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보건의 무더기 전역…‘농촌 의료공백’ 결국 현실화
40% 넘는 146명 3월말 만료
신규 배치는 이달 중순쯤 가능
한명이 보건지소 4~5곳 담당
환자 불편가중 생명위협 우려
“공공의료 확충 방안 강구해야”
“지금 농촌엔 사람이 아파도 진료해줄 의사(공중보건의, 이하 공보의)가 없어요. 많은 공보의가 전역했는데도 후임 공보의가 오지 않고 있어서입니다. 이런 사태는 충분히 예견됐는데도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는 뭐 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네요.”
복무 기간이 만료된 공보의들이 3월말∼4월초 무더기로 전역하면서 우려했던 농촌지역 의료 공백이 현실화하고 있다. 공보의란 병역의무 대신 3년 동안 농어촌 보건소·보건지소 등 보건의료 취약지역에서 환자를 돌보는 의사를 말한다.
공보의는 복무 기간이 만료되면 후임이 바로 배치되기 때문에 공백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다르다. 2020년 코로나19가 한창 확산할 당시, 현장 의료인력이 부족해 3주 정도 빨리 공보의가 배치됐다. 일찍 복무를 시작한 만큼 전역일도 당겨져 약 3주간의 공백을 피할 수 없게 된 상황이다.
이런 문제는 언론 등을 통해 진작에 제기됐지만 정부 차원에서 별다른 대책을 세우지 못한 채 공보의 전역 시기를 맞게 된 것.
전북도에 따르면 전주시 등 지역 14개 시·군에 배치된 공보의는 총 356명이었다. 이 가운데 40%가량인 146명이 3월말 전역했다. 하지만 후임 공보의 신규 배치는 이달 중순에나 이뤄질 예정이다.
이런 상황은 전국 모든 지역이 마찬가지다. 충북도는 전체 공보의 225명 중 126명이 3월26일부터 이달초까지 복무 기간 만료로 전역했다. 경남도는 도내 18개 시·군에 배치된 공보의 398명 가운데 42.7%인 170명이 이 기간 전역했다. 경기도도 공보의 227명 가운데 5일까지 전역한 인원이 107명(47.1%)에 달했다.
이러다보니 환자들의 불편이 커지고 있다. 공보의가 많이 전역한 지역에서는 순회진료, 단축진료, 주 1일 진료 등으로 진료를 크게 축소했기 때문이다. 특히 의료 인프라가 부족한 농어촌지역은 공보의 의존도가 더 높기 때문에 환자 불편을 넘어 자칫 생명까지 위협받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북 부안군은 대다수 보건지소가 현재 1주일에 하루만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복무하던 공보의가 전역했지만 후임이 아직 오지 않아서다. 이런 사실을 모른 채 보건지소를 찾았다 허탕을 친 한 어르신은 “그동안 아프면 가까운 보건지소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었는데 이제 시내로 나가야 하니 갑갑하다”고 말했다.
경남지역의 한 보건소 관계자는 “공보의가 절반 넘게 전역하면서 생긴 공백을 남은 공보의가 순회진료를 하며 메우고는 있지만 역부족”이라며 “신규 공보의 배치 때까지 지역별로 주 1회 정도만 진료할 수 있는 여건이라 주민들이 많이 불편할 것”이라고 말했다.
보건지소에서 근무하는 한 공보의는 “안 그래도 공보의 수가 부족한데 전역에 따른 공백까지 겹쳐 한명이 4∼5곳의 보건지소를 맡아야 하는 상황”이라며 “순회하는 동안 지소는 빌 수밖에 없고, 고령의 어르신들이 멀리 있는 병원까지 나가야 해 걱정이 많으실 것”이라고 우려했다.
강원도에서 가장 많은 공보의가 전역한 평창군도 남은 공보의가 순회진료를 시작했다. 또 보건의료원은 내과나 외과 봉직의가 공보의가 맡았던 과를 대체하고 있다. 군 관계자는 “최대한 진료 공백이 없도록 대처하고 있지만 응급실이나 치과는 대체가 어려워 4명이 하던 응급업무를 2명이 맡으며 공보의가 재배치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22명의 공보의 가운데 8명이 전역한 경기 여주시는 “일부 지역은 오전과 오후로 나눠 순회진료를 하고 있지만 공보의가 새로 배치되는 이달 중순까지 특별한 대책은 없다”고 밝혔다. 충북 진천군의 한 보건지소 관계자는 “공보의 전역으로 한의과와 치과 진료가 중단되는 바람에 어르신이 헛걸음하는 때도 생긴다”고 말했다.
진료를 전면 중단한 보건지소도 있다. 공보의 3명 전원이 최근 전역한 제주 애월보건지소는 출입구에 휴진 관련 안내문을 부착하고 사실상 개점휴업에 돌입했다.
애월보건지소 관계자는 “정기적으로 약을 처방받는 민원인 등에게 휴진 계획을 알려 미리 약을 받아 가도록 했다”며 “공보의 부재 기간 급한 진료가 필요하면 일반 병원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다. 이달 중순에 신규로 배치되는 공보의 수가 예전보다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가 9일 발표한 ‘2023년도 신규 공보의 배치현황’에 따르면 올해 전역한 공보의는 1290명에 달했으나 신규로 배치되는 인원은 1106명에 불과하다. 일선 보건소나 보건지소 등이 필요로 하는 공보의 가운데 184명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더구나 의과 공보의는 729명이 전역했는데 신규 배치는 450명에 그쳐 전체 복무 인원은 279명이나 줄어든다. 의과 공보의는 치과나 한의과 공보의보다 농어촌 등지의 의료 체계에서 역할이 더 크다. 이에 농어촌지역 의료 공백이 갈수록 심화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사실 공보의 감소는 어제오늘 문제가 아니다. 2010년 5179명이던 공보의는 지난해 3383명에 머물렀다. 의학전문대학원 제도 시행에 따른 군필자 증가, 의대생 중 여성 비율 증가, 긴 복무 기간과 상대적으로 낮은 급여 등이 공보의가 감소하는 이유로 꼽힌다.
김원이 더불어민주당 의원(전남 목포)은 “공보의 부족으로 가장 피해를 보는 국민은 지방 의료 취약지와 주민으로, 충분히 예상되는 문제인데도 정부는 그동안 손을 놓고 있었다”며 “공공의료 확충을 위한 지역의사제, 공공의대 설립 등 의료 불균형을 해결할 적극적인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국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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