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전 특사단 호텔방 잠입한 국정원… 인니는 ‘감정’ 대신 ‘국익’ 택했다[기자수첩]
2011년 2월 16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1961호에 국가정보원 직원 3명이 잠입해 노트북을 만졌다. 이 방은 국산 고등 훈련기 T-50 수출 건과 관련해 우리 정부와 협상을 하러 온 인도네시아 특사단 숙소였다. 국정원 직원들은 방에 잠입한 지 6분 만에 호텔에 남아있던 인도네시아 측 인사와 맞닥뜨리자 노트북을 건네고 사라졌다.
당시 한국은 아랍에미리트(UAE)·싱가포르에 T-50을 수출하려 했으나 무산돼, 인도네시아에 공을 들이고 있었다. 러시아와 막판 경쟁도 벌였다. 이런 상황에서 국정원이 ‘T-50 수출’이란 압박감에 인도네시아 측 정보를 빼내려고 무리수를 둔 것이다. 이 일로 국정원에 대한 질타가 쏟아졌다. T-50 수출엔 빨간불이 켜졌다는 관측까지 나왔다.
그런데 인도네시아의 대응이 의외였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한국에 형식적인 유감 표명을 했을 뿐, 자국에선 ‘별일 아닌 오해’라고 적극 진화했다. 당시 특사단 관계자는 자국 신문에 “그 ‘손님’들은 자기 방인 2061호실 대신 1961호에 별생각 없이 들어갔다”고 했다. 해당 사건은 한국 정부와 무관하다는 취지였다.
인도네시아가 기분이 좋았을 리 없다. 한국 정보기관의 어설픈 첩보 활동 내막도 충분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인도네시아 정부는 여섯 번째로 큰 교역국인 한국과의 관계, 양국 정상의 친분 등을 고려해 ‘감정’을 최대한 자제했다. 그 후 몇 달 뒤 한국과 인도네시아는 T-50 16대(4억달러) 수출을 최종 계약했고, 경제 협력도 강화했다. 윈-윈 결과로 이어진 셈이다.
현재 미국이 동맹국들을 감청했다는 의혹과 관련, 한국은 2011년과 정반대 상황에 놓였다. 우리 정부는 유출 문건에 대해 “진상을 파악하겠다”면서도 “‘한미 정보 동맹’을 통해 양국의 신뢰와 협력 체계를 강화할 것”이라고 했다. 야당은 한미 정상 회담을 코앞에 두고 이런 일이 벌어지자 “주권 침해다” “미국에 항의하라”고 공세를 펼치고 있다. 따질 건 따져야 한다. 다만 ‘친구도 동맹도 없는’ 첩보전 일각이 드러난 것에 흥분하는 게 능사는 아니다. 차분한 대응으로 사태를 수습할 때 동맹은 더 튼튼해지고 더 큰 국익을 얻을 수도 있다는 것을 12년 전 인도네시아 특사단 사건이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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