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과학기술의 요람…원동력은 山
1965년 5월, 미국과의 정상회담이 열렸다. 여기서 린든 존슨 대통령은 한국의 베트남 파병에 대한 보답으로 공과대학 설립을 약속했다. 이에 박정희 대통령은 대학 설립 대신 연구소 설립을 요청했고, 결국 1,000만 달러 원조를 받아냈다. 이것이 이듬해(1966년) 2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설립된 배경이다. KIST는 한국 경제성장과 과학기술 발전의 축이다. 1970년대 과학기술시대가 열리면서 한국의 산업화 초기 포항제철 설립 타당성 조사, 국내 최초 컬러TV 개발, 한국 조선사업 종합계획 등을 수립하면서 숨가쁘게 활동했다. 이런 와중에 KIST 산악회가 생겼다.
KIST 산악회 태동은 1972년에 시작됐다. 일부 산을 좋아하는 몇몇 연구원들이 모여 산행을 해오다가, 1973년 4월에 본격 동호회가 결성됐다. 매달 전국 산하를 등반하면서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르고 동료의식을 고취시키고자 하는 의도였다. 1970~1980년대 대한민국 경제 사정은 어려웠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국가 초석을 갈고 닦기 위해 창의력과 끈질긴 인내심 그리고 위대한 과학정신을 아낌없이 쏟아냈다. 그 안에 KIST 산악회 회원들이 있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그러니까 국가 발전의 힘 일부가 '산'에서 나온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KIST 산악회는 1973년 4월 치악산 첫 산행을 시작으로 매달 둘째 주 토요일 산행(창립 당시 토요일도 근무를 했기 때문에 토요일 오후나 일요일 산행)했다. 지금까지 총 499회 여러 산을 등반했고, 매년 시산제와 원장배 등반대회를 열었다.
설악산, 지리산, 치악산, 태백산 등 백두대간을 따라 주로 '산악 대회'를 열었고, 강화도 마니산은 시산제 장소다. 창립 당시 가장 북쪽의 전방에 위치한 감악산 등반이 어렵게 이뤄졌는데, 군부대에 미리 공문과 명단을 제출해 허가를 받은 후 군인의 안내를 받으며 눈 속에서 빙벽등반을 하기도 했다.
이 짧은 지면에 그 역사를 다 설파할 수 없지만, KIST 산악회의 모습은 언제나 건강하고, 아름답고, 즐거움으로 단단히 결속된 사내 단체였다. KIST를 퇴직해 떠나간 또한 고인이 된 선배 산악회 회원들을 추억하며 면면히 이어온 감회를 엮어보았다.
인수봉 암벽등반하다
1983년 가을! 인수봉 암벽 등반을 위해 '천공개물天工開物'을 최초로 번역한 철강연구실의 최주 박사(1934-2001)의 주관 하에 1년여 동안을 준비했다. 자일과 카라비너 등 암벽용품은 스위스 출장을 간 한 실장에게 부탁해 구입했고, 바위에 박는 갖가지 모양새의 징은 공작실에서 스스로 깎아 사용했다. 불암산에서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5~6명이 모여 암벽 훈련을 했다. 선등자는 맨손으로 직벽바위를 올라야 하는데 공작실의 조홍식 선생의 지도하에 이뤄졌다. 목숨을 담보로 하는 암벽 등반은 호된 극기의 정신력과 엄격한 규율을 기본으로 한다.
산은 언제나 위대했고 그 앞에 겸허한 호연지기의 자세로 자일을 앞에 놓고 의식을 치른 후 훈련에 임하곤 했다. 드디어 인수봉 등정의 날이 되었다. 책상서랍 안에 사모님 몰래 유서를 써놓고 나왔노라는 최주 박사의 말에 모두 숙연하고 결연한 마음이었다. 인수봉 남쪽 아래 모여 경례와 묵념을 한 다음 등반이 시작됐다. 선등자 조홍식 선생이 개척해 자일을 걸어 놓고 안전을 확보한 다음 한 사람 한 사람씩 암벽에 목숨을 걸고 올라간 뒤 드디어 모두 무사히 북한산 인수봉 정상에 올랐다. 북쪽으로 내려오는 길은 짧은 반면 밑에 등반사고로 죽은 비석이 즐비했다. 그것도 모르고 우리는 용감하게 암벽을 탔던 것이다.
