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도청 의혹 때마다 한국 ‘저자세 대응’···2023년과 2013년 ‘판박이’
미국 정보기관이 한국 대통령실을 도청했다는 의혹은 커지고 있지만 정부는 사과 요구는 커녕 사실 관계 확인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 10년 전 미국의 주미한국대사관 도청 의혹 때 유감은 물론 사과조차 받지 못한 저자세 외교와 판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2013년 6월 미국 중앙정보국(CIA) 직원 에드워드 스노든이 국가안보국(NSA)의 광범위한 비밀 정보수집 행위를 폭로하면서 도청 의혹이 불거졌다. 이 폭로에는 미국이 한국을 포함한 38개국 주미 대사관을 대상으로 도청을 해왔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당시 외교부는 “엄중한 사안으로 받아들인다. 사실관계를 확인한 뒤 적절한 조치를 할 예정”이란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수개월이 지나도 미국으로부터 이렇다 할 해명이나 적절한 조치를 얻어내지 못했다. 4개월이 지난 2013년 10월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도 외교부는 여전히 미국과 ‘협의 중’이라는 답만 내놨다.
그해 11월에도 “미국 정부에 납득할만한 설명 및 조치를 신속하게 제공해달라고 요청했고 현재 답을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을 상대로 특단의 대응 조치를 취하지 못한 것이다. 정부는 독일 등과 달리 구체적인 증거가 드러나지 않았다고 해명했지만 “공식적 항의도 못하는 외교부”라는 비난을 받았다.
한국의 소극적 외교와 달리 독일·프랑스·멕시코·브라질 등 미국으로부터 도청 피해를 당한 다른 국가들은 미국에 강력히 항의하고 사과 및 재발방지 약속을 받아냈다. 독일과 브라질은 불법 감시에 대해 사생활 보호권을 보장하는 결의안까지 유엔 총회에서 통과시켰다.
당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자신의 휴대전화를 미국이 도청해왔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수십년 우방국 최고지도자의 대화를 엿듣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강력 항의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금은 휴대전화 도청을 하지 않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답해 도청 사실을 간접 시인했다. 프랑스 외무장관도 미 국무장관과의 회담에서 미 정보기관의 스파이 행위는 용인할 수 없다며 미국 정부의 해명을 요구했다. 멕시코는 미국의 도청 행위를 신뢰에 대한 남용으로 규정하고 관련자 처벌을 미국에 요구했으며,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은 미국 스파이 활동에 항의하는 의미로 미국 국빈 방문 계획을 취소했다.
한국 정부는 10년이 지났지만 미국의 도청 의혹에 대한 사과 요구보다는 오히려 대신 해명하는 모습이다.
이달 말 윤석열 대통령의 국빈 방미 준비차 11일 출국한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인천국제공항에서 ‘미국 측에 어떤 입장을 전달할 계획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전달)할 게 없다”며 “왜냐하면 누군가가 위조를 한 것이니까. 따라서 (미국의) 자체 조사가 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답했다. 유감, 사과 요구 등을 할 계획이 없다는 의미로 읽힌다. 외교부 당국자도 이날 미국 측에 외교 채널을 통한 항의를 할 것이냐는 질문에 “미국 측에서 관련된 조사가 이날 오전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고, 그에 따라서 필요한 조치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답했다.
박은경 기자 yam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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