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악마는 디테일에 있다?…QIPO 조항에 쏠리는 눈

김성훈 2023. 4. 12.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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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O 연기에…QIPO 조항 관심
기간·공모가 두가지 테마 핵심
미루자니 언제 가능한가 고민
강행하자니 수익률 저하 고심
QIPO 변화냐, 관망이냐 관건
[이데일리 김성훈 기자] ‘공모주 대어’로 꼽히던 기업들이 잇따라 상장을 연기하면서 기업과 재무적투자자(FI)간 맺은 QIPO(퀄리파이드 IPO·Qualified IPO) 조항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마뜩잖은 증시 분위기가 이어지면서 일정 수익률과 상장 시기를 보장해야 하는 QIPO 조항을 언제쯤 지킬 수 있을지 기약이 없어서다. 기업과 투자자간 협의를 통해 기존 조항에 변화의 여지가 생겨날지도 관건이다.
‘공모주 대어’로 꼽히던 기업들이 잇따라 상장을 연기하면서 기업과 재무적투자자(FI)간 맺은 QIPO(퀄리파이드 IPO·Qualified IPO) 조항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데일리 DB)
공짜 투자는 없다…악마가 살고 있는 QIPO 디테일

11일 자본시장에 따르면 연초부터 상장 연기가 잇따르고 있다. 국내 유일 흑자 이커머스(전자상거래) 기업인 오아시스와 지난해 매출 2조원을 달성한 컬리, 케이뱅크 등 상장 대어로 꼽히던 기업들이 상장 연기를 결정했다. 지난해로 범위를 넓히면 현대엔지니어링, SK쉴더스, CJ올리브영 등 13개 기업의 상장 철회를 하며 이른바 공모 대형주의 부진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메머드급 규모로 상장을 노리던 기업들의 성장 구간에는 재무적투자자(FI)들이 촘촘하게 자리하고 있다. 상장 전 투자금을 회수하며 수익금을 챙긴 투자자도 있지만, IPO 임박 시점까지 엑시트(자금회수) 하지 않은 FI들도 적지 않다. 상장 이후의 수익실현을 보고 프리IPO(상장 전 투자유치) 형태로 투자에 나선 곳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프리IPO나 상장 이후의 수익 실현 투자에 핵심 요소로 꼽히는 게 QIPO 조항이다. 쉽게 말해 IPO를 하긴 하되, 투자자들이 요구한 일정 수준을 만족하는 IPO를 진행해야 한다는 얘기다.

업계 설명을 종합하면 QIPO 조항은 크게 두 가지 테마로 나뉜다. 핵심은 ‘기간’과 ‘공모가’(또는 상장후 시가총액)다. 기간은 언제까지 IPO를 하겠다는 약속이다. 예컨대 2023년 1월 A사로부터 투자유치를 받은 B사가 A 운용사 측에 ‘2027년 1월까지는 무조건 상장한다’는 약속을 하는 것이다.

공모가는 최종 수익률에 근거해 IPO때 일정 수준의 공모가를 넘어야 한다는 내용을 QIPO 조항에 넣는다. 과거에는 두 조건 중 하나만 요구하는 투자자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투자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두 조건을 QIPO 조항에 모두 삽입하고 있다.

회사 잠재력을 보고 투자자들이 자금을 대겠다는 것은 기업 입장에서는 환영할 일이다. 유동성이 폭발하고 IPO마다 수조원의 공모금이 몰리던 시기에는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요즘처럼 시장 분위기가 움츠려 있을 때는 얘기가 다르다. QIPO 조항은 협의가 아닌 투자자들의 재가를 얻어야 하는 ‘동의권’이어서 투자자 동의 없이는 사측은 상장에 나설 수 없다.
[그래픽=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주춤한 공모시장…변화냐, 관망이냐 고민

반대의 경우도 있다. 투자자들이 상장을 원함에도 사측이 하지 않을 때를 대비해 ‘드래그얼롱’(drag along·동반매각청구권)을 조항에 요구하는 투자자도 있다. 드래그얼롱이란 투자가가 보유 지분을 팔 때 대주주(또는 창업주) 지분까지 끌어와 다른 투자자에게 매도할 수 있도록 하는 권리를 말한다.

드래그얼롱 같은 극단적인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부가 조항을 마련하기도 한다. 가령, 일정 수준 이상의 매출이나 에비타(EBITDA·상각전 영업이익)를 기록하면 성장세를 증명한 것으로 간주하고 조항 발동을 무효화 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자본시장에 따르면 투자처별 편차는 있지만, 투자자들은 통상 투자 단가 기준 약 8~10% 수준의 IRR(내부수익률)을 구해놓고 QIPO 조항을 짜는 게 일반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얼마나 공격적(또는 보수적)으로 투자를 하느냐에 따라 IRR 기준도 변할 수 있다.

최근 기업과 투자자간 QIPO 조항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기업가치가 뚝뚝 떨어지며 예상 수준의 상장 규모가 형성되지 않고 있어서다. 공모가를 맞추자니 시장 상황이 녹록지 않고, 그렇다고 무기한 연장하면 상호 확약한 상장 시기를 자칫 넘길 수 있어서다.

한 PEF 업계 관계자는 “상장이 가능한 데 기업 측이 상장을 미루는 것도 아니고, 투자자 측도 IPO 실패가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 강행을 압박하기도 모호한 상황이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자 기존에 논의한 QIPO 조항에 변화가 생기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기존에 합의한 기준대로 상장이 어렵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변화의 여지를 줄 수 있다는 얘기다.

컬리는 지난 2021년 2500억원을 프리IPO 형태로 투자한 앵커PE와 추가 투자 유치를 논의 중이다. 2021년 당시 인정받은 기업가치(4조원)보다 낮은 기업가치로 투자 유치를 논의하며 사실상 디밸류에이션(기업가치 하락)을 예고한 상태다.

시장에서는 양측에서 어떤 논의가 이뤄질지는 모르지만, 디밸류에이션을 전제로 QIPO 조항에도 변화의 여지가 생길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한 자본시장 관계자는 “기존 투자 단가를 고집할 필요가 없다면 추가 투자 유치 과정에서 세부 조항 재논의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며 “떨어진 단가만큼 탄력성을 부여해서 기존 기준보다 상장에 유리한 구조로 논의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반면 당장의 조정보다는 일단 지켜보겠다는 견해도 여전하다. 상장을 앞둔 한 기업에 투자한 PEF 업계 관계자는 “QIPO 조항을 건드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다 시장 분위기에 따라 충분히 예상 수준 상장이 가능하다고 보는 견해도 있어 섣부른 조정은 하지 않을 예정이다”고 말했다.

김성훈 (sk4he@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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