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진의 돈과 세상] [118] 인조와 한국은행
조선 건국의 발단이 된 위화도 회군은 쿠데타였다. 쿠데타로 세운 조선에서 네 번 더 쿠데타가 있었다. 왕자의 난, 계유정난, 중종반정, 그리고 인조반정이다.
쿠데타 네 번 중 인조반정이 가장 잔인했다. 40여 명이 참수당하고, 200명 이상이 귀양 갔다. 유몽인은 일찌감치 관직의 뜻을 접고 전국을 여행하며 글 쓰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가 명나라 사정에 밝은 외교 전문가라서 ‘어쩐지 거북하다’는 이유로 처형당했다. 자식들까지 함께 죽임을 당했다. 당시 쿠데타 세력은 통제 불능이었다. 논공행상 끝에 기분이 상하면 반란(이괄의 난)을 일으키거나, 자기들끼리 물고 뜯었다. 어제의 동지를 제거할 때는 극악한 처형도 서슴지 않았다. 인조 자신이 그 처형을 지휘했다.
인(仁)이 부족했던 인조는, 명분에 집착해 외교와 내치 모두 실패했다. 기이하게도 화폐 문제에서는 명분보다 실용을 추구했다. 조선 초 발행한 조선통보는 액면 가치(1전)가 내재 가치(3.75그램)에 충실했다. 하지만 임진왜란 이후 재정이 고갈되자 정직한 화폐 발행이 중단되고, 시중에는 동전 품귀 현상이 나타났다. 민가에서 살았던 인조가 그 불편함을 잘 알았다. 그래서 물가 조절을 맡은 상평창(常平倉)에 화폐 주조를 명령했다. 내재 가치를 액면 가치보다 살짝 낮춘 법정화폐였다.
두 호란으로 화폐 주조가 또 멈췄다. 숙종이 화폐를 다시 발행하면서 무게를 더욱 낮추고 상평통보라는 새 이름을 붙였다. 하지만 사람들이 거부했다. 유통을 위해서 종로 상인들에게 무이자로 대출해야 했다.
액면 가치와 내재 가치가 다른 법정화폐의 시작은 인조가 했다. 인조는 왕이 되기 전에 능양군이라 했다. 1623년 4월 12일 능양군이 반정을 일으켰다. 그는 남대문 옆 민가(저경궁)에서 태어났다. 지금 그 자리에 물가를 관리하고 법정화폐를 발행하는 한국은행이 있다. 묘한 우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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