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영국과 한국의 정신 건강에 대한 인식
한국에서 나고 자란 필자는 개인의 정신건강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익숙하지 않았다. 한국과 다른 동양 국가들은 대부분 개인의 심리적 어려움이나 고통을 자유롭게 말하는 것이 힘든 사회적 분위기이고, 용기를 내 이야기를 했다 한들 이해 받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훗날 보험료 산정에 피해가 있을까봐 정신과 치료를 받지 못하게 하는 보험 컨설턴트도 흔하니 말이다. 링컨의 노예해방선언이 고작 200년이 안 됐고, 2차세계대전 종식이 100년도 안 됐으니 인류의 심리치료 역사가 짧은 것은 이해되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은 심리치료에 대해 활발한 태도를 가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젊은 세대들이 나서 정신건강에 대한 중요성을 어필하는 추세다. 영국의 다른 사회적 분위기를 체험하면서 정신건강 치료에 대해 한국이 억압적인 이유를 생각해봤다.
정신건강에 대한 폐쇄적 언어와 생각, 습관이 한국문화의 일부인 것처럼 돼버린 것은 몇 백 년의 세월 동안 세대를 거쳐 학습된 유교 관념이 제일 큰 이유일 것이다. 공자가 태어난 춘추시대의 중국은 전쟁과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공자가 처음으로 유교의 덕목을 창안한 목적은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전쟁 없는 사회를 만들어 평화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였다. 그래서 제시된 것이 ‘인(仁)’으로, 사람들에게 따뜻한 도덕적 마음을 학습시켜 잔혹하고 비인간적인 전쟁의 시대가 끝나기를 소원한 것이다.
이러한 휴머니즘 사상으로 시작한 유교는 후대의 유교사상가들에 의해 ‘평화로운’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체계와 서열에 순종하는 태도를 강조하기에 이르렀다. 이를테면 현대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삼강오륜’ 같은 덕목들이다.
따라서 유교사상은 좋은 의도와 철학으로 시작된 것에 비해 어쩔 수 없이 다소 계급적이고 억압적인 성격을 띠기 때문에, 한국 사회에서는 개인의 의견이나 감정을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것이 힘들어 정신건강까지 제대로 고려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유교가 상당히 여성차별적 요소를 가지고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두 번째는 일제의 식민통치와 6·25전쟁, 그리고 가난이라는 집단적 트라우마다. 6·25전쟁과 식민지 시대의 트라우마로 국민의 대부분은 아직도 ‘서바이벌 모드’로 살아가고 있다. 한국 특유의 이러한 생존 모드는 ‘한강의 기적’을 이뤘지만 현대사회의 정신적 불안함과 끊임없는 경쟁사회를 만들어 어린이들부터 압박감을 느끼게 한다.
필자 또한 영국의 의료 시스템 아래에서 상담을 받아보면서 이곳 사람들은 우울증, 불안장애, 스트레스에 관한 대화를 자유롭게 하며 심리치료와 정신과 약 복용에 훨씬 접근이 쉽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것은 정부의 국민복지시스템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개인이 정신적으로 이러한 체계를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인식하지 않는다면 일어나기 힘든 일이다. 우리나라는 복지와 정책이 아무리 잘 구축돼 있어도 여전히 정신적 문제의 해결을 위해 개인이 적극적으로 다가가기 힘든 분위기의 사회다.
필자가 하고 싶은 말은, 영국이 월등한 나라라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먹고 살기에만 급급했던 ‘생존 모드’에서 벗어나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한국의 이러한 사회적 생존모드는 과거의 큰 위기를 집단적 노력으로 다같이 이겨낸 초인적 힘이다. 그 위기를 이겨낸 이후에 그 생존모드에서 벗어나는 것 또한 엄청난 힘이 필요하다.
개인의 정신건강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나약함의 증표가 아니라 바뀐 현대사회에서의 행복과 앞으로 나아감을 위한 발전의 증표다. 그러므로 정신이 아프면 자연스럽게 상담소나 병원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정신장애의 심각성을 강조하는 것이 아닌, 친숙함과 접근성을 늘리는 것이 우리 국민의 행복과 발전을 위한 첫걸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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