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만 나면 훔친다, 공포의 LG 발야구
야구(野球)가 말 그대로 들판에서 던지고, 치고, 뛰는 게 본질이라면 올 시즌 프로야구 LG는 그 본질을 구현하고 있다. 11일까지 팀 순위 공동 2위(6승3패·승률 0.667)에 평균자책점 2위(2.78), 타율 1위(0.289), 도루는 단연 1위(18개)다. 2위(두산·9개)의 2배다. 현대 야구는 부상 위험 때문에 도루를 잘 시도하지 않는 추세다. 이종범(당시 해태)이 1994년 도루 84개로 1위(역대 최다)에 올랐던 때는 지난해 도루왕 박찬호(1995년생·KIA·42개)가 태어나기도 전이다. 팀 전체 도루 역시 10팀 체제에서 2016년(1058개)을 마지막으로 1000개를 넘지 않고 있다. 지난해 144경기에서 팀별로 따지면 KIA가 103도루를 기록, 가장 많았는데 경기당 0.7개였다. 그런데 LG는 올 들어 경기당 2개의 도루를 하고 있다. ‘염갈량’으로 통하는 염경엽 신임 감독이 시도하는 새로운 혁신이다. 그러나 과연 이 혁신이 궁극적인 성과(한국시리즈 우승)로 귀결될 수 있을까.
◇LG, 틈만 나면 뛴다
이번 시즌 LG 선수들은 틈만 나면 뛴다. ‘뛰어야 산다’는 절박함과 근성이 엿보인다. 주장 오지환이 네 번 달려 모두 성공, 도루 2위를 차지하고 있고, 도루에 한 번이라도 성공한 선수가 한 타순을 구성하는 수보다도 많은 10명에 이른다. 두 다리 멀쩡하면 일단 뛰고 보라는 식이다.
LG는 29차례 도루를 시도해 18번 훔쳤고, 11차례 덜미를 잡혔다. 성공률은 62.1%. 시도는 둘째로 많은 두산(14차례)의 2배가 넘고, 키움(6차례)의 5배에 가깝다. 타 팀들 사이에서 이제 LG의 ‘발야구’는 경계 대상이다.
지난 9일 잠실 삼성전. 6회말 2-1로 앞선 삼성은 무사 1루에 LG 문보경이 타석에 들어선 뒤 2볼-1스트라이크 상황에서 피치 아웃(pitch out·주자가 도루할 것에 대비하여 투수가 옆으로 빠지는 공을 의도적으로 던지는 것)을 감행했다. 당시 1루에 있던 김현수가 뛸 것으로 판단해 일부러 공을 뺀 것이다. 실제로 김현수는 뛰지 않았지만, 삼성이 LG의 도루를 얼마나 의식하고 있는지 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심리적으로 흔들린 삼성은 6회말에 1점 동점을 내주고 결국 2대3 끝내기 역전패를 당했다.
◇염경엽 감독, 자율 도루 강조
성공률(62.1%)만 놓고 보면 LG의 도루 성적이 뛰어난 건 아니다. 보통 야구에선 도루 성공률이 75%는 돼야 ‘남는 장사’로 여긴다. 또 도루 시도를 많이 할수록 선수들 체력 부담이 가중되고 부상 가능성도 치솟기 때문에 일종의 ‘도박’으로 취급하기도 한다. 그러나 염 감독의 생각은 다르다. 작전·주루 코치도 역임한 그는 ‘숫자’에만 집중하기보단 도루가 가져오는 연쇄적인 파급효과를 주목한다. 선수 본인의 판단하에 자유롭게 도루를 시도하는 자율성도 강조했다고 한다.
염 감독은 “우리가 도루를 하는 건 도루만을 위한 게 아니다. 상대 투수와 포수, 그리고 벤치 전체가 (도루 가능성에 대한) 준비를 해야 되는데, 그 과정에서 압박을 받고 실투나 실수가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며 “보통은 도루 성공률이 75%는 돼야 한다고 하지만, 65% 정도 성공률이라면 85% 이상에 버금가는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우린 전 선수가 자율적으로 뛰는 분위기”라며 “평소 선수들에게 본인은 물론이고 팀에도 (도루는) 도움이 된다는 정신을 심어주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그는 “LG의 팀 색깔엔 공격적인 타격, 공격적인 피칭, 공격적인 주루가 다 들어 있다”고 말했다. 다만 지난 5년간 시즌 도루 1위 팀이 한국시리즈 우승을 한 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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