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목마다 내걸린 정당 현수막, 버려진 뒤엔 '안 터지는' 모래주머니로 [우리가 몰랐던 쓰레記]

곽주현 2023. 4. 12.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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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대선 현수막 1111톤의 90%는 '매립·소각'
튼튼한 재질로 마대·모래주머니 활용도 높아
지자체와 기업이 제작 단계부터 재활용 고민해야
편집자주
우리는 하루에 약 1㎏에 달하는 쓰레기를 버립니다. 분리배출을 잘해야 한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지만, 쓰레기통에 넣는다고 쓰레기가 영원히 사라지는 건 아니죠.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고 버리는 폐기물은 어떤 경로로 처리되고, 또 어떻게 재활용될까요. 쓰레기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지난달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 횡단보도에 각 정당들의 현수막이 게시돼 있다. 지난해 6월 옥외광고물법 개정안 시행으로 정당의 정책이나 정치적 현안에 대해 표시하는 현수막은 별도 허가나 신고 없이 15일간 게시할 수 있게 됐지만 현수막이 우후죽순 설치돼 도시 미관 훼손과 안전사고 우려 등이 제기돼왔다. 이에 서울시는 관련법 개정 건의와 함께 정당 현수막 설치·관리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자치구의 현수막 정비를 지원키로 했다. 뉴시스

출근길, 지하철역 앞 사거리에 마주 본 채 달린 여야 정당들의 '느낌표' 가득한 현수막을 보면 왠지 어수선합니다. 지난주엔 다른 주제로 현수막 여러 개가 서로 으르렁댔던 것 같은데, 그새 현수막 내용이 싹 바뀌었네요. 취재를 위해 기자회견장에 도착하니 강조하고 싶은 문구와 날짜, 장소 등의 정보가 가득 적힌 현수막이 배경으로 걸려 있습니다. 주요 인사들이 손을 맞잡고 '인증샷'을 찍을 때도 현수막이 빠질 순 없죠. 버스를 타고 지나면서 본 건물 전면엔 블록버스터 영화 홍보 포스터가 덮여 있고, 가로수 사이사이엔 불법 부동산 광고 현수막이 덜렁 매달려 있네요.

현수막은 대중에 효과적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매체이지만, 보통 오래 걸려 있지 않는 데다 일회용으로 사용되고 버려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엄청난 양의 쓰레기를 만들어냅니다. 선거철마다 거리에 내걸리는 현수막 무게만 수천 톤에 달한다고 하니, '현수막 공해'라는 말이 이해할 만도 합니다. 심지어 지난해 말부터는 개정 옥외광고물법이 시행되면서 정당에서 내거는 현수막의 경우 광고 현수막과 달리 장소나 수, 규격에 제한 없이 어디에나 최장 15일간 붙일 수 있게 됐습니다. 자연스레 버려지는 현수막 양이 크게 늘었죠. 그렇다면 이 현수막들, 철거된 다음엔 어디로 가는 걸까요? 폐현수막의 마지막 여정을 따라가 봅시다.


지난해 서울서 버려진 현수막만 약 40만 장... 소각·매립 시 환경오염 물질 내뱉는다

이달 4일 오전 부산 해운대해수욕장 인근에 2030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 홍보 현수막이 부착돼 있다. 부산=연합뉴스

폐현수막은 기본적으로 산업폐기물로 처리됩니다. 소각이나 매립이 원칙이라는 뜻이죠. 현수막 재질은 단가에 따라 다양한데, 가장 많이 사용되는 건 폴리에스테르 재질이나 특수 코팅 처리를 한 텐트 천입니다. 사용처나 용도, 지역에 따라 나일론, 실크, 메시(mesh) 등 다양한 소재가 활용되기도 합니다. 문제는 이런 소재엔 대부분 플라스틱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소각될 때 다이옥신과 같은 오염물질이 나온다는 겁니다. 땅에 묻으면 50년 이상 썩지 않고, 썩을 때도 오염원을 배출합니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서울 지역에서 수거된 폐현수막만 39만3,863장에 달했습니다. 환경부 기준에 따라 현수막 한 장을 0.6㎏으로 환산하면 서울에서 버려진 폐현수막 무게만 1년에 236톤이 넘습니다. 각 기업에서 제작한 현수막이나 불법 현수막 등 공식 집계에 포함되지 않는 것까지 합치면 실제 양은 훨씬 많습니다. 특히 폐현수막은 선거 때 집중 발생하는데,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대선 기간 전국에서 발생한 폐현수막은 무게만 1,111톤에 달했습니다. 서울시 조사에 따르면 대선 관련 현수막 중 90%는 매립·소각됐습니다. 엄청난 양의 오염물질이 배출됐다는 뜻이죠.

