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진화 거듭하는 보이스피싱… 이번엔 '코인+전화사기' 결합 4.5억 뜯어가

장수현 2023. 4. 12.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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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 범죄 조직들이 범정부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수사망에 걸려들지 않기 위해 신종 수법을 총동원하고 있다.

이번엔 사기범들이 가상화폐(코인)에 손을 뻗친 정황이 포착됐다.

11일 한국일보 취재에 따르면, A씨는 지난달 말 'D코인'과 관련해 4억5,000만 원의 보이스피싱 피해를 당했다며 일당 6명을 경찰에 고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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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 손실, 코인 만회 꼬드겨 정보 빼내
대출, 현금화 수수료 등 명목 돈 가로채
코인 미숙 초보자 타깃 "경고체계 필요"
게티이미지뱅크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 범죄 조직들이 범정부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수사망에 걸려들지 않기 위해 신종 수법을 총동원하고 있다. 최근 서울 강남 학원가에서 발생한 ‘마약 음료’ 사건도 마약과 전화사기가 결합한 새로운 유형의 범죄로 밝혀졌다. 이번엔 사기범들이 가상화폐(코인)에 손을 뻗친 정황이 포착됐다. 주식시장 약세로 손실 규모가 커지자 코인을 보상 미끼로 내걸고 피해자들을 꾄 것이다.


가상화폐 현금화 빌미, 사기 횟수만 37번

11일 한국일보 취재에 따르면, A씨는 지난달 말 ‘D코인’과 관련해 4억5,000만 원의 보이스피싱 피해를 당했다며 일당 6명을 경찰에 고소했다. 같은 코인으로 비슷한 피해를 봤다는 사건을 여럿 접수한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피고소인 일부를 사기와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 등으로 입건해 수사 중이다.

고소장에 따르면 사기 일당은 코인거래소 L사 직원을 사칭해 일명 ‘주식리딩방(유사투자자문서비스)’에서 손해를 본 A씨에게 접근했다. 이들은 손실을 D코인으로 만회해 주겠다고 제안했다. 단 조건이 있었다. 코인을 받기 위해선 가상지갑을 만들어야 하니 피해자 신분증과 계좌번호를 달라고 요구해 받아 갔다. A씨가 지갑에 접속하자 D코인 약 9,000만 원어치가 지급됐다.

본격 사기 행각은 이때부터였다. 코인을 현금화하려면 별도 비용이 필요한데 자신들이 지원하겠다며 문자 인증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다. 계좌로 3,320만 원이 들어왔지만 실은 피해자 명의로 대출받은 돈이었다. 대출 사실에 놀란 피해자에게는 “코인을 매도하면 대출 내역이 사라진다” “코인을 팔아 얻는 이익이 더 크다”고 안심시켰다.

대출금도 코인 환급에 수수료가 들어 송금하라고 시켰다. 이후에도 “환급 수수료가 올랐다” “현금화 비용이 또 들어간다” 등 온갖 명목으로 돈을 뜯어냈다. 피해자가 의심하면 수수료 명칭 대신 ‘가스 피(GAS fee)’ 등 전문용어를 써가며 현혹했다. 가스 피는 가상화폐 이더리움 전송 수수료로 D코인과는 무관하다. 결국 피해자는 한 번의 현금화 없이 37회에 걸쳐 4억5,195만 원을 갈취당했다.


관심 많지만 투자 어려운 코인, 신종 피싱 활용

코인 미끼 신종 보이스피싱 범죄 수법. 그래픽=강준구 기자

일당은 코인에 관심은 많지만 기본 원리를 모르는 초보자를 표적 삼았다. 이들이 피해자에게 코인 투자를 권유하면서 이른바 ‘포모 증후군(FOMOㆍ흐름을 놓치거나 소외되는 것에 대한 불안 증상)’을 악용했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A씨 법률 대리를 담당하는 법무법인 대건의 한상준 변호사는 “지난해 10월부터 D코인 피해를 봤다고 호소하는 유사 사례만 10건이 넘고, 피해 규모는 총 30억 원 정도”라며 “대다수 피해자가 코인 투자에 문외한이었다”고 설명했다.

경찰도 거의 대포통장과 대포폰이 사용된 점으로 미뤄 사기 의도가 뚜렷하다고 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피해 금액이 적게는 1,000만 원에서 최대 수억 원까지 다양했다”며 “계좌 명의인들을 추적 중”이라고 말했다.

가상화폐를 수단으로 활용했지만, 엄연한 보이스피싱 범주에 속하는 만큼 피해 사실을 깨달았을 땐 돌이킬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점조직으로 움직이고 주로 해외에 거점을 둬 검거가 쉽지 않은 피싱 조직의 특성 탓이다. 설령 일당을 붙잡아도 피해액은 여러 단계를 거쳐 세탁을 끝낸 뒤라 복구가 어렵다. 서준배 경찰대 행정학과 교수는 “기존 전화사기 시나리오가 많이 알려져 경각심이 높아지자 신종 수법이 속속 등장하는 것”이라며 “정부 기관이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아 선제적으로 경고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장수현 기자 jangsue@hankookilbo.com
나광현 기자 nam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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