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한국무용 르네상스 이끈 무용가 김백봉 별세...큰 별 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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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무용의 르네상스를 이끈 김백봉(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무용가가 11일 오후 노환으로 별세했다.
"김백봉을 제외하고 한국무용을 논할 수 없고 특히 군무(群舞)는 그의 영향으로 이뤄졌다"(송범 전 국립무용단장)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20세기 한국무용의 개척자가 최승희, 조택원, 한성준이라면 한국무용 르네상스의 정점에 김백봉이 있다는 평이 과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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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춤’ ‘화관무’ 등 한국 신무용 창시자
현재 한국무용을 이끄는 수많은 제자 양성
고인은 한국을 대표하는 무용 ‘부채춤’과 ‘화관무’의 창시자로서 한국 무용 르네상스의 정점을 이룩한 무용가이다. “김백봉을 제외하고 한국무용을 논할 수 없고 특히 군무(群舞)는 그의 영향으로 이뤄졌다”(송범 전 국립무용단장)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20세기 한국무용의 개척자가 최승희, 조택원, 한성준이라면 한국무용 르네상스의 정점에 김백봉이 있다는 평이 과하지 않다.
고인은 1927년 평안남도 평양 출신이다. 1943년 최승희 무용단원으로서 일본·만주·중국·동남아시아 각국을 순회 공연했다. 최승희는 고전 무용의 현대화를 이끈 시초로 한국 무용계의 전설로 꼽히는 인물이다. 김백봉은 1944년 스승 최승희의 남편인 안막의 동생 안제승(1928~1998)과 결혼했다. 1946년에는 최승희와 함께 평양에서 최승희 무용단 제1무용수겸 부소장, 상임안무가로 활동했다. 6·25전쟁이 일어나자 남편과 함께 월남하여 1953년 서울에서 김백봉 무용연구소를 설립했다.
김백봉은 1965년부터 경희대학교 무용학과 교수로 재직해 1992년 정년퇴임을 했다. 1995년에는 김백봉춤 보전회가 결성됐다. 이후 한국종합예술학교 무용원 명예교수, 경희대학교 무용학과 명예교수, 제5대 서울시무용단 단장을 역임했다.
1953년 서울시 문화상, 캄보디아 문화훈장, 대한미국예술원상, 1981년 보관문화훈장등을 수상하였고, 1988년 서울올림픽 식전행사공로로 대통령상을 수상하였고, 1999년에는 ‘20세기를 빛낸 예술인’으로 선정되었다. 2005년 은관문화훈장, 2015년 제2회 이데일리문화대상 공로상, 2016년 대한민국을 빛낸 최고의 명인상, 2017년 제 58회 3.1문화상 예술상을 수상했다.
유족으로는 아들 안병철(경희청한의원 원장), 무용가 안병주(경희대학교 무용학부장), 안나경((사)김백봉춤연구회 이사장)와 사위 장석의 씨가 있다. 손녀인 안귀호(춤이음 부대표)도 현재 김백봉 무용가의 계보를 이어 활발한 무용활동을 펼치고 있다.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특1호실에 차려졌다. 발인은 오는 14일이다.
고규대 (enter@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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