최근엔 기후변화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면서 지자체별로 현수막 재활용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서울시는 지난해 수거한 폐현수막 중 절반가량(47.8%)만 소각 또는 매립 처리하고, 나머지 절반은 재활용하거나 앞으로의 쓰임을 위해 보관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비해 '증명된' 현수막 재활용 방식이 다양해진 덕분입니다.


기름 흡수하고 다시 쓸 수 있는 마대, 찢어지지 않는 모래주머니로

6일 찾은 경기 파주시 '녹색발전소'에 놓여 있는 폐현수막 마대와 폐현수막들. '기본형'인 5X0.9m 현수막 하나로 마대 두 장을 만들 수 있다. 파주=곽주현 기자

폐현수막으로 만든 물건 중 가장 유명한 건 장바구니와 에코백이지만, 실제 가장 쓰임이 많은 건 '마대'입니다. 가방의 경우 디자인과 위생이 중요하기 때문에 길거리에 붙어 있던 현수막에 대한 거부감이 크지만, 마대는 낙엽이나 먼지 청소를 할 때, 쓰레기 분리수거를 할 때, 공장에서 부품 분류를 할 때 쓰이기 때문에 누구의 어떤 공약이 적혀 있든 크게 상관이 없거든요. 지속적인 수요가 있기 때문에 재활용 사업성도 그나마 좋은 편입니다.

2004년부터 10년여간 폐현수막 재활용 사업을 해온 김순철 녹색발전소 대표는 "폐현수막 마대는 일반 플라스틱 마대에 비해 훨씬 튼튼한 데다 물이나 기름 흡수율이 좋고 몇 번이고 다시 쓸 수 있어 오히려 경제적"이라며 "실제로 현재 서울 강서구에 있는 자동차 정비공장의 85%는 폐현수막으로 만든 마대를 쓰고 있을 정도로 인기"라고 말했습니다.

김순철 녹색발전소 대표가 폐현수막으로 만든 10㎏짜리 모래주머니를 들고 있다. 널리 사용되는 플라스틱 마대에 비해 잘 터지지 않아 수해방지용은 물론 군용으로 사용하기도 좋다. 파주=곽주현 기자

폐현수막은 워낙 튼튼한 재질 덕분에 모래주머니로도 활용도가 '만점'입니다. 수해 방지를 위해 사용하는 모래주머니의 경우 터지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한데, 일부러 칼로 찢지 않는 한 폐현수막은 여간해선 찢어지지 않습니다. 김 대표는 "회사 입장에선 많이 사주면 좋지만, 한 번 구매한 지자체가 몇 년째 '멀쩡하다'면서 추가 구매를 안 하는 걸 보면 오히려 뿌듯하다"며 너털웃음을 지었습니다.

재활용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각 지자체와 기업의 '버리는 노력'도 중요합니다. 보통 현수막에는 '세트'처럼 나무 막대기와 노끈이 함께 매달려 있는데, 이를 모두 분리해야 재활용이 쉽거든요. 서울 영등포구의 경우 노인 일자리 창출 사업 일환으로 수거한 현수막의 노끈과 막대기를 분리해 처리하고, 재활용품 모으는 곳에 폐현수막 마대를 여러 번 재사용하고 있습니다.

가장 좋은 환경보호 방법은 현수막 생산량 자체를 줄이는 겁니다. 그게 불가능하다면 재활용이 지금보다 더 원활히 이뤄져야겠죠. 결국 중요한 건 눈앞의 비용 절감보다 환경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식의 전환입니다. 김 대표는 "현수막 제작 단계부터 소재, 수거, 분리, 재활용 업체 인계, 완성품 활용 방안까지 염두에 두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현재는 현수막 재질이나 크기가 제각각인데, 이를 재활용하기 좋게 규격화하는 방안도 고민해 볼 만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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