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밀문건 '가짜' 여부 한미 온도차…용산 이전 책임론 불식?

CBS노컷뉴스 김형준 기자 2023. 4. 12. 0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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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요약
백악관 "유출 문서 일부 조작…모든 문건 유효한지는 말 안해"
김태효 "공개된 정보 상당수 위조됐다는 데 한미 평가 일치"
미국은 '진짜로 보이는 문건' 있다는데, 한국은 '상당수 조작'?
민주당 "지난해 청사 이전 당시 도청 등 보안 허점 가능성 지적"
대통령실 "청사는 군사시설로 철통 보안…민주당 '선동 급급'"
국힘 "민주당 '반미 선동'…결과 나오면 합당한 조치"
문건의 '특수정보'는 도청만이 아니라 내부 협조자도 포함
소식통 "위조 가능성 있지만, 가짜를 만들려면 진짜 문건 필요"
CBS노컷뉴스 취재진이 입수한 해당 기밀문건의 한국 관련 내용
얼마 전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유출된 기밀문건에 대해 미국 정부가 일정 수준의 유출을 사실상 인정하는 분위기인 반면, 한국 정부는 "공개된 정보의 상당수가 위조됐다는 데 한미의 평가가 일치한다"며 온도차를 드러냈다.

그러면서 대통령실은 용산 청사에 대한 도청 가능성을 사실상 부인하고 나섰는데, 야당에서 제기하고 있는 청와대 이전 관련 책임론을 불식시키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존 커비 전략소통조정관은 10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이번 사태에 대해 조 바이든 대통령도 보고를 받았다며, 국방부가 문건의 유출 과정에 대해 조사를 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에 유출된 문서가 일부 조작됐다(doctored)면서 "일부 사례의 경우 온라인상에 올라온 정보는 우리가 생각하는 원래 소스에서 변경됐다(altered)"고 말했다.

다만 "조작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don't immediately appear to be doctored) 문건을 비롯해 모든 문건이 유효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다"면서 "국방부는 국가안보에 대한 함의를 살펴보기 위해 범부처 차원에서 노력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이들 문건이 유효한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 조사하는 것도 포함된다"고도 설명했다. 일정 수준의 문건 유출은 인정하지만 그 가운데는 조작된 것들이 존재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 최종 조율을 위해 11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2터미널을 통해 출국하는 모습. 연합뉴스


그런데 11일(한국시간) 오전 우리 국방부는 이종섭 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이 전화통화를 했다고 발표했고, 국가안보실 김태효 1차장은 미국으로 출국하는 길에 기자들과 만나 이 통화 과정에서 "공개된 정보의 상당수가 위조됐다는 데 한미의 평가가 일치했다"고 언급했다. 위조됐다는 사실을 언급한 것 자체는 백악관과 비슷한데 '대다수가 위조됐다' 쪽에 보다 무게가 실린 셈이다. 그러면서도 '상당수'라는 표현을 통해 전부가 위조되지는 않았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남겼다.

이어 대통령실은 입장문을 통해 "용산 대통령실은 군사시설로, 과거 청와대보다 훨씬 강화된 도감청 방지 시스템을 구축, 운용 중에 있다"며 "통합 보안시스템과 전담 인력을 통해 '철통 보안'을 유지하고 있으며, 용산 대통령실 도감청 의혹은 터무니 없는 거짓 의혹임을 명백히 밝힌다"고 밝혔다.

대통령실은 "더불어민주당은 진위 여부를 가릴 생각도 없이, '용산 대통령실 이전'으로 도감청이 이뤄졌다는 식의 허위 네거티브 의혹을 제기해 국민을 선동하기에 급급하다"며 "이는 북한의 끊임 없는 도발과 핵 위협 속에서 한미동맹을 흔드는 '자해행위'이자 '국익침해 행위'"라고 야당에 대한 반격에 나섰다.

