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숲길] 유전; 물려받아 내려옴
해가 거듭될수록 봄 앓이가 점점 더 힘겹다. 사방에 흩뿌려진 화사한 생동과 한겨울 아랫목만큼이나 따듯한 봄볕 속에서 화양연화를 반추하는 시간이 늘어 가는 이유를 모르겠다.
그리고 다시 봄이다! 이 시기 새로운 세대를 잇기 위한 생명체의 노력은 가장 아름답거나 아주 특별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꽃이 그렇다. 이차 성징이 나타나는 시기를 사춘기, 피 끓는 젊음을 청춘이라 일컫는 깊은 속뜻을 봄꽃을 보며 깨닫는다. 지금이야 차분히 추억할 수 있지만 온몸에 열꽃이 필 만큼 힘들었던 시기 아니었던가. 그래서인지 가끔 봄꽃의 화사함이 혼인색으로 느껴져, 아름다움 이면에 감춰진 생명의 치열함으로 다가온다.
모든 생명체는 태어나 살다가 죽는다. 그런데 생명체는 종에 따라, 같은 종 안에서도 개체에 따라 몇 시간에서 수백 년에 이르기까지 각기 수명은 달리하지만 하나같이 자기와 같은 개체를 새로이 만들어 내는 능력이 있다. 생식을 통해 개체의 시간적 임계를 넘어서는 것이다. 그중 유성생식은 유전적 다양성의 측면에서 무성생식에 비해 환경 변화에 강하다고 한다. 두 개체의 치열했던 삶의 지혜가 융합된 유전자를 통해 다음 세대로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으니 그럴 법도 하다. 그러다 보니 생태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수한 유전자를 가진 배우자를 만난다는 것이 모든 생명체에게 얼마만큼 중요한 일인가. 이성에 눈을 뜬 봄꽃과 같던 시절, 연모에 괴로워하며 원망했던 자연의 이치를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우수한 유전자를 만나기 위해 배우자는 수많은 조건을 전제한 사랑으로 선택되는 반면 다음 세대로 전달된 유전자는 조건 없는 사랑과 희생으로 키워진다. 세차게 흐르는 강물을 온몸으로 거슬러 오르는 연어의 모습, 산란을 마친 숭고한 주검은 다음 세대를 위해 어떤 삶을 선택해야 할지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우리는 그 숭고함을 효로써 섬긴다.
점점 사라지고 있는 전통문화, 제사. 전통적으로 적자에 의해 행해지는 조상에 대한 의식이다. 육체적 정신적 유전자를 물려준 세대를 공경하고 섬기는 의식은 다음 세대 또 다음 세대로 이어지며 정통성을 요구한다. 누가 무엇을 잇고 있는가. 생태계의 잔혹한 먹이사슬, 그리고 같은 종 안에서 살아남기 위한 개체 간의 경쟁, 이 과정에서 우수한 유전자는 자연이 선택하는 것일 수도 있고 생명체 스스로가 만들어 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수한 형질을 물려주고 받으려는 본성에 가까운 자연의 섭리를 생각해보면 정통성의 명분을 허구의 가치로 판단하기엔 생각할 점이 많다.
곧 있으면 종묘에서 조선 왕실의 제사를 볼 수 있다. 조선 역대 왕들의 신위를 모신 종묘에서 사계절의 첫 달 상순과 납일(매년 말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날)에 행하던 국가의 큰 제사를 이제는 종친 격인 전주이씨대동종약원이 주관하여 매년 오월 첫 번째 일요일에 행한다. 처음 종묘대제를 보러 갔을 때 정전을 마주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정문을 들어서서 조상신이 걷는 길, 신로를 따라 한참을 걸어가니 거대한 주상절리를 펼쳐 놓은 듯한 건축물이 서 있었고, 그 앞에는 넓고 얇은 돌, 박석이 모래벌판처럼 펼쳐져 있었다. 그렇게 절제된 장엄함이 느껴지는 공간에서 종묘제례와 노래 춤 악기연주로 제사를 이어가는 종묘제례악을 몸소 겪었다. 지난 왕조의 정통성과 통치 명분으로 해석될 수 있는 의식이 지금 나에게 어떤 의미냐고 묻는 이도 있겠지만, 그 안에 내재되어 있는 의미를 한 번쯤 현장에서 직접 느껴보길 권하고 싶다.
지금 우리는 특정된 혈족과 그 안에서도 정해진 순서에 의해 정통성을 잇는 사회에 살고 있지 않다. 그렇기에 삶이 더 치열하다. 금수저 은수저라는 단어를 현대적 신분과 계급으로 빗대어 생각하는 현실적 자괴감과 행여 물질적 풍요가 우수한 유전자를 대체할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이 사회적 통념이 될까 걱정스럽다. 치열하게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삶이기에 더 가치 있다. 무엇을 잇고 무엇을 전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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