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도 배터리·태양광도…‘우린 미국으로 간다’

2023. 4. 12.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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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RA 이후 첨단 전략 산업 ‘투자금 블랙홀’ 된 미국
LG엔솔도 배터리 공장 4배 키워
규제 해소·세액 공제 확대로 한국 투자 매력도 끌어올려야

[비즈니스 포커스]

경계현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 사장이 미국 테일러시 윌리엄슨 카운티의 빌 그라벨 카운티장에게서 ‘삼성 고속도로’ 표지판을 선물 받은 뒤 기념 촬영하고 있다. 사진=인스타그램 캡처



미국이 막대한 보조금을 앞세워 한국 기업들의 투자금을 빨아들이고 있다. 미국 내 생산 제품에 보조금을 지원하고 자국 내 첨단 산업 육성을 지원하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반도체지원법 등을 시행하면서 한국의 배터리·반도체·태양광 기업들이 연이어 미국에 공장 건설 계획을 내놓고 있다.

특히 IRA 시행 이후 배터리·태양광 기업들에 미국은 새로운 기회의 땅으로 부각되고 있다. IRA가 규정하고 있는 보조금·세액 공제 규모와 예산이 한정적이기 때문에 한국 기업들은 선제적인 투자로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계획이다.

미국 주정부들도 팔을 걷어붙였다. 미시간 주·오하이오 주는 IRA, 반도체 지원법 등 시행 이후 보조금을 무기로 글로벌 기업의 생산 시설 유치를 위해 최근 독일과 노르웨이 등 유럽을 순회했다.

 

 IRA는 ‘기회’…LG엔솔·한화, 조 단위 투자 속도

LG에너지솔루션은 7조2000억원을 투자해 미국 애리조나 주에 신규 원통형 배터리·에너지저장장치(ESS)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공장을 짓는다. 총생산 능력은 43기가와트시(GWh)로, 북미 지역에 있는 글로벌 배터리 독자 생산 공장 중 사상 최대 규모다. 당초 계획(1조7000억원 규모)보다 투자금을 4배 키웠다.

LG에너지솔루션은 이번 신규 공장으로 북미 지역에서 총 7개의 생산 기지를 확보하게 된다. 현재 미시간 단독 공장과 오하이오 제너럴모터스(GM) 합작 1공장을 운영 중이고 테네시 GM 2공장과 미시간 GM 3공장, 오하이오 혼다와 캐나다 온타리오 스텔란티스 합작 배터리 생산 공장을 건설 중이다.

삼성SDI는 스텔란티스와 합작해 미국 인디애나 주에 25억 달러 규모의 배터리 합작 공장 건설을 추진 중이고 GM과도 현지 합작 공장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지아 주에 단독 공장인 1·2공장을 가동 중인 SK온은 포드·현대차 등과 켄터키·테네시·조지아에 배터리 합작 공장을 짓고 있다.

첨단 전략 산업에 대한 투자도 미국에 집중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 주 테일러에 170억 달러(약 22조원)를 투자해 파운드리(반도체 수탁 생산) 공장을 구축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향후 20년에 걸쳐 2000억 달러(약 260조원) 정도의 대규모 투자를 단행해 텍사스에 반도체 공장 11개를 신설하는 중·장기 계획도 추진 중이다.

테일러의 윌리엄슨 카운티는 삼성전자의 대규모 투자를 기념해 새 파운드리 부지 앞 도로를 ‘삼성 하이웨이’로 명명하고 도로 표지판을 선물로 주기도 했다. SK하이닉스는 150억 달러(약 20조원)를 투입해 현지에 반도체 후공정(패키징) 공장과 연구·개발(R&D)센터를 짓겠다는 계획이다.

한화솔루션은 매년 20% 안팎의 고성장이 예상되는 북미 태양광 시장에 승부수를 띄웠다. 미국 조지아 주에 3조2000억원을 투자해 잉곳·웨이퍼·셀·모듈의 현지 생산을 위한 태양광 통합 생산 단지 ‘솔라 허브’를 구축하기로 했다.

IRA가 본격 발효된 올해부터 현지에서 태양광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은 세액 공제 등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한화솔루션은 태양광 수직 계열화를 통해 밸류 체인별 생산 라인을 한군데로 모아 물류비 절감과 운영 효율성 제고 등 원가 경쟁력 강화를 꾀할 수 있다.

한화솔루션이 3조2000억원을 투자해 향후 10년 동안 받을 세제 혜택이 8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업계는 추산한다.

IRA 세액 공제 혜택에서 제외된 현대차는 55억 달러를 투입한 미국 조지아 주 전기차 전용 공장의 조기 완공에 힘을 쏟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방한 기간 동안 로보틱스·자율주행·인공지능(AI) 등에 2025년까지 50억 달러 규모의 추가 투자 계획을 밝힌 바 있다. 현대차그룹의 미국 투자 규모는 총 105억 달러(약 13조원) 규모에 이른다.

