 여성 살해는 남성 살해와 같지 않다는 사회적 합의를 목격하면서, 저는 부당하기 짝이 없는 현실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결국 이처럼 부당하면서도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현실을 경험하면서, 「베나비데스의 무거운 여행 가방」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던 거죠.”
요컨대, 사만타 슈웨블린은 “또다른 현실의 틈새로 미끄러지고 구멍으로 떨어지는 사람들”(J. M. 쿳시)의 기이한 세계와 이야기를 지극히 실제적인 자세와 냉정한 문체로 그린다. 작품을 읽고 나면, 한동안 뒤통수가 싸늘하거나 등골이 오싹해지고, 피부의 세포들이 긴장과 서스펜스로 곤두서는 느낌을 받을지도.
글도 쓸 줄 모르던 아주 어렸을 적이었다. 이야기를 지어내선 어머니에게 불러주면서 받아써달라고 했다. 나중에 그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릴 수 있도록, 빈 종이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도 엄마에게 일러주기도 했다. 소녀 슈웨블린은 오래 전부터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니까, 아주 어렸을 때부터 책이라는 것과, 그런 이야기들 속을 가로질러 가는 독자들의 존재를 이미 염두에 두고 있었던 셈이다.
그는 청소년 시절부터 창작 워크숍에 꾸준히 참석했다. 아르헨티나에선 작가들이 자신의 집에서 창작 수업을 열곤 했다. 보통 8명에서 10명 사이의 제자들을 모아서 소규모로 운영했다. 매주 한 번씩 모여 각자 집에서 써온 글을 사람들 앞에서 읽은 다음, 서로 비평을 하고 그 글에 대한 자신의 감상을 밝히고 조언을 했다. 그는 이런 글쓰기 수업에서 많은 것을 배웠고, 특히 가장 좋아하는 단편 장르를 집중적으로 연습할 수 있었다. 소설가 사만타 슈웨블린의 문학 원점이었다.
―작품 세계나 경향, 특징을 조금 소개해 주십시오.
“저는 실재하는 세계(현실 세계)와 가능한 세계(가능 세계)에 도사리고 있는 낯설고 기이한 면에 관해 쓰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규범’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것, 그리고 우리가 ‘정상적이고, 공통적(일반적)이며, 가능한 것’으로 여기고 있지만 실제로는 사회적 문화적 합의에 지나지 않는 것에 관한 작품을 쓰고 싶어요. 제가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텍스트 내에서 강한 힘으로 존재하는 긴장이죠. 제가 말하고자 하는 긴장은 스릴러물이나 공포 소설에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에게 직접적으로 전달됨과 동시에, 보다 실존적인 의문과 구체적이고 실제적으로 관련된 이야기가 그들에게 일으킬 수 있는 전적인 관심, 혹은 집중(의 상태)을 의미합니다. 이야기(작품)를 읽을 때 텍스트에 존재하는 긴장감을 즐기기 때문에, 저는 글을 쓰면서도 그런 상태를 추구하죠. 그러한 이야기들은 나를 단번에 사로잡아서 (읽는/쓰는 순간) 나를 잠시 세계에서 사라지게 만들죠. 하지만 다시 현실 세계로 돌아올 때는 새로운 정보와 세계에 관해, 혹은 나 자신에 관해 새로운 것을 깨달은 듯한 느낌이 들곤 합니다.”
―소설 쓰기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방법이나 원칙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무엇보다 독자의 ‘권리’에 대해 많이 생각합니다. 글을 읽으면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느낌이 너무 싫고, 화가 나기까지 해요. 저는 심오한 이유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텍스트들,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항상 알고 있는 텍스트들을 읽을 때가 가장 즐겁죠. 제 작품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이런 느낌을 주고 싶어요.”
―십여 년 전부터 베를린에서 생활하고 계신데, 하루 일상이나 루틴은 어떠한지요.
“저는 주로 오전에 작업을 합니다. 오후 2시쯤 점심을 먹기 위해 작업을 마무리하죠. 토요일과 일요일을 포함해 매일 작업을 하고 있고요. 저에게는 작업하는 것이 휴식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늘 즐거운 마음을 가지고 집중해서 글을 쓰고 있어요. 오후와 저녁에는 그 밖의 일을 해요. 가령 이메일 답장을 쓰고 인터뷰를 하거나 모임에 나가기도 하죠. 친구를 만나고 운동을 하거나 산책을 나가기도 하죠. 밤에 잠자리에 들기 전에 다음 날 해야 할 일을 간단히 적어둘 때도 있고요. (최근 생활에서 새로운 변화는 없나요) 제가 살고 있는 베를린은 겨울이 아주 긴데, 날씨가 추울 뿐만 아니라 음침하기까지 해요. 그 때문에 조금 더 밝은 환경에서 글을 쓰기 위해 바르셀로나에 머물렀죠. 특히 바르셀로나에는 친구들이 많이 있어요. 이번에는 아주 활력이 넘치고 생산적인 겨울을 보낸 것 같아요. 겨울에도 다시 바르셀로나에 가고 싶은 생각입니다.”
애써 숨기고 싶은 마음까지 모두 투시해버릴 듯 깊은 눈빛을 가진 사만타 슈웨블린은, 책을 읽거나 사람을 만난 뒤에 남겨진 생각이나 아이디어를 메모하곤 한다. 아이디어가 곧바로 글이 되는 것도 아니고, 한동안 잊어버려야 하지만, 그럼에도 시간이 지나면 자신이 당겨야 할 끈이니까.
그리곤 느리게 소설을 써갈 것이다. 줄거리도 끝도 알 수 없는,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팽팽한 긴장과 서스펜스를 가득 담은 글을. 글을 느리게 써 나가면서 고민하고 스스로와 독자에게 물을 것이다. 문학이란 쓰는 것과 읽는 것이 합쳐져야 가능한 것이니까. 내 글은 과연 충분히 용감한가, 내 글은 과연 충분히 새로운가. 내 글은 과연 충분히 미쳐 있는가, 내 글은 과연 독자가 읽을 가치가 충분히 있는가.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사진=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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