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누구의 봄이냐고/황수정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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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쪽같은 봄볕 아래 갸륵한 것이 봄풀이다.
꽃이 때를 잊었든 말든 제 시간을 지켜 봄풀들은 돋았다.
볕바른 언덕에 연둣빛으로 진격해 올라오니 흐뭇해서 '봄풀'.
봄을 데려오고 데려가는 것은 마음껏 소란한 꽃들만의 일이 아닌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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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쪽같은 봄볕 아래 갸륵한 것이 봄풀이다. 꽃들이 차례도 없이 뒤죽박죽 피었다 두서없이 퇴장하니 더 그렇다. 꽃이 때를 잊었든 말든 제 시간을 지켜 봄풀들은 돋았다. 흙을 밀어 올리는 풀씨의 일이 꽃이 피는 그까짓 일보다 의젓하다면서.
오래전 작가 이태준은 우리말 ‘바다’가 세상의 모든 언어 가운데 바다를 표현하기에 으뜸이라 했다. 두 글자가 경탄음 ‘아’를 안고 있어 “바다” 하면 하늘까지 덮을 듯하다고. 내게는 ‘풀’만큼 풀답게 느껴지는 언어가 없다. 풀, 풀 하면 푸릇푸릇 풀물 냄새가 풀풀 풀려 나온다.
풀이 제 이름을 얻는 짧은 시간이 이즈막이다. 볕바른 언덕에 연둣빛으로 진격해 올라오니 흐뭇해서 ‘봄풀’. 여름비에 우북하게 뻗대면 그때부터는 잡초. 가을볕에 어수선하게 시들면 그저 덤불.
가장 낮게 제때를 지키는 절정의 한 시절. 봄을 데려오고 데려가는 것은 마음껏 소란한 꽃들만의 일이 아닌 것을. 자랑한 적 없는 풀밭에도 물어봐야지. 이 봄은 누구의 봄이냐고.
황수정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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