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영원한 적도 우방도 없다
지난달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이 전적으로 외교 관계 복원을 선언했다. 2016년 외교 관계를 단절한 지 7년 만이다. 수니 이슬람 종주국인 사우디가 자국 내 유력한 시아파 성직자인 니므르 알니므르(Nimr al-Nimr)를 포함해 무려 47명의 시아파 성직자들을 처형하면서 갈등이 시작되었다.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과 수니파 종주국인 사우디 두 국가는 오랜 기간 늘 삐걱거려 왔다. 이후 이란의 일부 강경파 시아 무슬림들이 이란 주재 사우디 대사관을 두 차례 공격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이에 두 국가 간 국교 단절이 선언되었다. 사우디 입장에서는 이란이 예멘 후티 반군을 지원하고 중동 내 시아파 벨트의 세력을 과시한다는 점에서 이란을 강력히 견제하는 상황이었다. 이 여파는 이후 이란을 지원한다는 이유로 카타르와 다른 걸프 국가들 사이의 단교 사태로 번지게 되었다.
사우디와 이란의 관계 정상화 시도는 최근 몇년간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2021년 9월 살만 빈 압둘아지즈 사우디 국왕이 유엔총회에서 이란·사우디 양국 간 대화가 중동 평화 정책에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를 표명한 바 있다. 2021년 당시 사우디·이란 관계 개선의 중재자로서 이라크가 역할을 했는데, 당시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이란과 사우디 양국 대표단의 회담이 열렸다.
하지만 외교 복원을 선언할 때는 상황이 변했다. 이번 이란과 사우디의 외교 관계 복원 과정에서 주목할 점은 바로 중재자로서의 중국의 역할이다. 지난 3월10일 처음으로 양국 간 외교 관계 정상화를 발표하는 사진에서 그 존재감을 과시했다. 사우디 국가안보보좌관과 이란 최고국가안보회의 의장 사이에서 중국 외교수장인 왕이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의 존재가 중국의 역할과 위치를 명확하게 했다. 사우디는 중국과 러시아가 주도하는 경제·안보 협의체인 상하이협력기구에 대화 파트너로 가입하기로 했고, 사우디 국영석유기업 아람코가 중국에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하는 등 중국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이란 역시 지난달에 중국, 러시아와 함께 연합해상훈련을 진행하는 등 미국 주도의 국제 경제 제재를 중국과의 긴밀한 연대에 의지해 해결하려는 상황이다.
이란에 사우디와의 관계 회복은 곧 아랍에미리트연합, 바레인, 카타르 등 다른 걸프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을 의미한다. 지난 5일 이란은 8년 만에 주아랍에미리트 대사를 임명하고, 이러한 이란과 사우디의 화해 분위기는 곧 예멘 내전의 종식을 예견하는 평화협상까지 끌어냈다. 한편 이란과 사우디, 그리고 중국의 외교 행보를 바라보는 미국과 이스라엘은 불편한 심기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양국의 외교 복원을 이슬람 종파 간 화해라고 볼 수 있을까? 또한 이 평화와 화해 모드는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갑작스러운 사우디·이란 간 외교 관계 복원 사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는 나에게 한 이란 지식인은 “아직까지 서로 믿을 수 없을 것 같은데?”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번 사례는 국제 외교에 있어 영원한 적도 영원한 우방도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미·중관계까지 복잡하게 얽힌 중동 내 새로운 외교 전략 관계들이 어떻게 재편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구기연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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