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밥상] 회치고 부치고 끓여도…하얗게 살아 입에 감도는 ‘봄’

지유리 2023. 4. 12.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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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거제 사람은 병아리를 먹어야 '진짜 봄이 왔구나' 합니데이."

병아리는 거제 사람들 사이에서 '사백어(死白魚)'를 가리킨다.

사백어를 맛볼 수 있는 건 봄이 시작되는 3월초에서 4월말, 연안에서 강가로 올라와 산란을 끝냈을 무렵이다.

사백어 맛집으로 꼽히는 몇몇 식당은 바쁘게 울리는 전화벨 소리로 봄이 왔음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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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밥상] (27) 경남 거제 ‘사백어’
실치같은 생김새…‘병아리’라고 불리기도
3월초~4월말 제철…회·탕·전으로 요리
맑은 물에 살아 비리지 않고 식감 재미나
펄떡이는 사백어를 향긋한 미나리에다 당근·양파·오이와 함께 양념장에 비벼 먹는 사백어회. 재밌는 식감과 새콤달콤한 양념장 맛이 조화롭다. 거제=지영철 프리랜서 기자

“경남 거제 사람은 병아리를 먹어야 ‘진짜 봄이 왔구나’ 합니데이.”

병아리는 거제 사람들 사이에서 ‘사백어(死白魚)’를 가리킨다. 실치처럼 생긴 사백어는 다 자라도 몸길이가 5㎝ 안팎인 작은 생선으로 살아 있을 땐 투명하고 죽으면 몸이 흰색으로 변한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사백어를 맛볼 수 있는 건 봄이 시작되는 3월초에서 4월말, 연안에서 강가로 올라와 산란을 끝냈을 무렵이다.

사백어 맛집으로 꼽히는 몇몇 식당은 바쁘게 울리는 전화벨 소리로 봄이 왔음을 안다. ‘사백어 개시’라고 쓰인 현수막을 걸기도 전에 봄맞이 음식을 찾는 예약 전화가 줄을 잇는다. 길어야 두달 남짓 먹을 수 있는 계절식이라 그 맛을 아는 사람은 안달이 난다. 나오는 시기가 워낙 짧고 갈수록 어획량이 감소하는 탓에 미식가라면 이맘때 부산을 떨 수밖에 없다.

사백어탕을 한술 뜨면 사백어 살이 보드랍게 부서지며 고소한 맛이 입안에 확 퍼진다. 거제=지영철 프리랜서 기자
밀가루 반죽에 사백어와 쪽파를 잔뜩 넣어 부친 전은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는 음식이다. 거제=지영철 프리랜서 기자

사백어는 나는 곳도 많지 않다. 남부면·동부면 정도에서만 잡힌다. 거제 사람 가운데서도 존재를 모르는 이가 꽤 많다. 30년 넘게 동부면에서 명화식당을 운영하는 정금숙 사장(55)도 거제 토박이지만 결혼하고서야 사백어를 처음 봤다. 시어머니가 내준 음식을 먹고 너무 맛있어 “식당을 열어야겠다”며 무릎을 탁 쳤단다.

어느 식당을 가건 사백어는 주로 회·탕·전으로 나온다. 식당 주인에게, 옆 테이블 손님에게, 지나가는 주민에게 뭐가 가장 맛있느냐고 물으면 답은 똑같을 테다. “귀하디 귀한 사백어, 무얼 택할지 고민하지 말고 코스로 먹어라.”

거제 사람들에게 봄맞이 음식으로 통하는 사백어. 3~4월에만 나온다. 거제=지영철 프리랜서 기자

첫 순서는 회다. 사백어회는 입보다 눈으로 먼저 먹는다. 잘게 썬 미나리·오이·당근 위에 사백어를 통째로 얹은 모습이 퍽 화려하다. 알록달록한 채소 위에 투명한 생선이 산 채로 꿈틀거리는 것만으로도 신기한데 백미가 아직 남았다. 먹기 직전 새콤달콤한 고추장 양념장을 두르면 사백어가 몸부림치며 튀어 오른다. 굳이 젓가락을 대지 않고도 양념장이 고루 비벼져 먹기 좋은 상태가 될 정도다. 징그럽다고 내빼면 금물. 움직임이 완전히 잦아들기 전 숟가락으로 푹 떠 입에 넣어야 한다. 비릴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깨끗한 물에서 사는 생선이라 비리지 않다. 특별한 풍미가 있다기보다는 입안을 휘젓는 재미난 식감을 느낄 수 있다. 만물이 생동하는 봄맛이랄까. 회는 되도록 빨리 먹는 편이 좋다. 시간이 지나면 사백어 몸에서 점액질이 나온다. 맛을 크게 해치진 않지만 미끄덩거려 그리 유쾌하진 않다.

다음으로 전과 탕이 나온다. 각각 쪽파전과 달걀국에 사백어만 더한 모양새다. 새하얗게 익은 사백어는 날것일 때보다 더 생경하다. 낯선 생김새에 멈칫하기도 잠시, 건더기를 잔뜩 올려 탕을 떠먹으면 생선살이 고슬고슬 부드럽게 씹히며 고소하다. 뒤이어 퍼지는 향긋한 쪽파 향은 입맛을 돋운다. 거제에서 ‘잔파’라고 부르는 쪽파는 지역특산물로 역시 3∼4월이 제철이다. 사백어와 쪽파로 차린 밥상 위에 봄기운이 완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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