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막힌 개혁, 더 치밀하게 더 과감하게 뚫자

곽노성 연세대학교 객원교수 2023. 4. 12.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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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객원교수 곽노성

4대 개혁이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노동개혁 중 유일하게 논의되던 근로시간 개편은 많은 논란 속에 미뤄졌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는 개혁안 대신 경과보고서를 발표하고 이달 말 활동을 종료할 예정이다. 뒤를 이어 보건복지부가 오는 10월 정부안을 발표한다는데 총선을 앞둔 시점에 가능할지 걱정스럽다. 각종 신산업 규제혁신 방안도 큰 기대를 하기 어렵다. 신의료기술평가처럼 민감한 사안은 결정을 미뤘다. 산업통상자원부가 개혁을 추진한다는 화학물질 규제도 환경부가 요지부동이라 지켜봐야 한다. 교육개혁도 쉽지 않을 것 같다. 지자체에 대학 예산권을 이양한다는데 비슷한 사업을 산업부, 중소벤처기업부가 오래전부터 해왔다. 지자체가 혁신보다 예산확보에만 관심 있는 관행이 바뀌지 않는 한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개혁이 지지부진한 가장 큰 이유는 개혁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갈등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복지부는 지난해 연금개혁 논의 시작부터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같은 모수조정에만 집중하겠다는 태도를 명확히 했다. 그러면서 논란이 더 큰 구조개혁은 국회에 미뤘다. 국회는 구조개혁 없는 모수개혁은 임시처방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정했다. 대신 실제 논의는 민간전문가로 구성된 자문위원회에 넘겼다. 복지에 대한 철학이 다른 민간위원들은 소신을 주장할 뿐 생각의 차이를 좁히지 않았다.

비슷한 현상은 근로시간 개편에서도 발생했다. 지난달 고용노동부는 주 69시간을 일하면 장기휴가를 갈 수 있다는 개편방안을 발표했다. 청년세대의 반응은 예상과 달랐다. 지금도 연차를 제대로 못 쓰는데 과연 장기휴가가 가능하겠냐며 반발했고 결국 모든 관심은 69시간 근무가 적절한지로 모였다. 결국 재검토하게 됐다.

혼선의 중심에는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있다. 고용부는 부담을 줄이기 위해 지난해 7월 민간위원으로 구성된 연구회를 출범했다. 이번 발표도 연구회의 결과를 수용한 것이라고 했다. 정작 연구회에 참여한 민간위원의 생각은 달랐다. 의사 출신 위원은 개편안에 반대하며 중간에 사퇴했다는 뉴스까지 나왔다. 부담을 줄인다고 운영한 민간 연구회가 오히려 고용부에 더 큰 위험이 됐다. 차라리 예전처럼 공무원이 직접 펜을 잡고 현장 의견을 수렴했다면 이런 사달이 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위험에 대한 두려움은 무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덩어리 규제를 해결한다며 출범한 국무조정실 규제혁신추진단은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덩어리 규제는 특히 부처와 갈등이 큰 분야다. 부처 파견 공무원은 돌아갈 때만 기다린다고 한다. 실제 업무는 정부출연연구소 파견 박사들이 맡고 있다는 데 정책조정 경험이 없는 이들이 하기에는 무리다.

지난달 말 '돈은 한국서 벌고 세금은 미국서 내라는 정부'라는 제목의 뉴스가 방영됐다. 대학 졸업생만 온라인 영어강사로 인정하다 보니 하버드 재학생도 강의할 수 없어 결국 스타트업이 법인을 미국으로 이전한다고 한다. 예전 같으면 난리가 났을 것 같은데 교육부는 반박자료조차 내놓지 않았다.

더는 미룰 수 없다. 꺼져가는 개혁엔진을 다시 살려야 한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개혁에 대한 강한 의지가 있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 순환보직에 따라 배치된 공무원이 욕을 먹으면서 개혁작업을 주도할 이유는 없다. 좋은 직장이 아닌 국가에 봉사하기 위해 공무원이 된 사람을 찾아야 한다.

개혁을 오랫동안 고민한 민간전문가를 찾는 것도 중요하다. 개혁이 성공하려면 다양한 관점에서 제기된 질문을 소화해야 한다. 공무원의 제한된 경험이나 경직된 사고로는 한계가 있다. 다양한 질문에 대해 대안을 만들어낼 수 있는 민간전문가가 필요하다.

실무검토 전 윗선에서 미리 방향을 정하는 것은 되도록 피해야 한다. 개혁이 어려운 이유는 이해관계가 복잡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어느 단체가 반대한다고 해서 지레 포기할 필요는 없다. 이해관계 때문에 앞에서는 반대하지만 뒤에서는 필요성에 공감할 때도 많다. 좋은 개혁안은 이런 상황을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곽노성 연세대학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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