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만에 CD 누른 LP… 메탈리카도 LP 공장 샀다
‘21세기에 LP 공장을 산 80년대 인기 밴드’. 지난달 세계 음악계에선 1983년 데뷔한 전설적인 헤비메탈 밴드 메탈리카의 LP 공장 ‘퍼니스 레코드 프레싱’ 인수 소식이 화제였다. 가수가 자기 음반을 찍어낼 공장을 직접 사들인 사례가 전 세계적으로도 극히 드물었기 때문. 이들이 사들인 LP 공장은 2008년부터 메탈리카 음반 제작을 담당해 온 곳으로, 미국에서도 큰 규모로 꼽힌다. 미국 버지니아주 알렉산드리아의 공장에서 100여 명 직원이 하루 2만5000장씩 LP를 찍어낼 수 있다. 이 공장은 이달 중 7년 만에 발표되는 메탈리카 정규 11집 ‘72 Seasons’의 LP도 벌써 제작 중이다.
◇CD 누르고 화려하게 돌아온 LP 부흥
메탈리카는 왜 LP 공장을 직접 샀을까. 업계에선 “나날이 성장하는 LP 시장 전망에 대한 투자 심리가 컸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특히 “35년 만에 CD를 넘어선 LP 판매량이 메탈리카의 LP 공장 인수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미국음반산업협회(RIAA)가 올해 초 발표한 2022년 세계 음악 시장 규모 1위인 미국에서 LP 연간 판매량이 4100만장으로 1987년 이후 처음으로 CD의 연간 판매량(3300만장)을 앞섰다. 같은 해 수익 면에서도 LP가 12억 달러(약 1조5854억원), CD (약 6380억원)의 3배 가량을 벌어들였다.
수요 대비 공급이 부족한 LP 생산 현황도 메탈리카의 LP 공장 인수 결심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록 가수 잭 화이트도 세계 3대 음반사인 유니버설·소니·워너뮤직에 “직접 LP 공장을 설립해 전 세계 LP 생산량 부족 문제 해결에 동참하라”는 공개 권유 성명을 발표했다. 그는 2018년부터 고향인 미국 디트로이트주에 직접 LP 유통사인 ‘서드맨 레코즈’와 전용 LP 공장을 설립해 운영 중이다.
LP 수요는 특히 뉴트로 유행과 전체 음악 소비가 늘어난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더욱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으로 분석된다. RIAA에 따르면 LP 판매량은 2020년 전년 대비 46.2%, 2021년 51.4% 증가했지만, 2022년에는 고작 4.2% 증가하는 데 그쳤다. RIAA 측은 “수요 급감 문제일 수도 있긴 하지만, 공급 능력 부족일 가능성도 크다”고 했다.
◇MZ세대 중심으로 유행하는 ‘LP 소장’
LP 부흥으로 인한 생산 부족은 해외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국내에서도 가수가 직접 LP 공장 설립에 투자한 첫 사례가 생겼다. LP 유통사 화수분 최성철 대표는 “가수 이광조씨와 함께 하반기 중 한 해 30만장 물량을 소화할 수 있는 LP 공장을 설립한다”며 “이광조의 한정판 LP도 이 공장에서 제작할 것”이라고 했다. 최 대표는 특히 “이미 지난 연말마다 전 세계 대형 음반사가 주요 LP 공장들 주문량을 내년 하반기까지 선점한 상태”라며 “K팝 시장까지 LP 발매 수요는 점점 커지는데 공급은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LP 생산량은 가수들의 직접적인 수익과 차트 성적에도 직결될 수 있다. 지난해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앨범으로 꼽힌 팝가수 테일러 스위프트의 ‘미드나이츠’는 총 판매량 중 절반 이상(52%)이 LP(94만5000장) 형태였다. 메탈리카는 2016년 이후 새 음반을 발매하지 않았는데도 2022년 과거 발매한 음반들을 LP로 찍어내 38만7000장을 팔았고, 그해 미국에서 여섯째로 가장 많이 음반을 판 가수에 올랐다. 지난 1월에는 BTS의 미니 5집 ‘러브 유어셀프 승 허’가 빌보드 메인 음반 차트 ‘빌보드200′ 13위로 재진입했다. 이미 6년 전 나온 음반이지만, 같은 달 LP로 재발매하면서 판매량이 급증한 결과였다.
전문가들은 특히 이 같은 LP 호황이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닌 ‘소장하는 것’으로 여기는 20~30대 MZ세대의 주도로 계속 이어질 거라 전망한다. 루미네이트는 “지난해 미국 내 Z세대 청취자가 일반 음악 청취자보다 레코드판 구매 가능성이 더 높게 나타났다”며 “특히 LP 구매자들의 50%가 이를 틀 턴테이블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국내 음반 판매 업체 예스24에서도 LP 판매량이 전년 대비 13.8% 늘면서 3년 연속 증가세를 보였고, 구매자 중 2030 비율이 36.3%로 나타났다. 특히 지난해 가장 많이 팔린 LP 앨범은 최신 음악이 아닌 나얼의 데뷔 10주년을 기념해 LP로 재발매된 정규 1집 ‘Principle of my soul’이었다.
이런 젊은 층을 겨냥해 이들 사이 유행하는 ‘친환경’ 키워드를 적용한 새 형태의 LP들도 등장 중이다. 특히 블랙핑크 멤버 지수는 최근 솔로 음반을 스마트폰에 갖다 대면 음원을 재생할 수 있는 ‘태그 음반’이자 굳이 ‘LP 모양’ 버전으로 발매했고, 예약 판매 이틀 만에 100만장 넘게 팔렸다. 평론가 김작가씨는 “공급망만 마련되면 K팝 팬덤의 젊은 구매력까지 가세해 LP 소비량이 더욱 폭발적으로 늘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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