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 View]반도체, 이젠 정치의 영역

김인경 2023. 4. 12.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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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삼성전자가 전년 동기 대비 무려 95%나 감소한 2023년 1분기 영업이익을 발표했지만, 주가는 실적 공시 이후 오히려 오름세를 나타내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에 대한 감산 계획을 밝혔기 때문인데, 이는 전형적인 반도체 업황의 바닥권 통과 신호이다. 반도체 경기가 가장 좋았을 때 설비 투자 계획을 발표하면서 주가가 무너지고, 업황 사이클의 최바닥에서 투자 계획의 축소나 감산을 발표하면서 주가가 반등하는 모습은 역사 속에서 반복돼 왔다. 반도체 주가는 ‘수요’가 아닌 ‘공급’에 따라 좌우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반도체와 같은 중간재(commodity)를 만드는 기업은 수요와 공급의 미세한 변화에도 실적이 요동치는데, 반도체 기업은 끊임 없이 설비투자를 해야 살아 남을 수 있다. 반도체 경기 호황 국면에서 큰 이익을 내면, 이 돈을 사내에 유보시켜 주주들에게 배당으로 나눠주는 것보다 대규모 투자를 통해 공정의 효율을 높여야 한다. 생산 효율이 개선되면서 반도체 공급이 늘어나 공급과잉이 생길 것이라는 우려가 생기는 순간 주가는 큰 폭으로 하락하기 시작한다. 워낙 대규모 투자가 이뤄지기 때문에 반도체 수요와 공급의 밸런스를 결정하는 것은 공급 쪽인 경우가 많다. 감산은 설비투자 확대와 반대의 효과를 가져온다. 이렇게 부침이 심한 업황 사이클을 거치면서 메모리 반도체 생태계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 테크놀로지 등 몇몇 회사들이 지배하는 과점적 시장으로 변화해 왔다. 통상적인 과점시장과는 달리 플레이어들이 가져가는 이익의 진폭이 너무 크기는 하지만 말이다.

메모리 반도체 사업은 수급의 미묘한 개선에 따라 크게 돈을 버는 ‘물량떼기’ 장사에 가깝다. 이런 점에서 보면 향후 반도체 관련주 주가와 관련해 가장 중요한 변수는 고유의 업황 사이클이 이번에도 반복될 것인가라는 점과 더불어 반도체를 매개로 나타나고 있는 미중 갈등의 진행 양상이다. 반도체는 미국과 중국에게 가장 민감한 산업이다. 중국은 2015년에 ‘중국제조 2025’라는 산업 진흥책을 발표한 바 있다. 2025년까지 주요 첨단 산업 분야에서 강국의 반열에 오른다는 계획이었는데, 이 장밋빛 청사진에서도 반도체는 자국의 힘만으로 부흥시키기 힘들다는 점을 중국 당국은 인정했다. 미국이 중국의 약한 고리인 반도체를 매개로 대중 공세를 펴는 것은 맥을 잘 잡았다고 볼 수도 있겠다.

문제는 한국의 반도체 산업이다. 중국에서 반도체 생산 규모가 가장 큰 국가가 한국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반도체 산업에 대해 따로 ‘반도체 법(Chips Act)’를 발효했는데, 중국 내에서의 반도체 생산을 규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작년 10월 발효 이후 최초로 가해진 규제는 중국 내 반도체 생산시설로의 첨단장비 반입을 막는 것이었다. 한국을 비롯한 우방국들의 반발로 시행은 금년 10월까지 1년 유예돼 있는 상황이다. 지난 3월에는 미국 상무부가 반도체법 가드레일(투자제한 장치) 세부 규정을 발표했는데, 미국의 반도체 보조금을 받은 기업의 중국내 첨단 반도체 공정은 향후 10년 간 5% 이내 범위에서만 생산능력을 확대할 수 있도록 규정해 놓았다. 끊임없는 설비투자를 통해 공정의 효율을 높여 생산성을 향상시켜야 할 반도체 기업에게는 치명적인 규제이다. 한국 반도체 기업 입장에서는 일정 정도의 유예 기간을 얻어내야 하는데 이는 경제가 아닌 정치의 영역이다.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 법안(IRA·Inflation Reduction Act)도 발효했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IRA는 인플레이션 억제와 관련이 없는 것 같다. 재생에너지·태양광·전기차 등 미래 성장산업에 대해 보조금을 지급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고, 미국 기업들의 자사주 매입에 대한 과세 방안까지 담겨있는 IRA를 통해 어떻게 인플레이션을 억제할 수 있다는 말인가. 얼마전 IRA 세부지침 발표에서 미국은 전기차 배터리와 관련해 자유무역협정(FTA) 미체결국인 일본에 특혜를 줬다. IRA 법안이 가진 정치성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우리도 중국 반도체 생산과 관련해 나름의 혜택을 얻어내야 한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한국 반도체주들의 향후 주가는 업종의 고유한 스토리에 더해 미국에게 우리의 입장을 얼마나 관철시킬 수 있느냐에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김인경 (5tool@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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