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완판’, 지방은 0점대 경쟁률…분양 시장 온도 차 커졌다
서울엔 봄이 왔는데 지방은 여전히 한파다. 분양 시장 얘기다. 서울에서는 청약 열기가 뜨겁고 지방은 준공 후에도 불이 꺼진 미분양 물량이 쌓여 가고 있다.
1·3 부동산 대책 이후 부동산 시장의 기울기는 더 커졌다. 서울 부동산 규제가 대거 해제되면서 서울과 비서울의 청약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분할 분양, 이자 지원, 발코니 무료 확장 등 각종 지원책을 내걸었음에도 경쟁률이 1 대 1을 넘지 않는 단지가 수두룩하다.
올해 신규 분양 물량이 전무한 지역도 있다. 지난해부터 미분양 물량이 쌓이고 원자재 값 인상 등으로 공사비가 오르면서 분양가 인상 요인이 커짐에 따라 수익성을 확보하기 힘들어져 건설사들이 분양에 나서지 못하는 것이다. 다만 비서울 지역에서도 분양가가 낮으면서 입지가 좋은 곳은 흥한다는 공식은 여전했다.
1순위 미달률, 74%→40%로 줄었다
4월 4일 서울 동대문구 휘경동 ‘휘센자이 디센시아’ 1순위 청약 경쟁률은 평균 51.7 대 1을 기록했다. 1만7013명이 몰리면서 완판에 성공했다. 특히 전용면적 84㎡A는 12가구 모집에 2639명이 몰리면서 154.08 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휘경·이문을 거쳐 장위·길음에 이르기까지 정비 사업이 진행 중이라 ‘상전벽해’급 인프라 개선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된 것이다. 서울 평균 분양가(3.3㎡당 3474만원)보다 낮은 분양가(3.3㎡당 2930만원) 역시 청약 흥행의 성공 요인이었다.
전용 59㎡ 6억4900만~7억7700만원, 전용 84㎡는 8억2000만~9억7600만원 선으로 인근 시세보다 낮거나 비슷했다. 앞서 장위자이 레디언트(장위4구역), 마포더클래시(아현2구역 재개발) 등이 잇따라 ‘완판’ 기록을 세웠고 광명 철산자이 더 헤리티지 등 수도권 일부 지역에서도 완판 행진이 이어졌다.
실제 청약 미달도 크게 해소됐다. 부동산 중개 플랫폼 ‘직방’에 따르면 지난 3월 전국 1순위 청약 미달률은 39.6%로, 전년 동월(14.5%)보다 늘었지만 1월(73.8%)과 2월(51.8%)에 비해 크게 개선됐다. 최근 규제지역 해제 등으로 전매가 가능해지면서 분양가 경쟁력이 있는 단지를 중심으로 청약 수요가 일부 몰린 영향이다.
올해 1분기로 기간을 넓혀보면 청약 경쟁률 양극화가 더 잘 보인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전날 기준 올해 1분기 전국 청약 경쟁률은 5.88대 1이었고 수도권 역시 올해 1분기 4.65대1의 경쟁률에 그쳤다. 반면 서울의 경우 평균 57대 1의 경쟁률이었다.
미분양 재고 증가세도 멈췄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23년 2월 미분양 재고는 1월에 비해 0.1%(79가구) 증가하는 데 그쳤다. 지난 3월 완판된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물량을 빼면 미분양 재고는 3월에 더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
언뜻 보면 분양 시장에도 봄바람이 부는 것 같지만 이 같은 기록은 서울과 수도권 일부 단지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직방이 발표한 지역·단지별 청약 결과를 살펴보면 여전히 대부분 지역은 저조한 청약 성적표를 받아든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무순위 청약 자격을 대폭 완화하고 전매 제한을 푸는 등 규제 완화 카드를 꺼내 들었지만 지방은 여전히 저조한 성적을 기록했다. 올해 들어 청약 자체가 진행되지 않은 지역도 다수 있다.
신규 인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는 대구는 지난해 12월 청약 경쟁률 0 대 1을 기록한 이후 올해 분양 단지가 없다. 대전·울산·세종시 등도 청약 일정이 사실상 멈춘 상태다. 지난 3월 전국에서 분양을 진행한 12개 단지 중 7개 단지는 경쟁률이 1 대 1을 넘지 못했다. 지역별로 살펴보면 부산은 지난 3월 1순위 청약 경쟁률이 1 대 1을 기록했다. 충북(0.1 대 1), 전북(1.1 대 1), 경남(0.0 대 1), 제주(0.1 대 1) 등 3월 청약 일정을 진행한 단지 대부분이 저조한 성적을 보였다.
