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읽기] 동물원의 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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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이 한창인 경기 과천에는 미술관도 있고 동물원도 있다.
미술관과 동물원은 닮았다.
심지어 동물원의 동물은 그림 속의 정물처럼 거의 움직이지도 않는다.
지면에 소개된 작품은 동물원 우리에 있는 하마인데, 그림 안에 넣었으니 이중으로 갇힌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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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이 한창인 경기 과천에는 미술관도 있고 동물원도 있다. 미술관과 동물원은 닮았다. 미술관에 가면 네모난 그림틀 안에 꽃이나 인물이 그려져 있고, 관람자는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그것들을 감상한다. 마찬가지로 동물원에서는 우리 안에 있는 동물을 일정한 거리의 철책 바깥에서 구경한다. 그림 속 해바라기와 우리 안 여우의 공통점은 갇히고 소외됐는 것이다. 심지어 동물원의 동물은 그림 속의 정물처럼 거의 움직이지도 않는다. 동물이 즐겁게 뛰어노는 모습을 기대한 아이들은 아빠에게 투정 부린다. “저건 왜 가만히 있어요? 낮잠 자요? 그만 자라고 하면 안돼요?”
몇주 전 동물원의 얼룩말 한마리가 담장을 넘어 인간이 사는 동네에 나타난 일이 있었다. 낯선 거리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 채 혼란스러워하던 얼룩말은 결국, 감방을 탈출한 죄수처럼 경찰에게 포획돼 동물원으로 돌아갔다. 이 얼룩말로 인해 사람들은 새삼 동물원이라는 곳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1960년대 중반에 동물원 속의 동물을 소재로 여러 점의 그림을 그린 화가가 있었는데, 프랑스의 질 아이요(Gilles Aillaud, 1928~2005년)다. 지면에 소개된 작품은 동물원 우리에 있는 하마인데, 그림 안에 넣었으니 이중으로 갇힌 셈이다. 갈색의 미끄덩한 덩어리는 언뜻 바위처럼 보이기도 하고, 커다랗게 확대한 벌레 같기도 하다. 하마는 조련사가 뿌리는 물로 시원하게 샤워하는 중이다. 서식지를 떠나 이곳에 입주하면서부터 하마는 삶 자체가 통째로 구경거리로 바뀌었다. 다른 종의 동물을 마주칠 일도 없고 상상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그러니 시멘트 바닥과 타일 욕조에 적응하며, 먹이를 구하는 것부터 몸을 씻는 일까지 전적으로 자신을 돌보는 관리자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아이요는 1960년대에 신구상회화 그룹에서 활동했다. 이는 스쳐 지나치기 쉬운 평화로운 일상에 숨어 있는 냉혹한 의미를 담담한 어조로 파헤치는 화가들의 모임이었다. 화가들은 구조주의 철학자 롤랑 바르트의 책을 읽고 토론했으며, 현대사회 속 인간이 처한 현실을 미술로 표현하고자 했다. 아이요의 작품도 ‘동물 그림’이라는 표면 배후에 현기증 나는 현실이 잠복하고 있어 메시지가 결코 가볍지 않다.
사고와 행동이 틀에 얽매여 지내며, 서로 소통하지 못하는 경우가 잦은 우리 인간은 동물원의 동물과 다를 바 없을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만들어놓거나 스스로 짜놓은, 보이지 않는 감옥에 갇혀 사는 것이다. 아이요의 그림을 보며, 인간도 영화 <트루먼 쇼>의 주인공처럼 꽉 막힌 스튜디오에서 지내면서, 만물의 영장이라고 착각하는 것 아닐까 의심해본다.
이주은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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