김병주 국방위 간사를 비롯한 더불어민주당 국방위, 정보위, 외통위원들과 무소속 김홍걸 의원이 지난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미국 정보기관의 대통령실 도·감청 관련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앞서 더불어민주당 국방위·외교통일위·정보위원들은 10일 기자회견을 열고 "아무런 마스터플랜 없이 대통령실을 국방부로 옮기겠다고 나설 때, 급하게 NSC 시스템을 꾸리고 보안 조치를 소홀히 하여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은 아닌지 명백한 진상조사가 필요하다"며 "더불어민주당은 섣부르게 대통령실 이전을 발표할 때부터, 이와 같은 국가 중대사를 급하게 추진하다 보면 도청이나 보안 조치 등에 구멍이 날 수도 있다고 지적해 왔다"고 비판했었다.

실제로 국가정보원 출신인 민주당 김병기 의원은 지난해 5월 이종섭 국방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 공사가 진행되는 도중 외국 정보기관에 의해 도청장치 등이 심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도 2005년부터 러시아 대사관 공사를 하던 도중 도청장치가 끊임없이 나와, 아예 미국에서 모든 자재를 가져다가 15년에 걸쳐 완성했다는 얘기다.

따라서 하루만에 나온 대통령실의 '태도 변화'는 2개월만에 진행된 용산 청사 이전이 곧 도청을 당한 원인이 아니냐고 공격하는 야당 주장에 대한 반박 성격도 띠고 있는 셈이다. 대통령실뿐만 아니라 국민의힘 외교통일·국방·정보위원들도 이날 합동기자회견을 통해 민주당이 '반미 선동'을 한다며 미국 정부의 조사가 끝난 뒤 그 결과가 나오면 합당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리하면 도청의 '가해자'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은 일단 기밀정보 유출을 인정하면서도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보다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발표했는데, 정작 '피해자'인 한국은 "문건의 상당수가 위조됐다"며 '가해자 편을 들어주는' 형국이 된 셈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11일 오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같은 온도차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충분히 할 수 있는 질문이지만 그 역시 정보 사항이고, 우리가 어떤 문제에 대해서 언제 어떻게 얼마나 아느냐도 우리 정보와 관련돼서 굉장히 중요한 기밀 사항일 수 있기 때문에 제가 직접 언급하지 않겠다"며 "그 점(어떤 문건이 진짜이고 가짜인지)을 미국 법무부가 조사하고 있으니까 그 조사 결과가 나오면 조금 더 진지하게 얘기할 수 있겠다"고만 답했다.

'도감청 방지 시스템을 철저하게 구축했다'는 대통령실의 해명도 모든 의혹을 다 풀어주지는 못한다. 해당 문건을 보면 'SI-Gamma' 즉 '특수정보'라는 표시가 되어 있다. SI는 특정한 수단으로 얻은 첩보와 이를 분석한 정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출처와 내용이 은폐된 정보'를 뜻한다. 따라서 도감청이나 해킹 등의 신호정보(SIGINT)를 뜻하는 경우가 많지만, 스파이나 협조자를 통한 인간정보(HUMINT)도 포함된다. 본래 첩보전에서 협조자를 포섭했다는 사실이 발각되면 해당 협조자는 제거되기 때문에 HUMINT도 SI로 취급된다.

대통령실은 인간정보를 통한 유출 가능성에는 아직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현재까지 해명이 모두 사실이라고 해도, 인간정보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첩보 수집 방법이기에 곱씹어 보면 이번 문건에 적힌 내용 역시 우리 대통령실 내부의 미국 협조자를 통해 새어나갔을 가능성도 존재한다는 불편한 결과에 도달하게 된다.

정보 소식통은 사견을 전제로 "해당 문건을 보면 그 가운데 일부가 위조됐을 가능성은 있지만, 설사 그렇더라도 (문서의 형식 등을 보면) 이를 만드는 데는 진짜 문건이 필요하다"며 "때문에 진짜 문건이 유출되지 않았다는 보장은 없고, 진실은 결국 미국만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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