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나면 가상 자산은 어떻게 쓰일까[비트코인 A to Z]
전 세계가 혼란스럽다.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유행)의 여파로 세계 경제가 고금리·고물가에 시달리며 경기 침체가 지속되는 가운데 국제 정세도 불안정하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도 벌써 1년이 흘렀지만 이 지루한 전쟁이 언제 끝날지 가늠하기 어렵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월 6일 튀르키예와 시리아에서 발생한 강진으로 인해 사망자 수가 5만 명을 넘어서며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무력감을 느끼고 있다.
이처럼 전쟁이나 자연재해 같은 대규모 인도주의적 위기가 발생하면 사람들은 기부 캠페인에 후원하는 등 여러 지원 활동에 참여한다. 하지만 어떻게 후원하는지, 어디에 후원할 수 있는지 고민하는 이들이 많다. 어떻게 해야 기부금이 가장 필요한 이들에게 빠르게 온전히 전달될 것인지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여기에 대한 해답을 가상 자산에서 찾을 수 있다.
가상 자산은 자연재해와 정치적 불안으로 인한 피해자들에게 신속하고 효율적인 지원을 제공하면서 다양한 위기 상황에서 고유의 투명성을 통한 역할을 키워 가고 있다. 정치적 긴장으로 인해 화물 운송이 통제되는 가운데 가상 자산은 국경 간 자금 이체를 가능케 함과 동시에 신뢰도와 시기 적절성을 갖춘 수단으로 부상했다.
가상 자산 기부는 전통적인 금융 체제보다 빠른 지원을 가능하게 한다. 은행은 전 세계로 송금된 거래를 처리하는 데 며칠이 걸리지만 가상 자산 송금은 분 단위로 처리된다. 이러한 장점은 명목 화폐 형태의 기부금 분배가 까다로운 시리아와 같은 제재국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경로 설정에 수반되는 시간적 지연을 최소화하고 적재적소에 기부금을 전달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수수료 절감 또한 가상 자산 기부의 장점이다. 가상 자산 거래에서는 국경 간 자금 이체에 부과되는 비싼 수수료에 대한 부담이 사라진다. 또한 가상 자산 기금 기부는 비영리 단체의 수익원을 다각화해 기존 모금 수단에 대한 의존도를 낮출 수 있도록 한다.
실제로 2022년부터 전쟁이 계속되고 있는 우크라이나에서는 가상 자산이 이재민을 돕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2023년 2월 기준 우크라이나 정부가 제공한 가상 자산 주소로 기부된 금액은 총 7000만 달러(약 897억원)에 육박한다. 그중 70% 이상이 이더리움(ETH)과 비트코인(BTC)으로 이뤄졌다. 이와 함께 대체 불가능한 토큰(NFT) 형태로 이뤄진 기부 사례로는 우크라이나DAO가 우크라이나 국기 NFT를 650만 달러(약 83억원)에 경매에 부친 사례가 있었다.
더 나아가 가상 자산은 우크라이나와 같은 신흥 시장에서 경제적 구조 조정의 열쇠가 될 수 있다. 신뢰할 수 있는 가치 저장소 역할 수행과 국경 간 자금 이체 비용 절감 측면에서 잠재력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크라이나는 체이널리시스가 발표한 2022년 글로벌 가상 자산 도입 지수에서 3위를 차지했고 이는 우크라이나에서 가상 자산 사용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튀르키예와 시리아 지진 피해자들에게 재난 지원을 신속하게 제공하는 과정에도 가상 자산의 역할이 컸다. 체이널리시스의 조사에 따르면 튀르키예 내무부 지진 인도주의적 지원 캠페인, 튀르키예 적신월사(Turkish Red Crescent), 세이브 더 칠드런, 프로젝트 호프 등 다양한 단체에 약 590만 달러(약 76억원) 상당의 가상 자산 기부가 이뤄졌다. 또한 가상 자산 기업들인 바이낸스·테더·비트파이넥스·OKX·쿠코인 등은 지진 피해자를 위해 900만 달러(약 115억원) 이상을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친러시아 단체에도 70억원 모여
하지만 위기 상황에서의 가상 자산은 양날의 검이 될 수도 있다. 한 가지 주요 위험은 의도하지 않게 가상 자산을 악의적 행위자에게 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악의적 행위자는 사적이거나 정치적 용도의 자금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체이널리시스는 현재까지 튀르키예 지진 피해와 관련된 사기 기부 계좌를 18개나 확인했지만 다행히도 현재까지 가상 자산으로 받은 금액은 502달러(약 64만원)에 불과하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기간 동안에는 러시아 군사 구매를 위한 크라우드 펀딩, 허위 정보 유포, 침략 찬성을 선전하는 54개의 자원봉사 단체가 확인됐다. 전쟁 1년이 지난 현재 확인된 친러시아 단체의 수는 약 100개로 늘어났고 약 540만 달러(약 69억원)의 기부금이 모였다.
또 하나의 위험은 랜섬웨어 공격이다. 랜섬웨어 공격은 위기 상황에서 악의적인 공격자들에 의해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러시아에 기반을 둔 랜섬웨어 그룹인 콘티(Conti)는 2022년 피해자들에게 약 6600만 달러(약 847억원) 상당의 피해를 입혔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콘티는 러시아 정부를 지지한다고 발표했고 이로 인해 많은 피해자들이 랜섬 지불을 중단하기도 했다.
금융 제재 회피 가능성 또한 가상 자산의 어두운 이면이다. 최근 러시아 정부나 정치인이 엄격한 제재를 피하기 위해 가상 자산을 사용하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제기됐었다. 체이널리시스의 조사에 따르면 가상 자산 시장의 낮은 유동성으로 인해 러시아의 대규모 제재 회피를 지원할 가능성은 낮지만 소규모 활동은 여전히 존재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러시아 사용자를 대상으로 고위험 거래소 유입을 조사한 결과 2022년 2월 러시아 침공 이후 활동이 소폭 증가했지만 대부분의 급등은 전쟁보다 가상 자산 시장의 전반적인 추세와 더욱 관련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기부 전 가상 자산 지갑 주소 검색해 봐야
연방거래위원회(FTC)는 가상 자산과 관련된 이러한 위험 요소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가상 자산으로 기부하기 전에 기부를 요청하는 단체나 개인을 범죄 관련 키워드와 함께 검색하거나 가상 자산 지갑 주소를 검색해 진위 여부를 확인하는 등의 사기 예방 조치를 권장한다. 제재 대상 기관이라면 기부하는 것을 반드시 피해야 한다.
위와 같은 위험 요소가 도사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상 자산은 위기 상황에서 필요한 이들에게 너무나 많은 이점을 제공해 왔다. 전 세계가 다양한 위기 상황에 처한 가운데 가상 자산이 원조와 구호 활동을 촉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백용기 체이널리시스 한국 지사장
Copyright © 한경비즈니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