미국 미시간 주의 LG에너지솔루션 홀랜드 공장 직원들이 파우치형 배터리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LG에너지솔루션 제공



 

 각종 규제가 걸림돌…투자 매력도 높여야

미·중 갈등과 IRA 시행으로 반도체·전기차·배터리 등 첨단 정보기술(IT) 산업의 공급망이 장기적으로 미국과 중국 중심으로 이원화되면서 한국의 투자 위축 우려도 나오고 있다. 한국의 투자 위축은 제조업 경쟁력 저하로 이어진다.

IRA 시행 이후 제조업 분야의 해외 투자액이 늘고 있다. 235억90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28.9% 증가했다. 제조업 투자 증가는 반도체·전기차 등과 관련된 현지 생산 시설 확보 등을 위한 대규모 투자에 따른 것이다. 국가별로는 미국(277억7000만 달러), 케이맨 제도(93억8000만 달러), 중국(65억9000만 달러) 순으로 직접 투자가 많았다.

한국은 투자 매력도는 주요국 대비 낮은 수준이다. 유럽의 싱크탱크 유러피언하우스암브로세티의 ‘글로벌 외국인 투자 매력도지수(GAI)’에 따르면 2022년 한국의 투자매력지수는 79.2점에 그쳤다.

국내총생산(GDP)과 고용률, 임금 수준 등을 고려해 매년 해외 투자 유치 역량을 100점 만점으로 지수화해 발표하는데 점수가 80~100점에 들어야 투자 매력도가 높은 국가로 평가된다.

실제 한국 기업의 해외 직접 투자 규모는 최근 5년간 451억2000만 달러에서 771억7000만 달러로 71% 늘 때 외국 기업의 한국 직접 투자는 229억5000만 달러에서 304억5000만 달러로 약 33% 증가하는 데 그쳤다.

경영계에서는 외국인 투자 활성화를 위한 해법으로 ‘규제 해소’를 꼽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최근 전국 50인 이상 201개 외투 기업을 대상으로 ‘주한 외투 기업 규제 인식 및 투자 전망 조사’를 진행한 결과 외투 기업의 48.8%가 다른 국가보다 개선이 필요한 한국의 규제 분야(복수 응답)로 ‘노동 규제’를 꼽았다. 그다음으로 ‘지배 구조 규제(23.9%)’, ‘인허가‧건축 규제(23.4%)’, ‘안전‧보건 규제(21.9%)’ 순이었다.

카허 카젬 전 한국지엠(GM) 사장은 협력업체 노동자 1700여 명을 불법 파견받은 혐의로 출국 금지와 함께 2년 넘게 이어진 재판 끝에 유죄를 선고받았다.

카젬 전 사장은 2022년 한 포럼에서 “기업 노동 관행의 위법 행위는 다른 선진국에서는 통상적으로 민사에서 해결되는데 한국은 형사 처분까지 주는 ‘양벌 규정’이 있다”며 노조 문제 등이 한국의 투자 매력도를 떨어뜨린다고 작심 발언하기도 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등 참석자들이 2022년 10월 25일(현지 시간) 미국 조지아주 브라이언 카운티에서 열린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 기공식에서 첫 삽을 뜨고 있다. 사진=현대차 제공



 

 전기차 공장, 미국은 30%·한국 3% 돌려줘

미국·유럽연합(EU) 등 세계 주요국이 자국 내 제조업 기반 강화와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제조업 회귀 정책을 펴고 있는데 한국도 한국 투자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미국은 IRA를 통해 전기차 공장 투자 금액의 최대 30%(기본 6%)를 세액 공제해 준다. 친환경차 생산 시설 전환에도 20억 달러의 보조금을 지원한다. 반면 한국은 전기차 생산 공장 투자에 적용되는 세액 공제가 3%에 불과해 한국의 자동차 산업 전반이 위축되고 전기차 주도권 확보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최근 국회가 전기차에 최대 25%의 세액 공제 혜택을 부여하는 조세특례제한법을 통과시켰지만 전기차 생산 시설이 국가 전략 기술의 사업화 시설에 포함돼야 혜택을 받을 수 있어 업계에선 반쪽짜리 법안이라고 지적한다. 전기차 주도권 선점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선 최소한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수준의 세액 공제 등 투자 유인책이 시급하다는 게 업계의 요구다.

강남훈 한국자동차산업연합회(KAIA) 회장은 최근 포럼에서 “경쟁국의 전기차 산업 주도권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어 한국 투자에 대한 지원 확대가 필요하다”며 “전기차 생산 시설이 국가 전략 기술의 사업화 시설로 지정돼야 경쟁국 수준의 지원이 확보된다”고 강조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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