대형 건설사 프리미엄도 통하지 않았다. 부산 남구 우암동 ‘두산위브더제니스오션시티’는 1878가구 모집에 967명만 지원해 전 타입이 2순위 청약으로 넘어갔다. 경기 화성시 신동 ‘e편한세상 동탄파크아너스’는 쪼개기 분양에 나섰지만 경쟁률이 1 대 1을 넘지 못했다. 분양을 1회 차와 2회 차로 나눠 진행하는 ‘분할 분양’이 시장에 등장한 것은 12년 만이었다.
불 꺼진 대구, 미분양 1만4000가구 쌓였다
준공 후에도 팔리지 않는 ‘악성 미분양’은 더 문제다. 지난 2월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악성 미분양’으로 불리는 준공 후 미분양은 전국 8554가구로 전월보다 13.4%(1008가구) 증가했다. 준공 후 미분양이 한 달 새 1000가구 이상 증가한 것은 2020년 6월 이후 32개월 만이다. 완공 후에도 팔리지 않는 집이 늘면서 지방을 기반으로 한 중소 건설사들의 자금 압박도 커지고 있다.
‘미분양의 무덤’ 대구에서는 한 달 만에 준공 후 미분양이 3.4배 늘었다. 지난 1월 대구 지역 준공 후 미분양은 277가구였지만 2월에는 952가구가 주인을 찾지 못했다. 대구에서 준공 후 미분양 수가 1000개에 육박하는 것은 2013년 11월 이후 9년 3개월 만이다.
대구는 올해 청약 일정이 전무했지만 쌓인 미분양 물량만 1만4000가구에 육박한다. 건설사들은 분양가 할인, 중도금 무이자, 발코니 무료 확장 등 공격적인 마케팅에 나섰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대구의 강남으로 불리는 수성구에서 지난 1월 입주를 시작한 ‘만촌 자이르네’는 5가구 중 4가구가 빈집이다. 입지와 학군이 좋은 수성구에 607가구로 큰 단지임에도 주변 아파트 값이 급락하면서 준공 후에도 미분양 상태다. 건설사는 결국 기존 10억7000만~11억5000만원이던 전용 84㎡ 분양가를 층별로 8억원대까지 낮췄다. ‘살아보고 결정하는’ 방식도 도입됐다. 원 분양가의 34%를 내고 24개월 거주한 후 매수 여부를 결정하게 한 것이다.
분양가 낮으면 지방도 완판 가능
비서울 지역에서도 웃은 단지는 있었다. 분양가가 인근 시세보다 낮고 입지가 좋은 단지다. 지난 3월 전국에서 가장 높은 1순위 청약 경쟁률을 달성한 단지는 경기도 평택에서 나왔다. 평택시 고덕동 ‘고덕자이센트로’는 1순위 청약에서 89가구 모집에 4034명이 몰리며 45.3 대 1의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다.
지난해부터 미달이 이어지던 평택 분양 시장에서 모처럼 흥행에 성공한 단지였다.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되면서 시세보다 저렴하게 공급된 덕이다. 단일 평형으로 공급된 전용면적 84㎡ 분양가는 4억9500만원 수준이다. 인근에 있는 ‘고덕국제신도시파라곤’ 전용 84.9㎡가 4월 6억8700만~7억원에 거래된 것을 감안하면 분양가가 2억원 가까이 저렴하다. 입지도 좋다. 평택 내 다른 지역과 달리 고덕은 인프라가 잘 구축돼 있고 삼성전자 평택 캠퍼스가 가까워 수요가 몰린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3월 1순위 청약 평균 경쟁률이 1 대 1을 기록한 부산에서도 흥행에 성공한 단지가 나왔다. 해운대구 우동 ‘해운대역 푸르지오 더원’은 1순위 청약에서 251가구 모집에 1211명이 몰려 평균 경쟁률 4.8 대 1을 기록했다. 전용 84㎡는 79가구 모집에 736명이 지원하며 경쟁률이 9.3 대 1까지 치솟았다.
전문가들은 결국 청약 한파를 헤쳐 나갈 수 있는 키가 ‘분양가’에 있다고 말한다. 한문도 연세대 부동산금융학과 교수는 “현재 부동산 시장이 가라앉아 있기는 하지만 특례보금자리론과 1·3 대책 효과가 적용되면서 수요자들이 원하는 가격 수준일 때는 충분히 분양에 흥행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Copyright © 한경비즈니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