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인칼럼] 소부장에서의 한일관계

조철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2023. 4. 12.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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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말 일본 경제 평론가 고무로 나오키는 '한국의 붕괴'라는 책에서 "한국은 수출을 많이 해서 이익을 내도 실익은 일본이 챙긴다"라는 가마우지 경제론을 제시했다.

가마우지 새가 물고기를 잡지만, 이를 어부가 가로채듯이 한국이 완제품을 수출하지만, 일본이 부품·소재를 통해 한국의 이익을 가져간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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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철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1980년대 말 일본 경제 평론가 고무로 나오키는 '한국의 붕괴'라는 책에서 "한국은 수출을 많이 해서 이익을 내도 실익은 일본이 챙긴다"라는 가마우지 경제론을 제시했다. 가마우지 새가 물고기를 잡지만, 이를 어부가 가로채듯이 한국이 완제품을 수출하지만, 일본이 부품·소재를 통해 한국의 이익을 가져간다는 의미다. 이 표현은 1999년 오마에 겐이치라는 일본 기업인이 언론에 기고하면서 우리나라에 알려지게 됐는데 이를 접한 김대중 대통령이 대일본 부품·소재 수입에 대한 특별 대책을 요구하게 됐다. 이에 따라 2001년 '부품·소재 전문기업 등의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제정됐고, 이에 근거한 '부품·소재 육성 기본계획'이 수립됐다. 이 정책의 목표는 부품·소재의 글로벌 공급 기지화였다.

이후 단기간 내 반도체, 디스플레이, 이차전지 등 핵심부품이 빠른 발전을 이뤘고, 한때 12억 달러 대일 적자를 기록했던 자동차부품도 1-2억 달러로 적자 폭이 크게 줄었다. 그러나 소재는 여전히 취약성을 면치 못해, 2009년 2차 부품·소재 기본계획에서는 소재산업 육성을 강조하게 된다. 2013년 수립된 기본계획은 '소재·부품 발전 기본계획'이라는 타이틀로 소재를 앞에 내세웠다. 그렇지만 핵심 소재산업의 육성은 쉽지 않았고, 대일 무역수지 적자는 지속됐다. 물론 철강, 석유화학 등 대규모 범용소재는 이미 국산화해 수출산업이 됐지만, 우리의 주력산업으로 부상하고 있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이차전지 등의 소재는 여전히 대일본 수입에 의존했다.

일본에서 수입하는 핵심 소재·부품·장비는 기술 수준도 높지만, 세계 시장 수요가 매우 제한적이어서 일본의 몇몇 업체가 독과점 생산을 하고 있다. 수요 규모는 적지만,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이차전지 등 대규모 생산공정에 투입돼 문제가 생기면 생산 전반이 영향을 받게 돼 있다. 이에 따라 국내 수요 업체로서는 그동안 문제없이 사용해왔던 일본 소재·부품·장비를 계속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가운데 2019년 7월 불화수소, 불화 폴리이미드, 포토 레지스터 등 반도체 핵심 소재 3개 품목에 대해 수출을 규제했다. 이에 따라 당장에 규제 대상 품목만 아니라 다른 핵심 소재·부품·장비도 일본에만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생겨난 것이 소부장 정책이다. 기존 소재·부품정책에 장비를 더해 지원을 크게 강화했다. 법률 이름도 '소재·부품·장비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특별법'으로 변경했다. 일본의 수출 규제가 정부의 소부장 정책과 기업의 노력이 수요로 연결될 가능성을 높여준 것이다. 지난달 한일관계의 변화로 일본의 수출 규제가 해제됐다. 그렇지만 여전히 우리 소부장 정책은 지속돼야 한다. 일본의 수출 규제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공급망 단절의 위험은 지속해서 높아지고 있다. 우리 산업은 중국의 추격에 따라 새로운 산업으로 구조 전환이 필요하다. 이러한 구조 전환의 방향 또한 일본이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소재·부품·장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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