지리산 종주하다
KIST 산악회 창립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특별 기획 산행으로 2012년 6월 한반도의 중앙인 지리산 종주를 시작했다. 동쪽으로 울릉도 성인봉, 남쪽으로 한라산, 서쪽으로 강화도 마니산 그리고 40주년이 되는 2013년 5월에 북쪽의 백두산을 순차적으로 등반하는 행사를 기획했다. 지리산은 KIST 역대 산행지 중의 가장 많이 등반한 산 중 하나로 주능선 중의 봉우리만 등반하다가 2박3일 일정으로 중산리에서 성삼재까지의 지리산 종주를 실시했다.
우리는 종주하는 동안 쓰레기를 회수하는 등 환경보호를 실천하는 산사람으로서 모범을 보이기도 했다. 지리산 주능선 25km를 28명의 회원이 등반하면서 본인의 한계와 자연의 웅장함을 느끼는 산행을 하면서 KIST 산악회 창립 40주년의 포문을 열었다.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트레킹하다
세상의 산 중에 가장 높은 산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트레킹을 실시했다. 2007년 과학기술부(당시 명칭) 설립 40주년 기념 과학기술인 히말랴야 원정대가 KIST 산악회를 중심으로 결성됐다. 6개 출연연에서 총 15명이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를 등반했다. 고산병을 극복하면서 자연의 위대함과 동시에 기후변화로 인한 설산이 점점 녹아내리고 있는 현실을 절감했다. 히말라야 학술탐사(이태리 고소연구소)를 통해 기후변화 대응 연구의 테마를 구상하는 등반이었다. 또한 네팔 현지학교(힐러리 학교)에 과학기자재 기증 및 네팔 카트만두 공과대학과의 R&D 협력과 연합대학생 유치를 위한 홍보 자리를 가져 현재 진행 중에 있는 ODA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공적개발원조)사업의 기초를 마련했다.
일본 다이센 해외원정 등반하다
NHK 선정 일본 3대 명산으로 작은 후지산이라는 별칭이 있는 다이센을 2015년 22명의 산악회 회원이 해외원정 등반을 했다. 동해항에서 오후에 출발한 페리를 타고 다음날 아침 사카이미나토항에 도착 후 입국 절차를 거친 후 다이센 산행을 시작했다. 우리나라 설악산 높이의 다이센은 후지산처럼 완만하고 끊임없는 경사가 정상까지 이어지는데 산행 중 이어지는 주목과 침엽수 그리고 고산식물들을 생장에 방해가 안 되도록 등산로가 자연 친화적으로 잘 정비되어 있었고, 정상부의 넓은 초원은 마치 한라산 윗세오름에 오른 듯한 느낌이었다. 등반 중 내려오는 산행객들의 깍듯한 인사와 올라오는 사람을 배려한 기다림들이 다시 한번 산행 매너에 대해서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KIST산악회 50주년 기념 마니산 등반
마니산은 백두산과 한라산의 중간지점에 위치한 민족의 영산으로 KIST 산악회 50주년을 맞아 '한라에서 백두까지'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새로운 50년의 출발을 다짐하기 위해서 산행지로 선정했다. 우리 민족의 시조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는 참성단(현재 출입통제) 옆 헬기장에서 과거 50년간 무사고 산행을 해온 것에 대한 감사와 앞으로 50년 동안 안전산행을 기원할 예정이다. 시산제는 오는 4월 15일 진행할 계획이다.
향후 KIST산악회는 '한라에서 백두까지'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전국 방방곡곡의 산을 등반하면서 자연보호와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르는 과학자 집단이 될 것임을 다시 한번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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