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발에 망토 두르고... 이정재가 '간달프' 된 사연
"포스 이즈..." '스타워즈' 시리즈 예고편서 파격 등장
이민 역사 다룬 '파친코' '미나리' 넘어 미국 '건국 신화' 중심부로
"K가 특별한 가치"... 'JYP DNA' 걸그룹에 나홍진 감독 제작사 계약 美서>
배우 이정재는 '스타워즈' 시리즈에 광선검을 쥐고 등장한다. 미국 음악시장 간판인 테일러 스위프트가 둥지를 튼 리퍼블릭레코드는 K팝 시스템을 접목한 여성그룹 제작에 나섰다. 앤젤리나 졸리 등 할리우드 스타들이 속한 미국 에이전시 UTA는 나홍진 감독의 제작사 포즈드필름과 계약했다.
①한국 배우가 할리우드 내 '모범적 이민자 서사'의 틀을 깼고 ②미국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은 콘텐츠 제작에 한국적 문화 유전자(DNA)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요즘 미국 콘텐츠 시장에 보이는 과거와 다른 한류의 양상들이다. 이는 한국적 특징을 일컫는 이른바 K가 미국에서 프리미엄으로 작용해 이뤄진 변화란 분석이 나온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등에서의 K콘텐츠의 잇따른 흥행과 북미 콘텐츠 산업의 혁신 정체로 한류의 위상이 부쩍 높아진 데 따른 영향이다.
장발의 이정재 등장에 '광선검' 환호
지난 7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엑셀센터 '스타워즈' 행사장의 스크린엔 이정재가 흰색 망토를 입고 장발을 한 모습이 큼지막하게 떴다. 이날 처음 공개된 '스타워즈' 새 시리즈 '디 애콜라이트' 예고 영상에서 이정재는 뒤를 돌아보며 "더 포스(능력) 이즈..." 라고 말한다. 그는 판타지 영화 '반지의 제왕' 시리즈 속 간달프 같았다.
'디 애콜라이트'에서 이정재가 맡은 역은 제다이 마스터. 칼의 버튼을 누르면 약 1m의 광선이 날로 변하는 라이트 세이버로 싸우는 우주의 기사 중 지도자로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주요 캐릭터다. 이정재는 "영어가 제1언어가 아니라 만약 '스타워즈' 시리즈가 아니었다면 이 작품을 못 한다고 (출연 제안을) 거절했을 것 같다"며 "하지만 누가 '스타워즈'를 거절할 수 있겠나. 더군다나 라이트 세이버를 쓸 수 있다고 하는데"라고 웃으며 말했다. '스타워즈' 시리즈의 가족이 된 이정재를 외국 팬들은 광선검을 흔들며 환호로 반겼다.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2021)과 그룹 방탄소년단의 성공 이후 최근 미국 자본으로 만들어진 드라마 '파친코'(2022·애플TV플러스)와 영화 '미나리'(2021·A24)에서 윤여정, 김민하 등 한국 배우들은 주로 착한 이민자로만 그려졌다. 주변부 서사였다는 점과 대조적으로 미국의 건국 신화에 비유되는 '스타워즈' 시리즈에 이정재가 출연하는 것은 한국 배우가 미국 대중문화 중심부로 더 깊숙이 파고든 사례로 평가받는다.
아시아계 미국인이 아닌 한국 배우 쓴 이유
한국 배우의 '스타워즈' 시리즈 등장은 한국 문화에 대한 평가가 높아지면서 이뤄진 변동으로 해석된다. 샘 리처드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 사회학과 교수는 본지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루카스필름이 아시아계 미국 배우가 아닌 한국 배우(이정재)를 캐스팅한 건 K가 특별한 가치로 작용한다는 뜻"이라며 "K가 K콘텐츠를 넘어 세계 시장 곳곳에 침투하는 현상은 매우 큰 변화"라고 풀이했다. 그레이스 카오 예일대 사회학과 교수도 이메일 인터뷰에서 "이정재의 '스타워즈' 시리즈 등장은 그간 한국 등 아시아계 배우들이 미국 대중문화 콘텐츠에서 모범적 소수자로 다뤄진, 보이지 않은 장벽을 허문 것"이라며 "이런 변화는 미국 시청자들에게 할리우드 밖 세상이 얼마나 다양한지를 상기시켜준다"고 평가했다. 디즈니는 이정재가 출연하는 '디 애콜라이트'를 OTT(디즈니플러스)에서 2024년 공개한다. 한국 배우들의 미국 진출을 돕는 한 현지 에이전시 관계자는 "디즈니가 이정재를 '스타워즈' 시리즈에 섭외한 건 OTT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한국 배우로 아시아와 남미 등 해외 시장을 개척하려는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자본 앞세운 일본 중국과 달라... 새로운 표준 된 K
넷플릭스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구독자 중 60% 이상이 한국 콘텐츠를 봤다. K의 영향력이 커지자 UTA는 '곡성'의 나홍진 감독뿐 아니라 그의 회사 포즈드필름과도 계약을 맺었다. 한국 감독 제작사의 미국 진출 첫 사례다. 김형호 영화 시장 분석가는 "1990년대 일본과 2000년대 중국이 현지 대기업의 막대한 자본을 앞세워 미국 영화 시장에 진출했다면 한국은 창작자들 개인 역량으로 미국 시장에 진입한 게 차별적"이라며 "나 감독 회사와 UTA의 계약은 미국 엔터테인먼트 기업이 K콘텐츠를 단발이 아닌 장기적으로 유통하려는 행보"라고 봤다.
미국 음악 회사들은 K를 혁신과 성장의 원동력으로 삼고 있다. 리퍼블릭레코드는 JYP엔터테인먼트와 손잡고 미국과 캐나다를 기반으로 영어권 국가에서 활동할 걸그룹 데뷔 프로젝트 A2K(America to Korea)를 진행 중이다. 한국에서 데뷔한 가수가 미국에 진출하는 게 아니라 미국에서 오디션으로 뽑은 연습생들이 JYP에서 K팝 스타일로 훈련을 받고 해외에서 활동하는 콘셉트다. A2K 프로젝트는 이르면 5월 유튜브 등을 통해 영상이 공개돼 베일을 벗는다. 하이브는 미국 게펜레코드와 K팝 DNA를 갖춘 보이그룹 제작을 추진하고 있다. 김상화 음악평론가는 "일각에서 공장형 제작이라 비판받던 K팝 시스템이 미국 산업 현장에선 새로운 표준으로 떠오른 것"이라고 해석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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