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 위인들은 외로울 때…
내가 그분의 산방(山房)을 처음 찾은 건, 문을 연 지 4년도 훨씬 더 지나서였습니다. 월정사 인근에 ‘우허당(愚虛堂)’이라는 작은 거처를 마련하였다는 사실 자체를, 여러 사람이 내게 물어와서 겨우 알게 되었습니다. ‘당신이 모르면 누가 아나?’ 하는 핀잔을 많이 들었는데, 적어도 남들에게는 그분과의 관계에서 내가 그렇게 인식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무심했다’고 밖에 할 수 없는 처신이었지요.
첫걸음에서 내가 가장 관심을 가졌던 건, 택호(宅號)라 할 수 있는 ‘우허당’이었습니다. 스스로 ‘어리석다’고 한 건 겸손이라 쳐도, ‘비웠다’는 건 무슨 뜻일까? 절간 근처라는 생각과 더불어, ‘속세를 떠난 초월적 삶’을 연상했습니다. 그러나, 그건 필부의 어리석은 소견이었습니다. 막상 뵈었을 때, 그분의 말씀은 시종(始終)이 나라 걱정이었고, 강원도의 현상 과제로 수미(首尾)가 일관됐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이 비운 것은, 무기(無己)이며 무공(無功)이고 무명(無名)이었던 것이지요. 그러니 비운 만큼 커진 공간에, 한 차원 더 높은 화두, 한층 더 많은 담론이 채워질 수밖에요. 틈틈이, 그러나 쉼 없이 정리해 놓은 적지 않은 양의 메모를 보고, 진심으로 탄복했고 감개했습니다.
그런 마음공부가 그리워, 얼마 전 다시 산방을 찾았더랬습니다. 3월이라지만, 오대산 기슭은 여전히 쌀쌀했습니다. 우허당 주변의 마른 풀들도, 봄기운을 느끼기엔 아직 이른 감이 있어 보였습니다. 그럼에도 햇살은 빛났고 주인장의 안색이 화창해서, 방문객의 마음도 충분히 편안하여, 짧지만 아주 유쾌한 시간을 보내고 왔습니다.
우허당에서 기별이 있은 건 그후 며칠이 지나서였는데, 전화 문자로 전해 온 ‘고운일점(孤雲一點)’ 네 글자가 전부였습니다. 깊은 사려 없이, “의미로 보면 ‘일점고운(一點孤雲)’이 더 어울리겠습니다”라고 답신을 보냈습니다. 그분은 ‘고운’일지언정 ‘일점’은 아니라는 믿음에서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문득 그분의 외로움에 대해 생각이 닿은 끝에,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말도 떠올랐고, ‘군계일학(群鷄一鶴)’도 사실 외롭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강희제는 늙은 대신들의 ‘물러가 쉬기를 청하는 상주(上奏)’를 볼 때마다 ‘너희는 물러가 쉴 곳이라도 있지만, 짐은 물러가 쉴 곳이 어디 있는가’라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하지요. 예수도 십자가에 매달려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거두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모두 외로움의 발로요 간구가 아니겠어요?
실로, ‘지인(至人)’이자 ‘신인(神人)’이요 ‘성인(聖人)’의 외로움이며, 그런 분들은 그 외로움 속에서, 그 외로움을 딛고 위대한 역사를 창조했습니다. “주문왕(周文王)은 갇힌 몸으로 ‘주역(周易)’을 풀이하였고, 중니(仲尼)는 곤란한 처지를 당하여 ‘춘추(春秋)’를 지었습니다. 굴원(屈原)은 쫓겨가서 ‘이소(離騷)’를 썼고, 좌구명(左丘明)은 실명한 뒤에 ‘국어(國語)’를 지었습니다.
손자(孫子)는 발이 잘리고서 병법을 썼으며, 여불위(呂不韋)가 촉(蜀)에 유배되었지만 ‘여람(呂覽)’을 세상에 남겼습니다. 한비(韓非)는 진(秦)나라에 갇혀서 ‘고분(孤憤)’, ‘세난(說難)’을 저술했으며 시경의 300편 시도 대개 성현께서 발분(發憤)하여 지은 것들입니다”(‘한서(漢書)’, ‘사마천이 임안에게 보내는 편지’ 중). 궁형(宮刑)의 치욕 속에서 살아남은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 사마천은, ‘사기(史記)’를 남겨 중국 역사의 태두(泰斗)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멀리 볼 것도 없지요. 정약용이 남긴 그 엄청난 양의 위대한 저술은 대부분 유배지에서 쓰인 것들입니다.
배경이야 물론 다르지만, 우허당 그분이 느끼는 외로움도 역사 속의 선현들처럼 승화되리라는 것을, 나는 조금도 의심치 않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어리석다’고 한 그분의 참뜻도, 우리네가 짐작하는 수준의 의도가 아닌 게 분명합니다, 아마도 일찍이 못다 이룬 장쾌한 꿈과 소망들에 대한 회한이 아닐까요? 그 맥락이 김진태 특별자치도정, 윤석열 정부를 통해 이어지고 풀어지기를 바란다면 너무 순진한 발상일까요? 이공우 (사)강원도사회문화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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