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용비어천가’ 너도나도 이성계 축제…시민들 "독창성·다양성 부족"
시민들 "지자체들의 문화콘텐츠 발굴 노력 미비, 아쉬워"
(경기=뉴스1) 이상휼 기자 = 양주시, 의정부시, 포천시 등 경기북부 지자체들이 너도나도 조선 태조 '이성계' 관련 축제 개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우리 역사와 전통을 활용해 시민들과 어울리자는 취지는 좋지만, 다양한 문화콘텐츠 창작의지 부족이라든 지적도 나온다. 또 지자체들마다 '이성계' 연고를 주장하면서 추앙하는 까닭에 되려 역사 이해에 방해요소로 작용할 역효과도 우려된다.
양주시는 예년에 비해 이례적으로 예산을 많이 편성해 '왕실축제' 준비에 주력하고 있다. 시는 5월5∼7일 회암사지 일대에서 개최하는 왕실축제의 주제를 '치유의 궁, 다시 조선의 문을 열다'로 잡고 어가행결, 창작뮤지컬, 무형문화재 공연, 시민한복모델 선발대회를 개최하기로 구상하고 있다.
양주는 2003년 군(郡)에서 시(市)로 승격해 올해로 시 승격 20주년이라고 자축하면서 왕실축제를 예년에 비해 성대히 치를 방침이다.
시는 왕실축제에 시비 4억원·도비 7000만원 규모의 예산을 투입하며, 이후 5월 말에는 같은 장소에서 '트로트 가수 초청 콘서트'를 개최할 방침이다. 당일치기인 해당 콘서트 행사에는 약 4억~5억원대 예산을 투입할 방침이다. 왕실축제와 콘서트 행사를 통해 5월 한달간 약 9억~10억원의 예산을 쓰겠다는 셈이어서, 시민들로부터 '예산 낭비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양주 회암사지에 있었다는 옛 회암사는 이성계의 측근이었던 무학대사와 인연이 깊으며, 아들 이방원에 의해 왕위에서 물러난 이성계가 가끔 찾던 사찰로도 알려졌다.
의정부시의 경우 '이성계' 관련 축제를 1986년부터 개최해 지난해 37회 회룡문화제를 개최한 바 있다. 회룡(回龍)은 태조(이성계)가 돌아왔다는 뜻으로 알려졌으며, 의정부 도봉산에 위치한 회룡사도 이성계가 머물렀다는 설이 있다.
하지만 의정부시는 지난해 '송산사지'에서 이성계를 기리는 회룡문화제를 개최했는데 이로 인해 사학자들로부터 '송산사지에 모신 고려 충신들로부터 원망을 받았을 것'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시민단체 문화재제자리찾기 혜문 대표는 "회룡문화제를 송산사지에서 개최한 것은 역사에 대한 무지와 몰이해"라고 지적했다.
민락동 소재 송산사지는 고려 말 이성계를 거부하다가 죽임을 당한 충신 조견·원선·이중인·김주·김양남·유천의 위패를 모신 곳으로 1977년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됐다.
의정부시 중심상가인 행복로 광장에는 말을 타고 활시위를 당기는 모습의 이성계 동상도 세워져 있다.
포천시도 이성계와 관련한 지명과 설화가 많은 까닭에 관련 축제를 열고 있다.
지난해 11월 포천의 한 주민협의체는 '나는 왕이로소이다'라는 축제를 열었다. 이성계의 어가행렬을 거리에 재현한 행사가 메인 이벤트였다.
포천의 왕방산도 이성계와 관련된 설화가 있으며, 천보산 자락 '부인터'의 경우 이성계의 첫째 부인 한씨(신의왕후)가 살았던 곳으로 알려졌다.
이렇듯 경기북부 지자체들이 이성계 관련 행사와 축제를 키워나가는 것에 대해 다수 시민들은 '특색이 없다', '과도한 이성계 신화 추앙'이라는 반응도 내비쳤다. 경기북부 각 지자체가 다소간의 연고를 내세워 저마다 전시성 축제를 중복적으로 개최하는 것은 지역민들에게 피로감을 줄 것으로 우려된다.
엄밀히 따지자면 이성계의 가장 큰 연고지역은 서울 사대문 내부, 그리고 압록강과 함흥 등 함경도 일대와 중국 만주지역이다. 이성계의 조상은 오랜 원나라 관료생활을 바탕으로 힘을 키웠고 이성계가 정도전을 만나 반란, 즉 역성혁명을 일으켜 조선을 세웠으나 얼마 못 가 아들에 의해 물러났다. 이성계의 왕위 즉위 기간은 6년여에 불과했다. 이런 까닭에 조선을 건국했다는 상징성을 이유로 이성계를 과도하게 우상화하거나 미화하는 것은 역사 이해의 혼란을 초래할 소지도 있어 보인다.
시민들은 "경기북부의 지자체는 여럿인데 콘텐츠는 겹친다. 예산을 아낀 작은 행사를 기획하더라도 독창적인 요소를 발굴해 문화행사에 다양하게 응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daidaloz@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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