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자연 영화] 아기 순록 '아일로' 혹독한 타이가에서 살아남기
한 지역의 기후나 토양 등 자연조건을 가장 정확히 반영하는 현상은 무엇일까? 답은 식물군락이다. 이를 '식생植生·vegetation'이라 한다. 역으로, 기후를 나눌 때 식생의 차이가 기후구분의 주요 인자로 사용되기도 한다. 다시 말해 식물의 분포는 그 지역의 자연환경을 종합적으로 반영하는 지표가 된다.
모두가 알다시피 위도가 높아짐에 따라 연평균 기온이 낮아진다. 이에 따라 위도 0°인 적도에서부터 북위 90°인 북극까지, 열대→ (아열대)→ 난대→ 온대→ (아한대)→ 한대가 되며 식생 또한 변한다.
세계의 식생은 기온, 강수량, 토양 등의 조건에 따라 크게 삼림, 초원, 사막 등으로 나뉜다. 또 세부적인 조건들에 따라 지역마다 다양한 식생들이 나타나게 된다.
기온이 매우 높은 지역에 형성되는 '열대우림tropical rain forest'은 규칙적으로 내리는 풍부한 강수량에 의해 조성된 빽빽한 산림이다. 생물 다양성이 매우 풍부하다. 매우 더우면서 동시에 연강수량 100㎜ 이하로 매우 건조하면 사막desert이 된다. 식물이 희박하고 동물도 종류가 아주 적다.
열대지방에는 우기雨期가 확실하게 존재해 강우량이 많은 지역인 '사바나savanna'가 있다. 키 큰 풀과 관목이 주를 이루는 매우 넓은 초본식물 지역이다.
온대지방에는 오크나무, 물푸레나무, 너도밤나무를 포함해 주로 낙엽수로 이루어진 숲인 '온대림temperate forest'이 있다.
아기 순록 '아일로'의 탄생과 성장의 여정을 다룬 자연 다큐멘터리 <아일로Aïlo: Une odyssée en Laponie, Ailo's Journey>(감독 기욤 미다체프스키, 2018)는 '아한대림' 또는 '냉대림boreal forest'이라 부르는 침엽수림을 배경으로 한다.
아한대림을 배경으로 촬영
북반구 유라시아와 북아메리카 대륙의 냉대기후 지역에서 동서 방향 띠 모양으로 나타나는 침엽수림 지대인데 이 영화에서는 '타이가taiga'라고 부른다. 본래 시베리아의 침엽수림 지대를 가리키는 현지어였으나, 의미가 확대돼 냉대기후 지역에 드넓게 나타나는 침엽수림 지대를 일반적으로 지칭한다.
북위 50~65°의 냉대로 북극을 둘러싸듯이 분포하며, 남반구에는 분포하지 않는다. 지구 전체 육지의 약 11%를 차지하고 있는데, 겨울철 평균기온은 영하 30〜40℃로 떨어지고 여름철 평균기온은 10℃가량으로 연교차가 큰 지역이다. 침엽수림이 주종으로 전나무 가문비나무 소나무 자작나무 잎갈나무 등이 분포한다.
뾰족한 모양의 잎은 눈의 피해를 덜 받으며, 봄에 새잎이 나오지 않아도 기온이 상승하면 즉시 최대 광합성을 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나무의 크기는 작아지지만 보통 10~20m이다.
타이가는 수종樹種이 적은 단순림이 주를 이루고, 벌채나 제지製紙에 편리한 연재질軟材質의 나무로 구성돼 있어 세계적인 임산자원의 산출지이다. 열대우림에 비해 접근성이 좋고, 벌목 등에 유리해 세계 최대의 임업 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이 영화에서도 벌목으로 인한 순록들의 이동 경로 망실과 훼손이 다뤄지고 있다.
타이가 북쪽에는 '툰드라tundra'가 있다. 러시아어, 핀란드어 모두 '나무가 없는 언덕'이라는 뜻이다. 키 작은 관목, 덤불, 이끼 등이 자란다.
유럽 최북단 '라플란드'
영화 <아일로>는 타이가 지역 중에서 스칸디나비아 반도와 핀란드의 북부, 러시아 북부를 포함한 유럽 최북단인 '라플란드Lapland'에서 촬영했다. 순록을 키우고 어업과 사냥을 주업으로 하는 라프Lapp족이 거주하는 곳으로 지명은 라프에서 유래한다.
