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 침체 시대 ‘덕후 고객’으로 극복하라

전미영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 2023. 4. 12.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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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으고, 즐기고, 공유하는 덕후들
이성적 ‘충성 고객’과 달리 ‘무조건적’
‘내가 키운 브랜드’ 자부심 심어주고
즐길 거리와 성장 기회 제공해야
‘덕후’ 고객들은 오픈런도 마다하지 않고 무조건적 열광과 지지를 보낸다. 지난해 한 백화점에서 열린 뉴진스 팝업스토어 ‘오픈런’을 위해 대기 중인 팬들. 동아일보DB
“냉동만두를 먹으면 비비고만두인지 고향만두인지 한 번에 알아챌 수 있어요.”

냉동만두 덕후의 말이다. 떡볶이덕후, 향수덕후, 자동차덕후, 야구덕후 등 요즘 들어 부쩍 스스로 덕후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덕후는 원래 일본어 ‘오타쿠’를 우리말 형태로 발음한 표현인데 표준어는 아니다. 일본어 오타쿠가 ‘애니메이션 같은 특정 서브컬처를 전문가 수준으로 탐닉하는 사람’을 뜻한다면, 한국어 덕후는 ‘다양한 영역에서 준전문가가 되어 시간과 돈, 열정을 쏟아붓는 사람’ 정도로 정의된다. 괴짜 기질이 다분한 오타쿠에 비해 덕후는 좀 더 일상적이고 현실적이다.

덕후의 등장은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과거에도 늘 특별한 사람들은 존재했다. 그렇다면 요즘 덕후와 예전 덕후는 어떤 점이 다를까. 우선 요즘 덕후들은 무언가를 수집할 때 콘셉트를 가지고 과몰입한다. 해리 포터 시리즈의 덕후라고 가정해보자. 해리 포터 지팡이, 마법사 모자, 망토 등 관련 굿즈를 열심히 수집할 것이다. 재미있는 점은 단지 수집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내가 진짜 ‘헤르미온느’가 되었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이 굿즈를 가지고 공부를 하면, 나는 해리 포터 등장인물 중 가장 똑똑한 헤르미온느이기 때문에 공부가 잘된다고 한다.

또 다른 특징은 혼자 덕질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요즘 덕후들은 각종 미디어를 기반으로 서로의 덕질을 응원한다. 좋아하는 최애 아이돌이 생일을 맞았다면, 덕후끼리 카페 하나를 통째로 빌려 이박삼일 동안 생일파티를 연다. 각자 콘서트를 쫓아다니며 찍은 사진을 현상해 카페를 꾸미고, 그간 수집한 인터뷰 영상을 편집해 튼다. 물론 아이돌은 이 파티에 등장하지 않지만 우리끼리 즐거우면 그만이다.

마지막으로 요즘 덕후는 덕질의 대상이 무엇이든 개의치 않는다. 껌 종이를 수집하거나, 사람들이 잘 모르는 희귀 영상을 수집하는 사람도 있다. 소득과도 크게 상관없다. 달리기 덕후가 될 수도 있고 꽃 가꾸기 덕후가 될 수도 있다. 덕질로 큰돈을 벌겠다는 야심이 있는 것도 아니다. 남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덕질을 하기보다는, 덕질하는 순간 느끼는 작은 행복이면 충분한 보상이 된다.

덕후는 경기와 상관없이 본인의 소비를 지속한다. 살인적인 물가 상승에 보통 사람들은 지출을 줄이느라 여념이 없는데, 덕후들은 강건하다. 행복과 취향을 충족하는 제품이라면 밤새 줄을 서는 오픈런도 마다하지 않는다. 덕후의 활약에 가장 뜨겁게 반응하는 대상은 다름 아닌 ‘기업’이다. 만약 덕후들이 열광하는 대상이 특정 캐릭터나 업종이 아니라 우리 브랜드라면 어떨까. 생각만 해도 흐뭇할 일이다. 덕후고객은 충성고객과 다르다. 제품과 서비스를 실제로 이용한 뒤 만족스러워 재구매가 발생할 때 고객의 충성도가 높다고 한다. 충성고객은 철저히 이성적이다. 반면, 덕후고객은 좋아하는 대상을 ‘판단’하지 않는다. 무조건 지지하고 응원한다.

어떻게 해야 덕후고객을 만들 수 있을까. 먼저 고객들이 ‘저 브랜드는 내가 키웠다’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유명 아이돌의 찐팬들은 ‘저 아이돌이 무명일 때부터 대성할 것을 미리 알아봤다’는 말을 많이 한다. 브랜드도 마찬가지다. 비록 현재는 유명하지 않더라도 나의 높은 안목으로 말미암아 향후 인기 브랜드로 성장할 가능성을 미리 알아보는 안목을 뽐낼 수 있어야 한다.

품질 이외에 사람들이 우리 브랜드에 관심을 가질 만한 요소를 끊임없이 던져주는 것도 중요하다. 예컨대 요즘 향수덕후는 다양한 브랜드의 향수를 수집하는 것을 넘어, 그 향수의 향을 만들어낸 조향사 덕질을 즐긴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 회사 대표님이든, 엔지니어든, 광고 모델이든, 팬들이 즐길 만한 이슈 거리를 지속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열정적 시니어 팬을 거느린 가수 임영웅. 동아일보DB
또한 덕질이 취미활동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 성장과 연결되면 좋다. 가수 임영웅 덕질을 하다가 카톡 보내는 법, 유튜브 보는 법을 배워서 기쁘다는 시니어들이 이에 해당된다. 기업도 얼마든지 활용 가능하다. 덕후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최애적금’이란 내가 좋아하는 덕질을 즐기기 위해 스스로 드는 적금이다. 좋아하는 야구 선수가 안타를 치면 5000원을, 홈런을 치면 1만 원을 적금에 넣는 식이다. 덕질도 하고 돈도 모을 수 있어 일석이조다. 몰입 대상을 탐구하며 나만의 행복 기준을 만들어가는 덕후 전성시대, 덕질 트렌드에서 경영의 지혜를 발견해야 한다.

전미영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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