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4월로 돌아오다

최경진 2023. 4. 1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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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한다.

추위를 뚫고 4월은 결국 달려왔고 꽃이라는 호재로 지역경제가 활기를 되찾고 있다고 다른 기사는 말했다.

'바람이 되어 살아낼게'라는 제목으로 생존자 중 처음으로 에세이를 출간한 유 씨는 다시 4월로 돌아와 삶을 지속하고 있다.

나 또한 유 씨처럼 4월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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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경진 편집부 차장

고백한다. 사표 썼다. 배경엔 수많은 이유가 있었지만, 궁극적으로는 놀고 싶었다.

지난 주말판에는 삼척 맹방 유채꽃 축제 기사가 실렸다. 안개처럼 핀 유채꽃 위로 떨어지는 벚꽃잎이 장관을 이뤘다. 추위를 뚫고 4월은 결국 달려왔고 꽃이라는 호재로 지역경제가 활기를 되찾고 있다고 다른 기사는 말했다.

올봄, 따뜻했다가도 기온이 떨어지길 반복하며 날씨가 변덕이었다. 그날 내가 뭘 하고 있었는지는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나지만 그날의 날씨는 도통 생각나지 않는다. 그날 나는 집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몸이 떨려 이불을 뒤집어쓴 채 뉴스를 봤다. 오전부터 오후까지 같은 자세로, 한 손으로는 휴대폰으로 놓쳤을지 모를 속보를 찾아보며 세월호가 바닷속으로 서서히 잠겨가는 모습을 봤다. 그 커다란 배가 기울었다가 뒤집히고 결국 형체 없이 사라지는 동안 지켜볼 수밖에 없는 인간의 무력함에 몸을 떨었다. 몸과 마음을 압도하는 두렵고 슬픈 장면 속에서 하늘이 어땠는지 기억나지 않는 것이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세월호에 탔던 아이들은 지금 몇 살쯤 됐을까 세어본다. 세월호 참사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유가영 씨는 이제 스물여섯이 됐다고 한다. ‘바람이 되어 살아낼게’라는 제목으로 생존자 중 처음으로 에세이를 출간한 유 씨는 다시 4월로 돌아와 삶을 지속하고 있다. 유 씨는 책을 통해 이태원 참사 당시 세월호 참사 때처럼 ‘놀러 갔다 사고 난 게 자랑이냐’는 비방을 보고 참담함을 느꼈다고 밝혔다.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 수학여행과 축제에서 일어난 사고. 두 사고에 관해 ‘놀러 갔다가 난 사고’라는 본질을 벗어난 이야기가 여전히 들린다. 놀러 갔건 일하러 갔건 피해자의 사유가 초점인 사고는 아니지만, 설사 놀러 갔기 때문에 사고를 당했다고 할지언정 그것이 지탄받아야 할 일일까. 이제는 중장년인 나도 음식을 보면 먹고 싶고, 의자를 보면 앉고 싶고 봄이면 꽃밭으로 놀러 가고 싶은데 아이들의 놀고 싶어 하는 마음이 어떤 사고를 당하더라도 모든 책임을 져야 할 만큼 위험천만하거나 비방과 모욕을 감당할 만큼 잘못된 일인가. 노는 것이 그토록 무거운 일이라면, 봄이니 꽃이 가득한 강원도로 놀러 오라는 말도 편히 할 수 없을 것이다.

나 또한 유 씨처럼 4월로 돌아왔다. 동료들에게 짐을 지울 뻔했던 사표 대소동을 후회하지만, 놀고 싶었던 내 마음을 숨기고 싶진 않다. 사표 뒤 다 내려놓고 놀고 싶어질 만큼 열심이었던 나의 지난 회사생활이 서있다. 창창한 아이들의 ‘놀고 싶은 마음’에 죄인 듯 유서인 듯 짐을 지우는 대신, 입시와 취업 준비에 치여 어떤 세대보다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음을 바라봐주자. 아이들에게 놀 틈이란, 잠깐만 자기 자신을 되찾는 순간일지 모른다. 4월의 꽃처럼.

깊은 마음으로 꽃을 보자. 1년을 치열하게 달려온 꽃들이 모두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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