유럽 북극권에서 오랜 기간 황무지로 취급돼 왔으나 천혜의 자연환경이 보존되어 근래에 새로운 관광지로 떠오른 곳이다. 특히 핀란드의 산타클로스 마을, 스웨덴의 라포니안 지역은 세계적인 관광지로 유명하다. 라포니안 지역은 유네스코에서 세계복합유산으로 지정한 곳으로, 백야 현상과 오로라를 볼 수 있고 얼음호텔 숙박, 개썰매 등 이색 요소로 인기를 끌고 있다.
영화 <아일로>는 이곳 4월(아직 겨울이다) 아기 순록 아일로의 탄생 장면으로 시작한다. 무리로부터 떨어져 나온 출산 직전의 암컷은 한적하고 안전한 곳을 찾아 아일로를 낳는다. 갓 태어난 아기 순록은 '5분 만에 일어서고, 10분 만에 걷고, 15분 만에 달리고 수영해야' 한다. 생존해야 하니까. 말이 그렇다는 거지만, 실제 아일로는 태어난 지 몇 시간 만에 네 다리로 혼자 일어서서 걷는 모습을 보여 준다.
한 살 되기 전에 절반 죽어
독수리가 하늘을 유유히 날고, 간혹 갓 낳은 새끼를 버려둔 채 어미가 순록의 무리로 되돌아가는 경우도 적지 않기에 이곳의 새끼 순록은 만 한 살이 되기 전에 절반이 죽는다.
영화는 라플란드의 혹독한 추위를 견뎌야 하는 순록들의 분투를 뿔에 달린 얼음 덩어리 하나하나, 순록의 눈썹 털 하나하나가 보일 정도로 화면에 담아낸다. 북극권의 살을 에는 강풍이 보는 이에게까지 전달될 정도로 실감 나게 촬영했다.
순록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눈으로 덮인 드넓은 평원과 끝없이 펼쳐진 침엽수림은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답다. 저절로 대형 화면이 격하게 아쉬워진다.
실제 연출팀은 순록의 사계절을 모두 커버하기 위해 13개월 동안 촬영했으며, 총 600시간에 달하는 촬영 분량으로 아일로의 성장 과정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직접 숲속에서 순록과 함께 달리는 듯한 생동감 외에도 영화는 흰담비, 청설모, 늑대, 긴 털 족제비, 곰, 흰올빼미 등 라플란드의 다양한 동물들을 매우 적절하게 다루고 있다.
특히 아무렇게 돌아다니는 새끼 늑대들을 뾰족한 송곳니로 으르렁거리며 혼내는 어미 늑대와 배를 드러내고 바닥에 누워 어미에게 용서를 비는 새끼 늑대들의 모습은 배꼽을 잡을 정도로 우습다.
족제비과科이지만 근육질 몸의 길이 60~85cm에 네 다리가 굵어 작은 곰과 비슷한 울버린wolverine 수컷이 암컷의 환심을 사기 위해 네 발을 하늘을 향해 쳐들거나 눈 위를 연속해서 데구루루 구르는 모습도 참 진기하다. (너무 열심히 굴러서 정작 지루해진 암컷은 중간에 딴 데로 가버렸다. ㅎㅎ)
'라플란드의 순례자'라는 별명을 가진 순록 떼는 쉼 없이 이동한다. 이들의 양식인 이끼가 덮인 땅을 계속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완전히 얼지 않은 강을 건너다 빠져 죽고, 호시탐탐 노리는 늑대 무리에 잡혀 먹힌다. 심지어 암컷과 교미하기 위해 수컷끼리 2~3주간 격투를 벌이다가 뿔이 엉켜 지쳐 쓰러져 죽는다. (수컷 두 마리의 뿔만 얼어붙은 강 표면 위로 나와 있는 한겨울 장면은 상당히 그로테스크하다!)
<아일로>의 제작사는 프랑스 영화사 '고몽Gaumont'. <레옹>(1994), <제5원소>(1997), <언터처블: 1%의 우정>(2011)을 만든 메이저 영화사이다. <아일로>는 핀란드의 자연 다큐멘터리 전문 제작사인 'MPR'이 함께 만들었다. 기욤 미다체프스키 감독은 야생동물 전문 생태작가이자 연출자이다.
내레이터의 말대로 '매 순간이 투쟁'임을 절감하게 하는 영화이면서 동시에 순록들이 밤에 길을 잃지 않게 만드는 북극 오로라와 핀란드 말로 '카모스kaamos'라 부르는 극지방의 해 안 뜨는 시기 같은 자연현상을 흥미롭게 관찰할 수 있는 다큐멘터리이다.
월간산 4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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