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도 칼도 무뎌진 요즘 난 무사가 되기로 했다”
서울 광진구 ‘서점로티’ 앞에서 검을 휘두르는 사람을 만난다면, 놀라지 말자. 서점 주인인 소설가 이갑수(40)다. 서점에 가검(假劍) 두 자루를 걸어두고 검술을 연습한다. 20년 넘은 취미. 그는 자신을 ‘무사’라고 표현한다. “펜도 칼도 필요 없어진 세상에서 종이에 글을 쓰고, 칼을 휘두르는 거죠. 시대가 달라졌는데 아직도 예전의 무언가를 붙잡고 있는 건 아닐까 고민합니다.”
이갑수의 두 번째 소설집 ‘외계 문학 걸작선’(문학과지성사)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손에 쥐려는 시도들로 가득하다. 능력자면서 어딘가 모자란 인물들부터 그렇다. 우주와 외계 언어에 빠삭한 번역가는 자신의 감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표제작). 모든 단검을 피하는 능력자가 마지막 단검은 피하지 못한다(단편 ‘달인’). 정작 인물들은 자신의 결핍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데, 그 모습이 독자들에게 짠한 웃음을 유발한다.
2011년 등단해 블랙 유머처럼 재밌고 씁쓸한 작품을 써 왔다. 첫 소설집 ‘편협의 완성’부터 자주 등장하는 소재는 각종 수학·과학 공식. 작가는 “문학을 공부하는 과학도가 되고 싶다”고 했다. 소설의 개연성을 위해 여러 사고 실험을 하는 과정이 과학에서 규칙을 만드는 과정과 비슷하다는 설명이다.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제 나름대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겁니다. 물론 현실엔 공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지점이 있지만, 세상도 사람도 아는 만큼 보이니까요.” 다만 전공자는 아니며 문예창작학과 출신이다. 공식이 정확한지 따지기보다는 “이갑수가 또 지어냈구나 생각해 달라”고 했다.
우주·시간 여행 등 SF 소재를 가져온 단편도 다수다. 약간의 ‘반항심’이 섞인 작품들. 작가는 “(문단의) 선생님들이 무엇을 쓰면 싫어할까를 생각했다”고 했다. “지금은 분위기가 많이 바뀌긴 했지만, 공고한 순문학의 경계가 여전히 있어요. 다들 진지하게 ‘이것만이 문학이다’라고 생각하는데, 결국은 문학의 다양성을 넓히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요.”
작가는 “책이 안 팔려도 상관없다. 그런데 읽다가 재미없다고 책을 덮는다면 제일 슬플 것 같다”고 했다. 그가 소설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재미’다. “독자들이 끝까지 읽을 수 있는 작품을 쓰려고 합니다. 세상에 우울한 이야기뿐인데 소설까지 그래야 할까요. 제 책을 통해 독자들이 잠깐이라도 웃었으면 좋겠습니다.”
1년째 운영 중인 서점은 사실상 적자라고 한다. 1층은 서점, 지하는 글쓰기 교습소. 강의를 해 버는 돈으로 운영하는 구조다. ‘한 달에 30만원 정도는 책에 쓰는데, 차라리 서점을 차려야겠다’는 생각에 서점 문을 열었다. 그의 서점에 간다면 ‘외계 문학 걸작선’을 읽다가 내려놓지 않기를 권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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