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월회의 행로난] 당장의 쓸모와 ‘쓸모없음’의 관계
순우곤은 중국 전국시대 ‘골계’, 그러니까 해학의 달인으로 이름난 지식인이었다. 그가 하루는 옆집 주인에게 당신 집에 불이 날 거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집주인은 경고를 무시했다.
며칠 후 그 집에 과연 불이 났다. 그러자 동네 사람들이 몰려와 얼굴을 잔뜩 그을려가며 열심히 불을 껐다. 집주인은 그들이 너무도 고마운 나머지 화재를 수습하고 나자 음식을 장만하여 그들을 대접하였다. 그런데 화재를 예고했던 순우곤은 초대받지 못했다. 불이 났을 때 그는 출타 중이어서 화재 진압에 함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실 마땅히 대접했어야 할 대상은 순우곤이었다. 화재를 예견한 만큼 순우곤의 말을 좇아 조치를 취했다면 불은 나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화재 진압에 실질적 도움이 못 됐다고 해도 순우곤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었다. 굳이 따지자면 잘못은 순우곤의 경고를 흘려들은 이웃집 주인에게 있었다. 그럼에도 당장에 도움이 안 되었다는 이유로 순우곤을 대접하지 않았던 것이다.
<사기>를 완성한 사마천은 평민에 대해 이렇게 증언했다. “어찌 인의를 꼭 따져야 하는가? 나에게 이익을 안겨주면 그가 바로 덕 있는 자다.”(<유협열전>) 평민들이 어짊과 의로움 같은 도덕을 중시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삶이 워낙 팍팍하기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돼야 그를 덕 있는 이로 여긴다는 것이다. 옳고 그르냐는 윤리적 판단보다는 당장의 이해관계에 먼저 반응하기 마련이라는 얘기다. 공자나 맹자 모두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게 한 후에 교화를 펼쳐야 한다고 주문한 까닭이다.
어찌 평민뿐이겠는가? 눈앞의 이해관계를 우선함은 신분고하와 무관하게 절대 다수의 사람에게서 공통적으로 목도된다. 하여 순우곤의 예고같이 바로 실현되는 이해관계와 거리가 있으면 쉬이 무시되곤 한다. 인문학이 그러한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달리는 데 손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여 손을 묶으면 빨리 달릴 수 없다. 하늘을 나는 데 꼬리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여 꼬리를 구부리면 멀리 날지 못한다.”(<회남자>) 눈앞의 유용함은 당장 사용하지 않는 것(不用)과도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통찰이다. 손은 물론 이제는 발, 나아가 목까지 묶이고 있는 인문학에 전해온 참으로 오랜 성원이다.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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