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락 끊고 위협하고 맞받아치고… 남북, 퇴로 없는 강대강 대치
통신선 두절, 개성공단 무단사용 경고
北 4월 고강도 도발 맞서 기선제압용
"최근 외교 악재 덮으려는 의도" 해석
사진 속 김정은, 평택미군기지 가리켜
남북한 '치킨 게임'(자동차가 서로 마주 보고 돌진하며 핸들을 돌리면 지는 게임)에 통일부가 이례적으로 뛰어들었다. 대화의 창구가 압박의 선봉에 선 것이다. 전문가들은 11일 권영세 통일부 장관이 10년 만에 대북 규탄 성명을 발표한 것을 두고 "정부가 강대강 대결 구도에서 밀릴 생각이 없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퇴로를 막은 건 북한도 마찬가지여서 한반도의 긴장고조는 당분간 불가피해 보인다.
권 장관은 500자 분량 성명에 유감, 경고, 촉구, 규탄 등 다양한 표현으로 최근 북한의 행태를 강도높게 비판했다. 특히 북한이 지난 7일 이후 사흘째(업무일 기준)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정기통화에 응하지 않는 것에 대해 "일방적이고 무책임하다"고 지적했다. 북한은 이날까지 닷새간 동·서해 군통신선 연락에도 응하지 않았다. 돌발상황 발생 시 소통할 채널이 없어진 것이다.
아울러 권 장관은 북한이 개성공단의 우리 기업 설비를 무단 사용하는 것과 관련 "법적조치를 포함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통신선과 개성공단 모두 북한의 일방적 조치에 끌려가지 않겠다는 정부의 단호함이 엿보인다.
이처럼 통일부가 '북한 때리기'에 앞장서며 선제적 경고메시지를 보내는 효과도 노렸다. 4월 예상되는 북한의 고강도 도발에 맞서 기선을 제압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김일성 생일(태양절·15일)과 한미정상회담(26일)을 전후해 북한이 군사정찰위성을 쏘아 올리거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정상각도(30~45도)로 발사할 가능성이 높다. 7차 핵실험은 북한이 언제든 꺼낼 수 있는 카드다. 이에 권 장관은 "북한의 긴장 고조 행위는 한반도 전체뿐 아니라 북한을 위해서도 좋지 않다"면서 "김정은 위원장이 현명한 선택을 하길 바라는 차원에서 성명을 발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권 장관은 성명에서 통일부와 연관된 개성공단과 남북공동연락사무소 문제만 거론했다. 핵·미사일을 포함해 북한의 무력도발에 대해서는 정면으로 치받지 않았다. 김정은 정권을 규탄하면서도 북한과의 대치전선을 확장하는 건 꺼렸다는 분석이 나오는 대목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우리 정부의 대북 메시지가 여러 창구로 나가는 것보다 책임자인 통일부 장관이 명징하고 일관되게 말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권 장관 "개성공단 문제 법적 책임 취할 것"…현실 가능성은 낮아
어쨌든 정부가 대북 압박수위를 높이면서 한반도 대결구도가 한층 심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다만 일각에서는 최근 잇단 외교 악재와 연관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미국 정보기관의 대통령실 도·감청 문제가 불거졌고 강제동원 해법을 다룬 한일정상회담의 여진이 계속되자 대북 강경책을 통해 이슈를 바꾸려고 하는 건 아닌지 의심된다"고 말했다.
반대로, 권 장관의 강 경발언이 '말잔치'로 끝날 수도 있다. 개성공단 설비를 제멋대로 사용하는 북한에 실제 책임을 물리는 건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이에 권 장관 본인도 "(남북 간 투자보장 합의서 등) 의무를 지키지 않았을 때 문제 제기할 규정은 있다"면서도 "(우리 측이 개성공단에 들어갈 수 없어) 현장 접근성이 떨어지는 터라 구체적 책임 확정에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北 대남 투쟁 노선 유지 예상 "한동안 대화 가능성 희박"
이 같은 우리 정부의 경고와 압박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도발 마이웨이'를 고수할 전망이다. 이날 성명에 앞서 북한은 남측을 노골적으로 위협하는 사진을 공개하며 적대감을 드러냈다. 조선중앙통신에 실린 사진을 보면, 김 위원장이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대한민국의 서쪽 지역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모습이 담겼다. 위치상 주한미군기지인 경기 평택 캠프 험프리스 주변으로 보인다. 한미동맹과 군사력의 핵심부를 겨냥한 셈이다. 다른 군 간부의 지휘봉은 계룡대가 포함된 충청지역을 향하고 있다. 육해공군 3군본부가 있는 곳이다.
홍 실장은 “김 위원장이 지난해 말 전원회의에서 대남·대적 노선을 공식적으로 채택했기에 한동안 대화 가능성은 매우 낮다”면서 “북미간 극적인 관계 개선의 여지가 생기지 않는 한 화해 무드 조성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대근 기자 dynamic@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대통령실 "靑 용산으로 옮겨서 도·감청 취약? 터무니 없어"
- 정채율, 오늘(11일) 사망…"연기에 진심이었던 배우"
- "우리 딸 멀미해요" 관 잡은 손… 스쿨존 음주사고 배승아양 영결식
- 목줄 안한 대형견, 여성 무차별 공격…견주 "300 만원 이상 못 줘"
- 박근혜 칩거 1년 만에 첫 공개행보...정치 재개 신호탄?
- ‘지옥철’ 김포골드라인서 승객 2명 호흡곤란 쓰러져
- "낭만은 사라지고 폭격 맞은 듯 뼈대만"…산불이 휩쓴 경포 펜션단지
- [단독] "소송 망쳐놓고 골프" 변호사 때문에 친족 사기 엄단 못 한 가족의 눈물
- '전두환 손자' 우원씨 "광주 다시 가서 실제 피해 보신 분들 얘기 들을 것"
- 다시 금요일로... OTT가 영화 개봉일까지 바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