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방통위원? '전투력' 강한 '정치인' 출신 선호 아닌가
최민희 선임 논란, "방통위 설치법 취지에 반해"
최시중 선임 땐 민주당에서 "방송장악 의도" 반발
정치인 출신 방통위원 늘어나는 추세
[미디어오늘 금준경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최민희 전 국회의원을 민주당 추천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방통위원)에 추천하자 국민의힘이 반발해 대치 국면이 이어지고 있다. 방통위가 정치적 대립의 장이 되면서 방통위 설치법 취지와 달리 정치적 성향이 강한 인사를 선임하는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최민희 적절성 논란
국민의힘은 10일 최민희 전 의원 추천안 거부를 대통령에 건의했다. 국민의힘은 최민희 전 의원이 △허위사실을 유포한 전력이 있고 △정치적 편향성을 드러내 방통위원에 걸맞지 않고 △한국정보산업연합회 상근 부회장을 지내 방통위 설치법상 결격사유(3년 이내 방송통신업계 종사자)에 해당한다는 입장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최민희 전 의원을 향한 공세에 '전문가'라고 반박했다. 최민희 전 의원은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국장을 지냈고 참여정부 시절 방송통신위원회의 전신인 방송위원회 부위원장을 역임했다. 국회에선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에서 활동했다. 관련 경력만 놓고 보면 '전문가'에 해당한다.
문제는 최민희 전 의원의 국회 진출 이후 보인 행보에 있다. 최민희 전 의원은 지난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 캠프 미디어특보단장을 지내며 이재명 후보의 목소리를 대변해왔다. 오랜 기간 방송 패널로 출연하며 친민주당 스피커로서 역할을 해왔다.
이를 고려하면 최민희 전 의원을 적절한 인사로 보기 힘들다. 방통위 설치법상 방통위원은 '정당 당원' '인수위 경력 3년 이내' '선거로 취임하는 공직 퇴직 후 3년 이내' 등을 결격사유로 두고 있다. 또한 '관련 업계 15년 이상'을 자격 요건으로 한다. 이는 대통령과 정당이 추천권을 갖되 정치적 인사를 배제하고 전문가를 선임하라는 취지다. 최민희 전 의원은 현재 당원이 아니지만 대선 캠프 활동 등 국회의원 출신 인사 중에서도 정파적 색채가 강하다.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교수는 “방통위 설치법상 정치적인 관련이 있을 경우 상당한 기간이 지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방송, 언론을 담당하는 기구이니 정치적 영향력으로부터 방파제를 만들자는 취지”라며 “이렇게 되면 국민의힘에서 극단적인 인사를 선임할 수도 있다”고 했다. 최승호 뉴스타파 PD는 페이스북을 통해 “방통위는 방송·통신 정책을 담당하는 만큼 정파를 초월해 독립적 역할을 할 위원들이 필요한데 최 전 의원이 그런 역할에 적합하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다만 국민의힘의 주장 가운데 '국민의힘 추천 안형환 위원 후임을 민주당이 추천하는 건 위법'이라는 주장은 반박 소지가 있다. 민주당은 야당 추천 위원 후임은 현 야당이 추천하는 게 맞다고 주장하는 반면 국민의힘은 과거 야당 추천 안형환 위원의 전임자인 김석진 위원은 여당 시절 국민의힘이 임명했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2017년 문재인 정부 집권 후 민주당이 야당 시절 임명한 고삼석 위원의 후임 몫을 야당인 국민의당이 추천한 전례도 있다. 정당 추천권은 정치적 상황을 고려해 여야가 합의를 해왔다.
방통위에 정치권 인사 늘어나는 추세
과거엔 민주당이 '반발', 낙마 사례도
정치권 출신 방통위원 논란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1기 방통위원장에 대통령의 측근이자 멘토인 최시중씨를 선임해 논란이 됐다. 당시 우상호 통합민주당 대변인은 “대통령이 직접 방송을 장악하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당시엔 민주당이 “기술발전에 따라서 방송통신산업의 시너지 효과 발휘”라는 방통위 설립 취지를 강조하며 정치적 인사를 비판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정치권 출신 방통위원이 늘고 있다. 방통위원 출신 직업군을 분류하면 1~2기 때는 위원장(최시중·이경재)만 정치인 출신이었고 위원들은 공무원, 학자 등으로 구성됐다. 3~4기 때는 정치인 출신 위원이 2명으로 늘었다. 3기엔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국회의원 출신인 허원제, 김재홍 위원을 추천했다. 4기엔 자유한국당이 국회의원 출신 김석진 의원을, 국민의당이 안철수 대선캠프 출신 표철수 위원을 추천했다. 최근 일부 위원의 임기가 끝난 5기 방통위에선 정치인 출신 위원이 과반을 점했다. 국민의힘 추천 2명(안형환, 김효재) 모두 국회의원 출신이고 민주당은 김현 전 의원을 추천했다.
정치색이 강한 인사가 내정됐다가 낙마한 사례도 있다. 2017년 국민의당은 고영신 방통위 상임위원을 내정했다가 논란이 되자 철회했다. 고영신씨는 종편 단골 패널로 정치적으로 강한 발언을 해 논란이 됐던 인사다. 여기에 '삼청교육대 찬양 및 5·18 진상규명 외면' 'KNN 사외이사 경력 결격사유 논란' 등이 겹쳐 국민의당이 추천을 철회했다.
정치권 출신 인사의 잇단 방통위원 선임은 여야가 방통위를 정치 대결의 장으로 여긴다는 점이 드러난다. 종편 재승인과 방송 규제를 둘러싸고 여야 논리에 따라 갈등이 이어지는 상황이기에 '전문성'보다는 '정치력'과 '전투력'을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의 경우 출범 직후엔 방통위와 방통심의위에 언론학자 출신 위원장을 선임했으나 이후엔 전문성 못지않게 '전투력'도 고려한 인사가 선임됐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였다. 당에서 공천에 탈락한 인사를 방통위 등 기관에 선임해 '나눠먹기식 인선' 측면도 있다.
2018년 당시 방통위 고위 관계자는 “실제론 여야 위원 간 협의가 잘 되는 편인데 국회에 찾아가선 그 당 추천 위원 때문에 업무하기 힘들 정도라고 하소연을 한다”며 “상대편 위원이 티타임 땐 그렇게까지 강하게 얘기하지는 않는데 회의 때는 당에서 지켜보기에 입장을 성명문처럼 강하게 얘기하는 면이 있다”고 했다.
정치권 나눠먹기식 방통위, 적절한가
2007년 방통위 출범을 앞두고 관련 논의를 할 당시 국회 회의록을 보면 참여정부가 제시한 방통위 구성 초안은 현재와 달랐다. 초안은 국가청렴위원회, 공직자윤리위원회, 선거방송위원회 등의 선임 방식을 차용해 방통위 상임위원을 각계각층의 추천을 받아 구성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선거방송심의위원회는 여야 정당뿐 아니라 방송사 협회, 시민단체, 언론단체, 법조계, 중앙선관위 등에서 위원을 추천한다.
본질은 '정치문화'라는 지적도 있다. 심석태 교수는 “제도를 바꾸거나 규정을 강화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며 “정치 문화와 공직 책무의 문제로 봐야 한다”고 했다. 심석태 교수는 “여야가 합리적 범위 안에 있는 사람들로 추천한다는 의식이 존재해야 한다”며 “정치권이 기본적인 책임 윤리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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